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시작

6월에

by 채플힐달봉

이번 여름은 많이 뜨겁다. 5월부터 덥더니 지난 주에는 매일 더위 경보가 울렸다. 전에는 없던 것이다. 이 곳 채플힐에 산 지 햇수로 12년째인데, 그동안 여름이 이렇게 무서울 정도로 더웠던 적은 없었다.

에어컨이 종일 돌고 있는 집 안에 있는데도 바깥 풍경의 열기가 창문을 뚫고 후끈하게 전해질 정도다.

아이들이 방학을 앞둔 6월 초입에 덜컥 겁이 났다. 여름의 시간을 채울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한달 동안 한국을 방문했었다. 한국 방문은 나에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습기와 열기,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이제는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장애인 편의시설과 인식의 부족. 화음이와 함께 하는 한국 생활은 불편함과 과도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시간은 촘촘하고 바쁘게 흘렀고, 덕분에 나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방학의 무료한 시간에 대한 책임감과 스트레스에서 자유할 수 있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계획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화음이가 참여할 만한 여름 캠프나 프로그램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행인 것은 7월 한달 동안은 학교에서 여름 수업을 개설한다는 것이다.

모든 장애학생을 위한 것은 아니고 그간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긴 방학기간동안 잊어버리고 후퇴할 여지가 있는 학생들에 한한다. 화음이는 그 범주 안에 있다.

방학이 시작되고 여름 학교를 기다리는 지난 3주 동안, 나는 매일 화음이의 하루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고민했다. 오전 8시만 되어도 더웠다.

화음이가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아침 6시 반부터 커뮤니티 놀이터에서 뛰어다녔다.

최근 몇 달 사이 채플힐 놀이터들이 하나 둘 장애아이들의 접근이 용이한 시설로 교체되었다. 멀쩡한 놀이터들을 왜 저렇게 다 헤집어 놓았나 했더니 장애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공사중이었던 것이다.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통로가 넓은 미끄럼틀이 세워지고 놀이터 곳곳에 non-verbal 아이들의 커뮤니케이션 보드가 등장했다.

계단이 없어지고 발판이 많아졌다. 이런 작업들이 실행될 때까지 누군가는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정보를 수집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사람들을 모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열심이 나의 여름을 돕고 있었다.

놀이터는 언제나 열려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늘 보이지 않는 문이 굳게 가로막고 있었다.집 안이 답답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 앞까지 갔다가 지레 겁을 먹고 발길을 돌렸던 적이 얼마나 자주 였던가.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근거없는 위축일까.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발을 구르면서 항의를 하지만 행여 일어날지도 모르는 ‘만약‘을 피하기 위해 나는 서둘러 도망을 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를 향한 미안함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눈물로 터져나오곤 했다.

이렇게 누군가의 수고로 ’이곳은 장애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라는 명찰이 높이 달리면 이 곳의 문이 이제야 열린 것처럼 자유롭고 떳떳해진다.

나는 여전히 내 아이와 누군가가 부딪히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세워 준 명찰 아래에서 한결 당당해졌다.

앞서 말한 종류의 위축과 불안은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느끼는, 벗어버릴 수 없는 피부와 같은 것이다.

화상입은 피부가 완치된 후에도 불을 보면 쓰라린 잔상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제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고 짐짓 태연한 척을 해도 장애아이의 부모가 느끼는 쓰라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도없는 시선을 오해하고 그들의 선의를 왜곡하게 되는 것도 치유되지 않은 내면의 결핍 때문이다.


며칠 전,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동네 수영장을 갔다. 사람들이 없을만한 시간을 이리저리 가늠해 본 후 가장 최선의 시간대라고 진단 내린 11시 무렵이었다. 역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녀 셋을 데리고 한 엄마가 수영장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30분 가량, 아이와 나는 그 넓은 수영장을 다 차지하는 호사를 누렸다.

화음이보다 어린 고만고만한 나이대의 세 자녀를 데리고 뜨거운 여름 볕 아래에서 아이들에게 꼼꼼히 썬블록 크림을 발라주던 그 엄마와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지만 나는 속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화음이는 어느새 나와의 거리를 잔뜩 벌리고 꼬마들에게로 홀린듯 접근했다. 나는 행여, 화음이가 그 아이들을 만지거나 잡아당길까봐 노심초사 아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런 나의 긴장과 불안을 눈치 챘는지 그 엄마는 말했다.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우리는 스페인에서 왔고 신체 접촉을 좋아하고 익숙한 사람들이에요.“

그 말에도 안심할 수 없어 연신 내 몸으로 그들과 화음이 사이에 바리케이트를 쳤다. 화음이는 그런 나를 짜증스러워했다. 나는 이제 화음이에게 완전한 방해꾼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다행히 고만고만한 꼬마 셋이 화음이를 환영해주었다. 아이들은 낯설어했지만 이내 화음이의 둔한 움직임을 눈치챘고 자신들이 가져온 물총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예상보다 한참을 더 수영장에서 그들과 함께 놀았다.

화음이의 허기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제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가야했다.

나는 그들과 헤어지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우리를 받아들여주고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엄마가 답했다.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하죠.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다투기만 하는데 당신의 아이를 통해서 배려를 배울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에 나는 한번 더 감사를 전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강제할 수 없는 일이다.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하여 비난하거나 서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가끔, 다름을 참아주고 격려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움츠렸던 자아가 기지개를 켜며 자신감을 얻게 된다.

이 여름에, 이 채플힐에서의 만남들이 우리를 자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