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성자 Jul 31. 2017

<비밀의 숲>은 말한다, 당신의 잘못을 책임지라고

<비밀의 숲>이 끝났다.


TV가 없어서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데, 넷플릭스 덕분에 며칠 밤을 새가며 정주행하고 말았다. (한번 보면 절대 끊을 수가 없다) 만듦새는 둘째치고 메시지와 화법이 가히 감동적이었다.


캐릭터의 선명한 비교를 통해 거침없이 주제를 드러내는 패기와 속도감이 멋지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거나 현실을 냉소하지 않는 균형적인 시각 역시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짙은 애정.  


이 드라마의 인상적인 '대비'를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이하 내용은 아직 안 본 사람들에게는 스포일러겠지만, 알고 봐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드라마이니 충분히 재미있다.




결함으로 시작했지만 '검찰'이라는 특수한 세계에서는 아무나 지닐 수 없는 완벽함으로 작용한 뇌수술, 그로 인해 불필요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올곧게 사건을 밀고 나가는 황시목과,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나는 애아빠다' '한번만 믿어줘' 등등 맹목적인 선의를 요구하며 비난을 희석하려는 서동재의 캐릭터 대비가 우선 두드러지고,


진실 수사를 명목으로 만인을 의심하기 일쑤인 냉혈인간 황시목의 일상적인 비매너와, 범죄자든 피해자든 '사람 목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한여진의 사랑스러운 배려가 장면마다 흥미롭게 대비 또는 보완된다.


특히 동지인지 적수인지 애매했으나 마지막화에서 드러난 두 인물의 차이, 이창준과 이윤범의 발화와 행동이 의미심장하다. 한 명은 검사로서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부패에 물든 자신의 과거를 책임지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고, 다른 한 명은 대규모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도 휠체어에 앉아 그저 '나는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 드라마는 진실과 정의 수호를 소명으로 하는 검찰세계를 소재로 '책임'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요즘 내가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행동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으나, 예를 들어 스스로 잘못한 게 아무 것도 없는 황시목이 부패한 검찰들의 잘못에 대해 대표로 사과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최근 유독 '아프다'는 사람이 많다. '나는 약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프거나 약한 상태를 고려하는 것과 그가 실제로 어떤 지위를 갖고서 행한 선택과 행동, 발언,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로 인해 발생한 어떤 상황에 대해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 서로의 잘못이 교묘하게 뒤엉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사소하더라도 원인을 제공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유발했다면 일단은 제대로, 구체적으로 사과부터 해야 한다. 권한과 지위를 가진 사람일수록 더더욱.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상대방의 마음이 움직이고, 그때부터 다시 '대화'가 가능해진다. 변명도, 속사정도, 개인적인 아픔도 그 이후부터 보이고 들리는 법이다. 보건복지부도, 조윤선도, 탁현민도,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도, 혹은 그 밖에 누구누구도.


당신이 가진 지위와 명예, 자존을 지키고 싶다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억울하다'는 말 대신 사과하고 책임지는 태도부터 보여달라. 그래야 모든 일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기승전책임론.
어쩔 수 없다. 사람의 삶에서, 인간사회의 역사 안에서, 그게 처음이고 끝이다.

작가의 이전글 청년수당과 적폐 청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