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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Mar 05. 2022

여로에서 (20)

불행은 통제되지 않는다



 열한시 반쯤 일어났다. 아침은 대충 챙겨먹었다. 남아서 굴러다니는 쿠키 두어개와 우유 한 잔을 먹었을 뿐이다.

 ‘좋아. 이제 오후 두 시에 음성판정이 나오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겠지’

 입이 텁텁해 양치를 하고 나서, 소파에 누워 딱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에 결과 메일이 왔다.



 역시  ‘다음날 오후 두 시’라는 건 습관처럼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는 정오에 온다.

 나는 또 다시 양성판정을 받았다. 러시아어는 못하지만 대번에 알 수 있었다. PDF 파일 중간에 발견됨ОБНАРУЖЕНА이라는 글자가 똑같이 출력돼있었다. 바뀐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격리되어 있어야 했다.


 ‘다시 양성 판정을 받았어요. 알아보니 이거, 완치가 되어도 양성이 나올 수 있다고도 하던데… 러시아에는 다른 격리해제 기준이 없나요?’

 없어요. 라는 영사관 직원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동이 자유로워지려면 음성을 받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 씨발! 오-우, 우어어! 씨!! 발!!! 씨이-이—발!!” 나는 라파엘의 집에서, 이미 낡아서 속이 터진 소파에다가 주먹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누가 잘못한 건 없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몸 상태가 좀 괜찮아졌다고 해서, 영사관의 연락을 받고 괜히 ‘오늘쯤 검사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한 내 쪽에 있었다. 성급한 판단이었다. 아무리 백신을 맞았다고 해도, 신체 건강한 이십대 남자라고 해도 닷새만에 바이러스가 자취를 감춰줄리 없었다. 직원분으로서는 내가 자신감있게 이야기하니 예약을 잡아줬을 뿐이고, 검사소는 검사를 해달라고 하니 검사를 해줬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건 부조리하다. 정말로 이건  부조리하다. 검사를 받을 때마다 내야하는 천육백루블은 그렇다 치자. 왔다갔다 하는데 드는 돈과 시간도 그렇다 치자고. 하지만 다 나아도 양성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이 여행지에서의 답답한 구금 생활이 대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최악인 건 그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쉬는 것? 그건 이 이상으로 할 수가 없다. 꼬박꼬박 검사소에 가서 코를 후벼파고 돈을 내는 것? 그것도 이미 하고 있는 짓거리다. 아마도 다음날쯤, 다다음날 쯤에 또 다시 검사를 받고, 또 다시 ‘여길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 가득차 그 다음날 정오가 되면, 또 다시 양성이 확인되었다는 서류를 받고 이러한 좌절할 것이다. 자기 존재를 버텨보고자 한계의 한계까지 부풀렸던 기대감과, 이내 폭력적인 단어 몇 개로 쓸모없어진 잔해들을 치우며 나락으로 침잠할 것이다.

인생이 이런 식으로 나를 골탕먹이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내가 겪어야했던 불행은 대체로 모호하고 추상적인 것들이어서, 나는 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탁월한 표현력을, 나를 부지해줄 동정과 연민을 이끌어내기 위해 끈질긴 인내심을 동원해야 했다. 예컨대 나는 고아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고아나 다름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아버지의 이른 죽음이나 어머니와의 절연을, 족보가 꼬인 친척들은 남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 따위를 늘어놓아야 한다. 차라리 천애고아로 태어나버린다든가 하는, 누가 봐도 명백하고 뚜렷한 불행은 내게 주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암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암은 너무도 알아보기 쉬운 확실한 불행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머리 어딘가에 암인지 뭔지 모르는 종양이 발견되었고, 그 크기가 너무 애매해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몇백킬로미터 멀리에 있는데, 막상 가보면 진료를 볼 수 있는 의사가 부재중이어서 돌아올 때까지 근처 민박을 알아보아야 하는, 옆에는 도와줄 사람도 없고 몸상태도 좋지 않지만 또 도저히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는 아닌 그런 모호한 부류의 불행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따라서 내가 겪은 어려움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이건 뭐라 말할 수 없이 짜증스러운 일이고, 나 자신조차 ‘사실은 내가 불행한 게 아니라 유독 불평불만이 많은 인간일 뿐인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절차다. 나는 전부 관두고 화장실에 간다. 혼탁한 전등 아래에 작은 거울이 보인다. 내 머리는 정확히 사람을 거슬리게 만드는 길이로 자라있다. 타일에다가 머리를 몇 번 처박았다. 이미가 깨질 것같이 아팠지만 피가 날 정도는 아니다. 항상 그런 식이다.



식재료가 전부 떨어져 근처 슈퍼마켓에 들렀다. 커다란 생수와 과일주스, 햄, 빵과 컵라면 같은 것들을 샀다. 신선식품 매대에 ‘김치’라고 쓰여진 것이 있어서 헐레벌떡 주워담았다. 김치보다는 양배추 절임에 가까운 것이긴 했지만, 그만해도 반찬으로는 훌륭하게 느껴졌다. 아파트로 돌아와서 사온 음식들을 되는대로 입에 우겨넣고 소파에 누워 잠들었다.

오후 여덟시가 돼서 일어났다. 정신없이 잤지만 개운한 느낌은 전혀 없다. 머리는 더 안 아픈데 이제는 몸이 부대꼈다. 방안 공기가 답답해 문을 열자 십초만에 추워졌다. 금방 살갗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신선한 바람을 쐬지 않으면. 그렇지 않았다가는.

 ‘정말 개좆같은 하루구만… 긍정적으로 볼 구석이 하나도 없어’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오늘도 격리 돼있었고,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더듬으며 추억에 빠지는, 힘들긴 했지만 보람은 있었던 그런 하루들이 먼 과거의 일인양 느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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