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지난여름이 무색하리만큼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입니다. 옷장 정리를 갑자기 해야 하다 보니 아무 옷이나 이리저리 껴입고 다니는 형국이에요. 이러다 금방 추워지겠죠?
저는 생산성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을 갖고 있어요. 더 많이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경험하고 깨달음을 얻고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 말이죠. 그래서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들을 때 그걸 어떻게든 써먹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매번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얼마 전 현대카드에서 진행한 문화행사인 ‘다빈치모텔’에 다녀왔어요. 꽤 거금을 주고 치열한 티켓팅을 거쳐 신청한 행사였는데, 막상 다녀오고 나니 이게 정말 제가 원해서 다녀온 것인지, 그런 행사에 참여하는 멋진(?) 나, 거기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기특한(?) 나를 기대하며 다녀온 것인지 영 모르겠는 거예요.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국은 그런 곳(?)에 다녀와야지만 남들과 다른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압박 같은 것이 제 선택의 근간이었지 않나 싶어요.
어디를 가나 정보는 흘러넘쳐요. 뭔가를 끊임없이 검색하고, 고작 검색결과 한두 문장을 읽곤 다 알았다고 자신합니다. 사실 아무것도 제대로 내 것으로 만든 건 없는데 말이죠. 엄청난 정보의 파고 속에 떠다니다 보면 어딘가 굉장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단 ‘생각’만 있거든요. 생각과 행동, 그 사이의 틈을 좁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말이죠. 생산성이라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구체화할 때 생깁니다. 속된 말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과물을 내놓아야 해요. 그래야 그다음 스텝을 밟을 수가 있죠. 그래서 ‘오늘의 논문’도 계속 굴려봅니다. 듬성듬성 어딘가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모양새이지만요.
마흔 번째 오늘의 논문을 보내고 난 뒤(그러니까 그게 지난달이었습니다) 어떤 컨셉으로 뉴스레터를 정리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 사회적경제 기업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논문과 보고서, 그리고 관련 언론 보도를 함께 다루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논문·보고서와 가장 최근의 이야기를 빠르게 전하는 보도자료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겠단 생각을 했거든요(네! 모든 것은 사실 제가 흥미를 느끼냐 그렇지 않으냐에서 시작됩니다).
조금 포장을 하면, 말랑말랑한 사례연구를 지향한다고나 할까요? 여러 텍스트에서 다룬 사회적경제 기업이 많지는 않아요. 매체에서 많이 다뤘지만, 막상 연구자들이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은 경우도 많고요. 그 이유가 어쩌면 사회적경제 현장과 연구 현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금요일 밤에 이태원이라니! 저의 평소 생활 패턴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내돈내산(..)은 이런 일도 가능하게 하더라고요.� 토크∙공연∙전시∙버스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예술∙학문∙경영∙기술 등 각 분야의 독보적인 인물로 풀어냈다는 점이 인상깊었어요. 개인적으론 어도어 민희진 전 대표의 토크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시작과 동시에 매진이었답니다. 흑흑.
첫 번째 사회적경제 기업으로 알브이핀(마르코로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알브이핀(Rvfin, Real Value Finder)은 ‘아름다운 내일을 만든다’는 미션을 갖고 할머니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르코로호’, 과테말라 원주민 여성들과 한국 양육 비혼모 삶을 변화시키는 ‘크래프트링크’, 소셜벤처와 혁신기업 브랜딩, 마케팅 종합 서비스 프롭(FROB)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캠페인이나 프로젝트가 아니라 ‘브랜드’를 가져가는 이유는 알브이핀이 하려는 이야기를 지속해서 전달하기에 브랜드가 효과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알브이핀은 2019년 사회적기업 인증, 2019년 벤처기업 인증, 2021년 소셜벤처기업 인증을 거쳐 지난해 8월엔 비콥(B-Corp) 인증을 받았습니다. 파타고니아, 네스프레소, 록시땅 등 글로벌 기업들 역시 환경과 사회라는 브랜드라는 점을 소비자에게 간단하고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비콥 인증을 받았죠. 2년에 걸친 준비 끝에 알브이핀도 비콥 인증을 받은 거죠. 알브이핀의 이름 아래 운영되는 마르코로호, 크래프트링크, 그리고 소셜 벤처 디자인 스튜디오까지. 브랜드를 확장해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알브이핀의 시도가 인상 깊은데요, 뉴스레터에선 ‘마르코로호’에 집중해 살펴보려 합니다. 참, 마르코로호는 탐험가의 이름 ‘마르코’와 스와힐리어로 정신을 뜻하는 ‘로호’의 합성어라고 해요.
사회적 가치를 중심에 둔 조직의 시작은 창업가의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군대에서 읽은 수십 권의 책을 통해 ‘벌이’와 ‘사회적 환원’이 꼭 구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신봉국 대표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됩니다. 그는 손꼽히는 선진국인 우리나라에서 노인 빈곤율이 높다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란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 문제를 소셜벤처를 통해 해결해볼 수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되죠.
제대 후 신봉국 대표는 초등학교 교사직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수공예품 제작 일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이를 기부로 연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합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그는 상주시청과 연계해 상주 시내의 노인복지기관과 노인정을 찾아가 팔찌 제작 교육을 진행하고, 크라우드펀딩으로 사업성을 확인하기로 해요. 100만원 정도 팔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그것의 10배 이상인 1100만원이 크라우드펀딩으로 모금됐다고요. 다양한 미디어에서 마르코로호를 소개해주고, 연예인이 착용하며 팬들이 따라 구매하는 경우도 많아졌죠. 그렇게 조금씩 마르코로호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집니다.
