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L Jan 08. 2021

1월 1일이라는 이름


*이 글에는 넷플릭스 <굿 플레이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시간의 무게를 껴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한 해를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엉겁결에 1월 1일을 맞이했겠지. 각자 다른 마음으로 1월 1일 앞에 섰겠지만 '새해'라는 이름을 통해 우리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고, 새로운 계획을 짜보기도 한다.


나 또한 같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지만, 한편으로는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주에 또 다른 존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면 조금 우스꽝스럽지 않을까. 똑같은 하루가 끝나고 또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을 뿐인데 한 해가 끝났다고 울고 웃으며 다 같이 마무리를 짓고, 날짜가 바뀌는 경계선에서 10! 9! 8! 7! 6! 5! 4! 3! 2! 1! 카운트 다운을 외치며 1월 1일을 맞이하는 지구인의 퍼포먼스가 기묘하게 보이지 않을까.

 

어쩌다 우리는 1년을 12개월로 나누며 시작과 끝을 정하게 된 걸까. 13월, 14월 또는 1,021일, 1,022일로 부르지 않고 열두 번의 반복을 택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12월 31일과 1월 1일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끊임없이 새로운 해를 맞이하려고 할까.




얼마 전에 본 넷플릭스 <굿 플레이스>에서 힌트를 발견했다. <굿 플레이스>는 사후 세계를 다룬 드라마로 천국과 지옥을 굿 플레이스, 베드 플레이스로 명명하여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 드라마 세계관을 따라서 한 번 생각해보자. 만약 우리가 죽어서 굿 플레이스에 가게 된다면, 어떠한 시간과 공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가?


아름다운 풍경이 끝없이 펼쳐지고, 원하는 것은 모두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 더 이상의 걱정도, 불행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상상을 할 것이다. 굿 플레이스의 주인공도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주인공들이 도착한 굿 플레이스는 상상한 것과 조금 달랐다. 이론상으로는 파라다이스가 맞았다. 모든 욕구와 필요가 충족되는 세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완벽한 행복과 자유도 '무한함'이라는 속성이 붙으니 모두 무너져 버렸다. 좋아하는 것도 계속하다 보면 지루해지는 순간이 오듯, 행복과 자유가 끝없이 지속되니 사람은 도태되기 시작했고 둔해지고 무감정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굿 플레이스에 오면 좋은 것들로만 가득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무감정 상태의 좀비가 되어 마지못해 시간을 누리는 사람들을 보며 주인공 허탈함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굿 플레이스에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누릴  있을지 고민을 하다 해결 방안으로 '탈출구' 만들기로 한다. 굿 플레이스라는 세계를 누릴 만큼 누리다가 떠나고 싶을  언제든 자유롭게 떠날  있도록, '진정한 ' 의미하는 문을 만든다. 영원할  같았던 굿 플레이스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비로소 사람들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다시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의 달력이 12개월마다 나뉘지 않고 계속 연이어졌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시간을 경험했을까. 무한히 증폭되는 숫자에 짓눌리는 삶을 살았을까. 물론 삶은 유한하고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기에 굿 플레이스의 상황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한한 숫자로 연이어지는 날짜를 택하지 않고, 12개월마다 한 번씩 시간을 끊어 또다시 1월 1일을 맞이한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시간에 구태여 선을 그어 경계를 나누고, 시작과 끝이라는 이름의 푯말을 세운 그 이유가.


어쩌면 우리는 1월 1일이라는 리셋 장치를 만들어 희망을 불어넣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힘들었던 시간도 끝이 날 수 있다는 희망. 작년과는 다른 시간이 펼쳐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러니 다시 한번 시작해봐도 될지도 모른다는 용기까지도. 물론 새해가 된다고 갑자기 상황이 바뀌거나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리셋되는 것은 전혀 없지만 우리는 암묵적으로 1월 1일은 새롭게 시작되는 시간이라며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새롭게 또다시 삶을 꾸려 가본다.


또 한 번 새해가 시작되었다. 12개월을 보내면 우리에겐 또다시 1월 1일이라는 리셋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어려움이 펼쳐질지라도 무너지지 말고 열심히 하루를 채워 가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