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보씨 Jan 02. 2023

'객관적 사실'이라는 허구적 신화

[영화 리뷰]라쇼몽 羅生門 Rashômon / Rashomon(1950)

헤이안 시대, 폐허가 된 나생문(라쇼몽) 아래에서 비를 피하던 승려(미노루 치아키 扮)와 나무꾼(시무라 다카시 扮), 잠시 비를 피하러 들른 평민(우에다 키치지로 扮)이 최근에 마을에 있던 기이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 '가나자와 마사코'(마치코 쿄 扮)와 함께 말을 타고 숲을 지나던 사무라이 '가나자와 다케히로'(모리 마사유키 扮)는 도적 '타죠마루'(미후네 토시로 扮)의 습격을 받는다. '타죠마루'는 속임수를 써서 '가나자와 다케히로'를 결박하고 '가나자와 마사코'를 겁탈한다. 시간이 흘러 나무를 하러 숲에 들어간 나무꾼은 '가나자와 다케히로'가 칼에 찔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죠마루'는 체포됐고 '가나자와 마사코' 역시 관청으로 불려와 사건에 대해 진술한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에 대한 '타죠마루'와 '가나자와 마사코'의 진술은 엇갈리고 심지어 무녀의 몸에 빙의한 '가나자와 다케히로'도 두 사람과 다른 진술을 한다. 게다가 사건 현장을 처음 목격한 나무꾼의 진술도 세 사람의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일본 영화계의 전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영화 <라쇼몽>은 20세기 초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일본의 명감독 쿠로사와 아키라가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 중 <라쇼몬>과 <덤불 숲> 두 작품을 적절히 섞어서 영화화했다. 헤이안 시대, 폐허가 된 나생문 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은 소설 <라쇼몬>에서, 동일한 사건에 대한 인물들의 엇갈리는 진술은 소설 <덤불 숲>에서 가져왔다. 이 영화는 195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플래시백 기법을 주관적 스토리의 수단으로 사용한 최초의 영화가 바로 영화 <라쇼몽>이다. 영국 방송사 BBC가 역대 최고의 외국 영화 4위에 이 작품을 선정한 것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결하지만 강력하다. 객관적 사실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모든 인간은 다 주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건에 연관된 네 명의 인물인 '타죠마루', '가나자와 다케히로', '가나자와 마사코', 나무꾼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엇갈린 진술을 한다. 네 명의 인물 모두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은 최대한 숨기고 자신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것들만 말하려고 하기에 네 명의 진술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동일 사안에 대해 나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난 경험이 있다. 특별히 사안을 왜곡하거나 거짓으로 진술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이런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사람마다 가치관, 이해력, 맥락에 대한 배경지식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을 파악할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흔히 쓰이게 된 말이 바로 '팩트 fact'이다. 그냥 '사실'이라고 말해도 될 것을 왜 굳이 영어 단어로 말하는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으나 아무튼 어느 순간 이 '팩트'라는 단어가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과 같은 매체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하지만 이 '팩트'라는 단어만큼 오염이 잘 되는 단어가 또 있을까? '팩트'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객관적이고 진실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팩트'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다. 객관적인 진실은 단편적 사실을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고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은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및 전승 기념식장에서 물통 폭탄을 투척하여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일본군 장성들과 일본 고위관료들이 죽거나 다쳤다. '팩트'만 놓고 보자. 윤봉길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평화롭게 치러지던 행사장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한 테러리스트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누구든지 윤봉길을 테러리스트가 아닌 '의사'로, 그의 행위를 폭탄 테러가 아닌 '의거'로 생각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역사적,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 사안을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은 '팩트'라고 우리가 부르는 '사실'보다 그 '팩트'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진실'이고, '진실'을 알기 위해 꼭 고려해야 할 것이 그 '팩트'를 둘러싸고 있는 맥락이다.






영화 <라쇼몽>은 우리에게 바로 그 점을 알려준다. '팩트'는 누가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음을 말이다.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 영화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윤색을 한다. 이 영화는 그러한,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의 원죄이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모든 사안에서 인간은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악의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허구적 신화를 극복해야 한다.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사실'을 넘어서는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팩트'가 오염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영화 <라쇼몽>이 던지는 진정한 화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빌어먹을 슈퍼 ‘히어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