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고싶다
새벽 네 시. 예카테린부르크에 정차하는 소리 때문에 잠깐 깼다. 예카테린부르크 역시 인구 백만이 넘는 큰 도시라서, 약 삼십 분동안 길게 정차하는 곳이었다. 내가 반팔을 입은 상태로, 모자만 쓰고 밖으로 나가자 담배를 피고 있던 세르게이가 ‘안 추워?’ 하고 묻는 동작을 했다. 잠이 덜 깼던 나는 고개만 몇 번 끄덕이고, 불꺼진 예카테린부르크역을 살펴보았다. 얇은 나무판자 두께만큼 쌓여있는 눈. 슬리퍼 뒤꽁무니가 플랫폼 돌바닥 위로 하얀색 궤적을 끌고 다녔다. 조금 추워져서 객차로 돌아 들어갔다. 볼일을 본 다음 불꺼진 객실에 누워있다가. 불쑥 생각나는 앨범이 있어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제리 멀리건의 <Night Lights>는 언제 들어도 훌륭한 앨범이지만, 까마득한 밤에 가로등 불빛이 침침하게 비칠 때 들으면 무념무상… 그 순간만큼은 최고의 재즈 음반으로 거듭난다. 도입부의 피아노는 멀리건 본인이 연주한 것이다. 콰르텟에 피아노를 넣지 않은 건 ‘나보다 나은 피아니스트가 없어서’라나. 농담반 진담반이겠지만, 타이틀 곡에서만큼은 맞아떨어지는 주장이다. 수줍고 서투른듯한 피아노 건반이 풍부한 바리톤 금관으로 전이되는 과정이 늘 흥미롭다.
오전 열한시 반에 일어났다. 역에서 샀던 빵 두 개와 물을 같이 먹고, 간단히 양치를 했다.
인터넷은 가끔 터졌다. 러시아 서쪽에는 대도시가 많다. 이미 지나친 예카테린부르크와 페름, 발레즈노 같은 곳들은, 격리기간만 없었더라면 하루쯤 머물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코로나에 걸렸고, 스스로를 격리시켰고, 많은 시간과 정류장들을 그냥 지나쳐보내야 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그런 곳에 가게 될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이삼십분 가량 정류장을 거닐었던 도시들. 못내 멀어져가는 그 마을들에는 틀림없이 따뜻한 숙소가 있고, 베개가 있고, 특색있는 음식과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 내가 진정으로 찾는 것은 없었으리라 이제는 단언할 수 있다. 이것은 러시아나 그 도시들에 대한 무례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 것도 찾고 있지 않았으니까. 뭘 찾아야하는 지도 모르고 여기 떠나왔으니까.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가로지르는 건 평생 한 번으로도 족하다. 만일 그럴만한 기회가 한 번 더 생긴다고 한들 차라리 다른 선택을 하게 되겠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찾아야하는 건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글을 쓰다가 손머리를 하고 누웠다. 눈을 감았다.
보름도 전도 하바롭스크에서 치타로 향하던 그 열차 안에서였다. 술기운에 안드레이가 한 말들이 떠올랐다. 바로 다음날만해도 다 잊어버린 얘기들이었는데.
“루크, 난 네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너는 더 배울 수 있어. 러시아어든, 영어든, 뭐든 배워야해. 나는 너와 잠깐 이야기한 것 뿐이지만. 너는 네 분야에서 더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어. 난 느낄 수 있어”
“넌 날 과대평가하고 있어” 라고 나는 대답했었다. “나한테는 그럴 재능도 능력도 없어. 심지어 그럴 의지도 없다니까. 인간이 아주 망가져버렸지. 뭘 하고 싶은지도 몰라. 그냥 이렇게 글이나 쓰다가 죽을 거야. 그런 미래밖에 상상할 수 없어”
“글쎄… 그건 너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 같은데”
“속이고 있다고?’
“적어도 의지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느껴져”
“그래?” 나는 ‘또 이런 식이군’이라는 투로 대꾸하면서, 인상을 팍 쓰곤 윗입술을 살짝 깨물었던 것 같다. 왜 다들 내게 ‘삶에 대한 의지’를 불어넣지 못해서 안달인거야.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단 말이다.
“넌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아. 루크”
“적어도 그건 사실이네” 나는 최선을 다해 비아냥거렸다.
“잃어버린 게 너무나 많아” 내 기분나쁜 말투에 전혀 개의치 않는 건지, 아니면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하여간 안드레이는 전과 똑같은 태도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 것도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게 무슨” 나는 자기가 무슨 인생의 대단한 선배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고양시키려는 안드레이의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 “됐어. 알았으니까, 내 인생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도스토옙스키나 체호프 얘기 같은 걸 하자고. 그쪽이 더 재밌잖아. 푸쉬킨은 어때? 일제치하 대한제국에는 윤동주라는 시인이 있었는데…”
“좋아. 네가 원한다면 그만 이야기할게. 하지만 너는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알았다니까. 그렇게 할게” 내가 대답했다. “약속할게”
물론 약속을 지키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우연히 상황이 맞아 떨어져서, 뒤늦게 떠올랐을 뿐이다. 퀘스트가 너무 많은 오픈월드 어드벤처 게임에서, 언제 어디서 받았는지도 모를 부탁을 의도치 않게 들어줬을 때 ‘퀘스트 완료 : 안드레이의 권고’ 라고 쓰인 안내창이 팍 뜨는 느낌이랄까.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다—그건 안드레이의 말이 맞았다. 적어도 어떤 부분에 한해서만큼은, 그 대머리 아저씨는 나를 나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열차칸에서 너무 많은 단서들을 준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한국에서는—러시아에서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작가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납세자이고, 쉬지 않고 일할 의무가 있는 노동자인 동시에 불우한 정신질환자였다….
