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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둥 Jan 01. 2024

에이 누가 본다 그래. 너가 보잖아. 그 한 마디


데이트를 나간다고 콧노래를 부르며 양말까지 장착했다.

엄마가 내 방에 머리를 빼꼼하며 묻는다.


'양말 짝짝이인 것 같은데?'

검정 양말을 신었는데 높이가 3mm가량 다른 짝짝이 양말이었다.


'에이, 누가 본다 그래.'


'너가 보잖아.'


엄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가 보잖아.

충격이었다. 이 말이 마음을 멤돈다. 3주가 지났는데.


생각해보면 '너가 보잖아'는 엄마 삶을 관통하는, 아니 요약하는 말이었다.

간호사를 거쳐 우리를 낳고 쉬다가 사회복지사로 전향한 엄마는 늘 정직이 우선이셨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지하철에서 어려우신 분을 가리키며 1만원을 주시며 넣고 오라고 했다. 중학생 때 엄마가 구세군에게 1만원을 주시며 넣고 오라고 했다. 머리가 알량하게 큰 나는 말했다.


'엄마. 후원 횡령이 많다는 기사 봤어? 

이 돈 넣는다고 그 사람들한테 다 전해지지도 않을텐데.'


'낸 것까지만 생각해. 
후에 어떻게 쓰일지가 아니라, 낸다는 너의 행동에 집중.

아니 미노이마냥 엄마의 경쾌 심플 하지만 우문현답이라 할말 없어졌다.


https://www.spotv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6649


결과가 아니라 너의 마음에 집중해.


내 자신이 본다는 것. 그것은 정말 강력하다.


엄마는 정말 단단하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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