2020년 마르코로호의 미션은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서 노인 소외 문제 해결로 바뀌었습니다. 쉬는 날에도 출근하시거나 본인들일 번 돈을 안 쓰고 마르코로호 직원들 간식을 사 오는 등 생각지 못한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르코로호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유대감을 느끼기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참고로 할머니들은 주 2~3회 출근해 주당 평균 8~12시간 일하는 스케줄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마르코로호는 우리 사회의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게 됩니다.
올해 6월 기사에 따르면, 마르코로호는 13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년(21명)과 할머니(35명)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고요. 순수익금의 20%를 기부하고 있는 마르코로호의 누적 기부액은 1억5천만원(2023년 1월 기준)입니다. 고객이 상품을 구매할 때 직접 기부 영역을 선택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독거노인 우유배달, 대 피해 아동 지원, 소방관 복지 증진 등 매년 새롭게 선별한 단체들에 기부가 이뤄지고 있어요. ‘마르코로호’ 브래드가 런칭된지 내년이면 10년 차에 접어듭니다. 마르코로호가 만들어가는 앞으로의 10년은 또 어떤 모습일까요? 신봉국 대표의 인터뷰를 찾아보며, 양적 성장과 함께 소셜 미션을 계속 강화시켜 나갈 마르코로호를 그려봅니다.
그래서 오늘 살펴본 논문은 <농촌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노인문화정책의 현황과 과제 -경북 예천군 A마을 사례->입니다.
논문이 들여다보고 있는 지역은 경상북도 예천군입니다. 연구자는 농촌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기존의 ‘노인복지’ 중심에서 ‘노인문화’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함을 제안합니다. 노인복지 중심의 노인 정책으론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과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한편, 정책 대부분이 하향식이라 실제 농촌 노인들의 필요와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연구자는 분석합니다. 연구자는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공동체문화형’ 노인문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요. 왜냐하면 “농촌 노인들은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마을공동체 중심의 활동에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개인 단위로 참여하는 현재 형태는 농촌 마을공동체의 특성과 맞지 않는 거죠.
논문에서 ‘마르코로호’ 사례는 노인들이 축적해 온 경험을 활용하는 방안의 하나로 이야기됩니다. 농촌 지역 할머니들의 사회 참여와 경제적 자립을 돕는 방법으로 마르코로호는 할머니들이 잘 할 수 있는 ‘실 매듭’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합니다. 이는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현재로 잇는 일이기도 할 겁니다. 물론 농촌을 하나로 묶어 단일한 정책을 가져가는 것도 적절치 않을 겁니다. 결국은 각 마을공동체의 특성과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죠. 이건 농촌에만 해당하는 이야긴 아닐 겁니다. ‘마을만들기’ 역시 각기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과 환경을 고려한 정책 수립이 필요합니다.
연구자는 서론에서 “정부, 지자체, 공공단체 등에서는 ‘마을만들기’ 사업과 같은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여러 정책적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고령의 농촌 마을공동체 구성원인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문화정책에는 소홀한 편”이라고 말합니다. 고령화와 저출생, 지역소멸이 함께 물려 있는 농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없앤다는 측면과 아울러 현재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이 더 살기 좋은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해결 방안 모색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을 가져갈 수는 없는 거죠. 매번 어느 하나에 골몰하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함께 돌아보고 챙겨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정책이라면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노인 빈곤, 노인 소외를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로 인식한 기업가들의 해결 방안이 각기 다르다는 건 우리 사회에 여러 의미를 던지고 있지 않나요? 마르코로호는 할머니의 손재주를 이용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그렇게 일자리와 관계를 만듭니다. ‘신이어마켙’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아랩인위립’은 폐지 수거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르신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이를 노트, 엽서, 지갑 등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해 판매하죠.(아립앤위립 역시 신이어마켙이란 브랜드를 두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알브이핀과 비교해서 살펴보기 좋을 듯해요!) 일자리 창출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커뮤니티케어를 통해 나이 들어도 나의 삶터에서 계속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있습니다. 하나의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해결 방안이 모색될 때 좀 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데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기업을 요모조모 살펴보는 새로운 시도를 이번 뉴스레터에 담아봤습니다. 수박 겉핥기 정도가 아닐까 싶지만, 조금씩 보완해가며 작업해보려 합니다. 다뤄보면 좋겠다 싶은 곳이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어떤 다양한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있을지, 바삐 찾아봐야겠어요!
덧붙임. 제 본업(?)과 관련된 이야길 여기에 적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져 도움 요청드려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일대일로 대화 해보지 않으시겠어요? 때로는 '왜 저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하고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막상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대화는 이런 새로운 시각과 이해의 기회를 열어줍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토론이 아닌, 이해와 공감의 가능성을 여는 <한국의 대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투표와 행사 참여로 함께 해주시길요! 혹시 이 글을 읽는 구독자 분들을 행사에서 뵐 수 있지 모른다는 설레는 맘으로 이 글을 남겨봅니다.
뉴스레터 '오늘의 논문'에 작성한 글을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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