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이 바쁘지만 방향은 맞는 것 같아요
얼마전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현대차와 FCA 간의 인수 합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었습니다. 아직 인수합병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대다수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다른 자동차 제조사와의 합병에 부정적으로 “현대차가 굳이 FCA와 합병할 이유가 없으며, 미래 자동차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분명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기존 내연기관에서 “전동화”와 “자율주행”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 것이 명확한 만큼, 생산 및 판매 대수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보다는 미래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 기업들에 투자하거나 필요하다면 직접 인수/합병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현대차도 FCA와의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며, IT/전장 회사에의 투자와 인수/합병에 관심이 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실제로 현대차는 최근 활발한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최근에 어떤 기업들에 투자를 진행했을까요?
현대차가 거침없는 투자에 나선 이유
현대차의 최근 투자 행보를 살펴보면 수직계열화를 표방해 다소 폐쇄적으로 보였던 과거에 비해 굉장히 활발하게 투자와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미래 자동차 시장의 키워드가 전동화와 자율주행차(커넥티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승차 공유로 현대차가 기존에 경쟁력을 가져왔던 영역들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에서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 가치 사슬에 강력한 통제력을 가지게 되면 가격 경쟁과 개발 속도에 있어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자동차가 점점 IT 기계화되어가는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직접 개발하고 통제하에 두려고 해서는 유연하고 빠른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장을 주도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오히려 모험을 하는 다양한 스타트업들 중 유망한 기업들과 다양하게 협업을 모색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이는 길입니다. 또한 그들과의 원활한 협력을 보장하고 그들의 성공에 같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망기업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현대차는 이러한 이유로 인해 최근 배터리, 레이더, 반도체, 음성 인식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며 협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투자한 기업들: 기술 OR 인프라
작년 하반기부터 현대차가 공식적으로 투자를 발표한 기업들은 7개에 이릅니다. (전략적 협업 제외) 이들 기업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첫번 째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자율주행/전동화 관련된 기술 기업들입니다. 현대차는 특히 라이다/반도체/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업들에게 투자를 했습니다. 이들은 해당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기업들인만큼 이번에 진행한 투자를 통해 이들과 더욱 원활한 기술 교류 및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로는 카셰어링과 라이드 셰어링에서 입지를 다져 인프라를 확보한 기업에의 투자입니다. 동남아시아의 그랩은 이미 우버, 디디추싱과 함께 세계 3대 라이드 셰어링 기업으로서 동남아 시장의 교통을 혁신시키고 있는 회사이며, 카넥스트도어 역시 호주 P2P 카셰어링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회사 중 하나입니다.
현대차는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유 경제”가 대세가 되더라도 공유되는 차량으로 “현대차”가 사용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가 미래다?! 더 좋은 타이밍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투자는 상호 간의 협력 증대를 위한 효과적인 안전 장치입니다. 때문에 지금 당장 일정 규모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가 다양한 기술 기업, 인프라 기업들에 투자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투자에 대한 타이밍이나 과감성 측면에서는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그랩에 수백억 원을 투자했지만 투자 집행 시점에는 이미 그랩의 기업 가치가 6.8조에 달하기 때문에 현대차가 얻을 수 있는 지분은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차가 조금 더 빠르게 투자를 집행했다면 동남아 시장을 꽉 잡은 그랩에 대해 더 규모감 있는 지분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자동차 회사들보다 앞서나가는 행보라기보다는 따라가는 듯한 모양이라는 점은 아쉽습니다. 예를들어 토요타는 그랩에 현대차보다 한 발 빠르게 협력을 발표했고 최근에는 현대차의 투자 금액보다 수십 배 많은 금액인 약 1조 원을 투자했습니다. 또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현대차보다 한 발 빠르게 아이오닉 머터리얼즈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봤을 때 현대차가 다른 경쟁자에 비해 과감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략적 투자의 핵심은 잘 될 기업을 “미리” 발견하고, 과감하게 투자해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차 같은 대규모 회사들에게는 이러한 점이 더욱 더 중요합니다.
물론 확실한 기술력을 지닌 미국과 이스라엘 기업들의 경우 이미 대규모 펀딩을 유치했고, 추가 자금이 필요할 경우 기존 투자자가 증자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대차가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좋은 타이밍에 과감한 투자를 진행해야지만 경쟁사보다 앞서 나갈 수 있을 것 입니다.
아직 진행 중이거나, 발표하지 않은 딜 중에서 이러한 요소를 충족하는 딜이 있을 수 있고, 현대차가 앞으로 이러한 투자 기회를 발굴해낼 수 있습니다. 현대차가 투자 성과로 난국을 헤쳐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ps: 사실 현대차 전략 그룹은 그룹내 좋은 인원들을 많이 보내놨고, 지영조 부사장의 리더십 하에 조만간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같은 일개 글쟁이가 걱정할 일은 아니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