러시아로 떠나기 몇 달 전, 나는 자퇴했던 대학에 다시 들어가고 싶어서 재입학 정보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건 야심한 밤에 일어난 일로, 수면제를 먹고도 잠에 들지 못해 벌였던 여러가지 기행 중 한가지였다. 나는 심지어 그 재입학 요강이며 준비서류 따위를 프린트해놓기까지 했다!
그 다음날 일어난 나는 아침밥을 먹고, 항우울제와 메틸페니데이트를 두알 씩 삼키고 누워있다가, 돌연 열불이 나서 그 서류들을 마구 찢고 구긴 뒤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돈은 없고 해야할 일은 많은데, 이제와서 대학교 새내기가 되서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아무리 약기운이 심했다지만, 지랄도 정도껏 해야지… 더구나 난 이제 좀있으면 서른살이라고’
또 돌아간다고 해봤자 처음은 경영학이 아닌가.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려면 국문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해야 할텐데. 전과가 그리 쉽지도 않을 것이고, 돈도 엄청나게 들 것이다. 공부에 전념하는만큼 일은 소홀해질 것이다. 쪼들리는 생활 때문에 무리한 일을 떠맡을 것이다. 그렇게 생활에 침식되다가 낙제점을 몇 번 받으면… ‘이게 대체 뭐하는 짓거리지’ 하는 깨달음을 얻고 또 다시 자퇴해야 하겠지. 터무니없는 헛소리야. 헛소리. 마감이나 열심히 하라고. 죽을 때까지 마감해야지. 죽더라도 마감은 하고 죽어야지.
치타에서 안드레이가 말했다.
“네가 영어나 러시아어를 조금만 더 잘했다면. 우리는 좀 더 엄청난 대화를 할 수 있었을 거야”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그 다음말을 영어로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다가, 그만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걸. 아무리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더는 잘할 자신이 없는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없는 나이’가 됐는 걸. 그런 말들을 뱉는 대신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배우고 싶다. 뭔가를 이렇게 더 배우고 싶었던 적이 없다. 돈이야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코로나 상황이 해소되면, 전처럼 홍대 근처에서 작은 북클럽이라도 하며 소일거리를 하는 거야. 그것도 안되면 글쓰기 과외를, 그것도 안되면 다섯살때 죽은 아빠처럼 택시를 몰아서라도…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여기서 ‘이쯤 했으니 됐어…’라고 생각하고 다 끝내버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그냥 새내기 여자애들한테 관심이 있는 건 아닌가?’ 라고 자문해보니, 어마어마한 자기혐오감이 밀려와 모든 계획을 끝장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건… 그건 너무 추하잖아… 서른살이나 먹고서… 지보다 한참어린 여자애들한테 집적거리기나 하는 건… 양심적으로, 너무 추해…’
내가 새내기였을 때는 일학년이랑 사귀는 이삼학년 선배들조차 공공연한 조롱의 대상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진심이 아니잖아’ 라고 마음속의 안드레이가 말했다. 왜 안드레이인데? 미처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스무살 때랑 상황이 다르잖아. 더 이상 하루에 자위를 다섯번이나 해대던 애새끼가 아니라고’
‘맞아. 이제는 두 번도 힘겨워’
‘더구나 어차피 찌질이인 네 근본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너는 개좆밥 INFP따리에 불과하다고. 네가 스무살 스물한살 여자애들한테 말이나 걸 수 있을 것 같냐?’
‘분하지만 그 말도 맞군… 근데 안드레이. 한국말은 언제 배운거야?’
‘…’
꿈에서 깨자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열차는 키로프라는 역에 꽤 오랫동안 정차했다. 나는 러시아 유심칩의 데이터가 다 떨어진 것을 확인했고, 삼백 루블쯤 넉넉하게 충전해놓으려고 몇 차례 카드 결제를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여기서도 카드가 막힌 건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는데 인터넷이 막힌다면 정말 막막할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번역앱을 써서 사이트를 뒤져보았는데, 다행히 결제가 필요없는 약속충전기능을 찾아 오십 루블을 긴급수혈할 수 있었다. 천원도 안 되는 돈때문이 이 짓거리를 하다니.
식당칸이 있는 일번 열차와 내가 있던 십일번 열차는 열차 양쪽 끝에 위치해있었다. 맥주 한 병을 마시기위해서, 나는 시베리아의 찬 바람으로 마구 흔들리는 열차 연결부를 열 곳이나 지나야했다. 그곳에서 안드레이와 마셨던 칼스버그를 한 병 마신 뒤 객실로 돌아왔다.
알콜로 위를 적시고 나니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마지막 남은 참깨라면을 뜯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어째 김치면보다 더 맵게 느껴져 속이 쓰렸다. 매운맛에 대한 내성도 러시아화가 돼버린 걸까.
엄청나게 긴 하루였다. 체감상 자정이 넘은 것 같은데, 시계로는 아직 여덟시밖에 되지 않았다. 실제로 노보시비르스크와 모스크바 사이에는 네 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어떤 구간에선 한 시간을 내리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삼십 분을 되돌아가있는 역도 있다. 횡단열차 안에서의 시간감각이란 덮어두는 쪽이 좋다. 나야 이미 경험한 것이긴 하지만. 이전 구간과는 달리 지금의 내겐 수면제가 충분치 않다. 나는 한 시간 정도 글을 더 쓰다가, 수면제 반 알을 더 삼키고 누웠다. 내일 아침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태양이 다시 떠올라있길 바라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