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분들이 대학원에서 공부했거나 현재 공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즘은 협동조합, 공정무역, 로컬크리에이터 등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교육이 초중고 교육과정에 제공되고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낯선 일이었죠.
어른이 되어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하면 할수록 어딘가 아쉬움을 느끼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학문에 대한 갈망(!)이 싹트게 됩니다. 현장에서 경험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업무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확장하거나, 또는 사회적경제에 관한 이론적 탐색이나 담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등 여러 이유로 대학원에 진학하죠. 거기에 지난 정부에선 ‘사회적경제 인재양성 종합계획’(2018.7.3.)을 발표하고, 그에 따라 사회적경제 선도대학 지정, 경력보유여성과 신중년 대상의 사회적경제 창업 입문과정 등 아낌없는 제도적 지원이 제공되었으니까요. 그런 안팎의 요건이 갖춰지면서 대학원이 고려해야 할 중요 선택지 중 하나가 된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누군가는 학위가 마치 자격증과 같다고 말합니다. 인증 같은 것일까요? 학위를 취득했다는 것은 이 분야에서의 활동 보증서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같은 국가자격증이라도 컴퓨터활용능력과 같은 보편적 사용성을 가지고 있고, 약간의(?) 노력으로 취득 가능한 자격증이 있고, 건축기사처럼 건축 분야에서 취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관심 밖인(너무나 전문적이기에!) 자격증이 있습니다. 사회적경제 분야의 학위가 (어찌 됐든)자격증 같은 것이라면, 이 친구(?)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학위란 왜 필요한 것일까요? 석사 학위를 얻기 위해 2년여의 시간을 투자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것일까요?
대학원은 사회적경제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아닙니다. 온라인 교육을 비롯해 알음알음 형성한 커뮤니티를 통해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죠. 학위가, 그러니까 자격증(?) 취득이 목표가 아니라면, 대학원은 상당한 기회비용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대학원을 선택하는 이유와 그로부터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이 이야길 꺼낸 저도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앞선 질문들은 어찌 보면 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우스갯소리 아닌 말로 동고동락한 동기 선생님들이야말로 대학원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이란 이야길 해요.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 이상을 말하려 하면 살짝 자괴감(..)이 드는데, 그것은 왜일까요? 누군가는 이미 학위를 받았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대학원 진학을 고려 중이거나 현재 과정 중이라면, 여하튼 이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의 한탄 아닌 한탄이니까요. 그럼에도 대학원을 생각하면 어딘가 애매한 구석이 있어요.
언제나 그랬지만 유독 이번 뉴스레터엔 넋두리가 길었습니다. 얼마 전, <‘아무도 안 보는 논문’ 늘어… 91%가 피인용 ‘0’>이라는 기사를 봤어요. 저희 뉴스레터 이름이 자그마치 ‘오늘의논문’인데 말이죠, 알고 보면 논문을 읽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논문을 쓰는 당사자, 논문을 심사하는 심사위원 3명, 그리고 자신의 논문을 쓰기 위해 그 논문을 인용해야 하는 당사자(...) 정도가 논문을 읽는 사람들일 텐데요, 논문 쓰는 사람이 논문 심사를 왕왕하니 사실은 정말 한 줌의 사람들만이 논문을 읽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논문을 읽고 계신 구독자분들께선 정말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정말로요!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더라도, 분명 보석 같은 연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내어 내 일과 삶에 연결해 더 나은 일터와 삶터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요? 때론 거대담론을 다루는 논문이 쉽게 와닿지 않기도 하지만, 담론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좌지우지합니다. 그 겹겹이 쌓인 담론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논문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이번에도 논문을, 보고서를 찾아봅니다. 읽기 어렵고, 때론 전체 텍스트 중 일부에 휘말려 잘못 읽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읽어봅니다! 함께 살펴볼까요?
오늘 살펴볼 자료는 지난 7월 3일 국회 사회혁신포럼 정책토론회 및 사회혁신 민간포럼 기획 간담회에서 다룬 <한국 사회혁신의 현실과 과제> 자료집입니다.
행사를 주최·주관한 22대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국회 사회혁신포럼’은 “ESG, 사회적 가치 실현,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활성화, 사회적 경제, 임팩트 금융 등 사회혁신 개념에 포괄되는 다양한 의제 탐구를 통한 분야별 ‘입법 로드맵’ 마련”이라는 연구목적을 갖고 최근에 모임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료집의 내용을 보니 사회혁신이라는 큰 주제 아래 지역재생, 지역에너지, 임팩트금융, ESG 등 다양한 주제를 함께 나눈 시간이었겠구나 싶더라고요. 사회적경제, 사회연대경제, 사회혁신까지. 이 동네(?)에는 새로운 단어들이 많어서 개념어의 홍수에 휩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2017년부터 현재까지, 사회적경제의 현황을 전반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자료였는데요. 정책과 제도의 변화와 무관하게 운영될 수 있는 산업이나 분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이야기할 때, 정부나 제도와 같은 요소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중 하나로 분명히 존재하고 있죠. 현장에서 활동이 분명히 있지만, 어떤 흐름과 경향이란 것이 시기마다 있죠. 그런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느냐, 능동적으로 대응, 아니 앞서 변화를 미리 이끄느냐 사이엔 차이가 있을 겁니다.
사회적경제에도 생성, 성장, 쇠퇴, 소멸의 생애주기를 따른다면, 지금 그 위치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한번 생긴 사회적경제라는 커뮤니티가 항상 유지되고 보존되어야 할까요? 처음엔 좋은 의미와 가치를 가졌던 커뮤니티도 시간이 흐를수록 이익집단이 되어 폐쇄적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생태계의 모든 것이 영원합니다. 그것이 존재할 때까지요. 탄생한 모든 것이 소멸한다고 하면, 사회적경제 커뮤니티도 소멸할 수 있습니다. 혹은 다른 것들과 어우러지며 변화를 이루어낼 수도 있겠죠.
찬찬히 자료를 살펴보다 보니 뜬금없는 생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회적경제의 세계관은 무엇일지 묻게 됩니다. 호혜와 연대, 상호부조, 민주주의 등 몇 가지 키워드로 사회적경제를 이야기하는데요. 이를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키워드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세계관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경제와 관계된 사람들이 다른 채널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란 측면에서 우리의 세계관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딱히 정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을 오늘도 던져봅니다.
얼마 전, 개인적인 일로 만난 분과 인터뷰, 아니 대화를 나눴어요. 그는 정치적인 상황이나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여기 판(!)에 있는 사람들이 소소한 행사나 모임을 함께 만들고, 그로부터 희망을 나누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활동이 필요하단 생각은 많이 하지만, 쉽게 말 꺼내가 어려운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어요. 이젠 그런 모임을 주도하고,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살짝 부담된다는 거죠. 저도 그 말에 공감이 되더라고요. 이젠 불평불만을 꺼내놓기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거든요.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뭔가를 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고 또 할 필요도 없단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모임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 애쓰는 ‘손들’은 분명 있습니다. 그런 ‘손들’과 함께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고 켜켜이 관계를 쌓아가면서 기회를 만들어 가야겠죠. 그런 고민을 하면서 이번 오늘의 논문을 마무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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