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정기 진료를 보던 화음이의 주치의가 “앞으로 2년 안에 화음이의 생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매일 화음이의 몸을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에 2차 성징의 징후를 이미 목격하고 있었다. 2년이라는 유예 기간이 주어지긴 했지만 언제 시작되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성장세였다. 나는 매일, 아이의 기저귀를 교체하면서 뜨끔뜨끔 놀라곤 했다. 아이의 성장에 지레 겁을 먹고, 혹시 오늘일까 내일일까, 불합격 통지서를 받아 든 입시생처럼 벌벌 떨며 기저귀를 확인했다. 화음이는 12살이 된 지금까지도 대소변을 스스로 가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리까지 시작해 버리게 된다면, 돕는 자들의 수고가 곱절이 될 것이 뻔했다. 아이가 제 몸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나의 공포를 가중시켰다. 나는 매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생리라는 것이, 나에게는 평생 아주 지긋지긋하도록 벗어버리고 싶은 오명이었다. 매달 생리 시작 3일 전부터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에 감정이 널뛰기를 했다.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무력감, 고작 호르몬 따위에 매번 굴복당하고 마는 나 자신이 그렇게 하찮을 수가 없었다. 찢어지는 복통과 지끈거리는 두통은 가뜩이나 늘어가는 주름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생리에 대한 나의 경험과 인상이 이렇다 보니 딸들에게 나타나는 2차 성징을 감사로 받기가 무척 어려웠다.
첫째 딸의 초경 때는 어찌어찌, 이런 심리를 꽁꽁 감추고 억지스럽게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다. 케익을 굽고 카드를 그렸다. ‘소녀에서 어여쁜 숙녀가 된 너에게’라고 썼다. 내가 느끼는 안쓰러움보다 아이가 느낄 공포와 놀람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케익에 초를 붙이고 꽃 왕관을 만들어 쓰고는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둘째 딸의 초경 앞에서는, 그때처럼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번 시작되면 평생토록 따라다닐 피와의 전쟁을 나는 마냥 축하할 수가 없었다. 둘째 아이의 전쟁은, 아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주변 모두를 참전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치의의 선고가 떨어진 그날부터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청소년 전문 산부인과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생리양을 줄이거나 멈출 수 있는 여러 시술들을 안내받고 관련된 자료들을 제공받았다. 의사는 초경이 보이면 곧장 예약을 잡고 다시 자신을 찾아오라 일렀다. 나는 태풍에 대비하는 농부가 비장한 마음으로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듯이, 주변 모두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화음이가 제 몸의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기를, 내가 부디 인내하며 지혜롭게 아이를 잘 케어할 수 있기를. 나의 호들갑이 그렇게 2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니,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하는 당연한 통과의례일 뿐인 ‘초경’인데, 무슨 천지개벽할 운석이 떨어질 것처럼 주변인 모두를 긴장시켰다.
화음이의 식탐이 부쩍 심해지고 몸 곳곳에 지방 비율이 높아졌다. 허벅지와 엉덩이 주변에 튼살의 흔적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은 이전보다 더 둔해져서 소파에 한번 앉으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자꾸만 늘어졌다. 짜증도 늘었고, 유독 ‘엄마’ 말을 안 들으려 했다. 사춘기가 시작된 것이다. 발달 장애아를 돌보는 엄마로서 참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지능은 거의 발달하지 않고 제자리인데 신체는 남들과 다름없이 꾸준히 제 때에 자라 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지만 화음이의 경우에는 뇌의 기능이 몸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인지 능력은 2-3세에 머물러 있지만 몸은 사춘기에 접어들어, 호르몬의 변화를 감추지도 못하고 더 선명하게 발산시켰다.
대망의 그날은, 방심하고 있던 어느 오후에 불현듯 발생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게 당최 무슨 일이냐!’며 의문 가득한 눈으로, 어쩌면 조금 겁먹은 얼굴로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아, 이건 화음이가 예쁜 여자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야. 별 거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그 말은 나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기도 했다.
화음이에게 ‘피’라는 것은 지금까지 상처와 고통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이것은 필시 자신의 몸에 크나큰 상처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는 연신 기저귀를 벗어던지고 아픈 제 몸을 휴지로 닦아냈다.
큰일이었다. 맙소사!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기저귀를 벗어던진다면 앞으로 외출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도 흡사 범죄현장을 방불케 하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해야 할 것이었다. 미리 알려두지만, 나의 상상력은 늘 극단적이다. 나는 늘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상상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아이의 초경을 맞닥뜨린 나는 이미, 앞으로 달에 한 주 이상 모든 외출을 차단하고 집에 꽁꽁 갇혀있을 계획을 세웠다.
주변인들에게 아이의 초경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기도를 부탁했다. 그중 몇몇이 지금의 내 상상력과는 상반되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축하합니다.
이 무슨, 뜬금없는 축하란 말인가. 이 상황에 지금 축하가 웬 말인가. 나의 고충과 수고를 그들이 잠시라도 공감했다면, 섣부른 축하 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만 버럭, 화가 났다. 언짢은 기분으로 혼자 식식거리고 있을 때, 친한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그 언니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은 경위와 그들의 경솔함에 대해 낱낱이 고발했다. 그러자 차분히 나의 말을 경청하던 언니가,
“화음이가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음에 대한 축하 아닐까? 제 때에 해야 할 것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화음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니까.”
아아-,그 말을 들은 나는 정말 어디론가 숨어들고 싶었다. 너무 부끄러워 부끄럽다는 말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그간, 나는 얼마나 자주 아이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었던가. 그간 쌓아 올린 기도의 시간이 무색하게 내가 조금 더 수고로워졌다는 이유로 냅다 불평부터 쏟아내는 꼴이라니.
하필 이번 주, ‘Medical Terminology Systems’ 챕터가 ’Female Reproductive System’이다. 나는 이번 학기에 Medical Terminology 2 과목을 수강 중이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신비롭게 만드셨는지, 공부하면 할수록 경이롭다. 나의 딸이 겪는 이 모든 변화가 하나님의 창조를 드러내는 찬양인 셈인데, 아이가 온몸으로 드러내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나는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걸려온 친한 언니의 전화는, 더 이상 입술로도 마음으로도 죄짓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였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는 덧붙여 말했다.
”집에 있으니 호기심에 그러는 거지, 오히려 밖에 나와 있으면 자기가 생리한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릴걸! “
그 말이 맞았다. 화음이는 나의 우려와 달리, 되려 성숙하고 차분해진 모습으로 여성으로서의 통과의례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여자가 된 화음이가 다른 때보다 더 말갛고 예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