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전 이야기
2012년 나는 새로운 고등학교에 부임했다. 학생들 평판도 좋고 교통도 편리해 많은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선망하는 곳이기에 기대가 많이 되었다. 예상대로 3학년 담임을 하게 되었고 문과 남자반이었다. 옆반 담임선생님께서 "그 반이 조금 힘들 수도 있어요."라고 하시길래 감사하다고 말하며 속으로는 '지들이 힘들어 봤자지... 나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라고 생각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한 교사들과 일대일 면담을 가지셨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에게 "수첩 선생님, 미안해요."라고 말씀하셨다. 학생들 선택 과목에 맞춰 반을 편성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고 몇몇 학생들 때문에 힘들 거라고 하셨다.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대체 어느 정도 이길래?
과연 선생님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첫날부터 결석하는 학생이 있더니 일 년 내내 졸업식 빼고는 결석자가 없는 날이 없었다. 결석을 자주 하는 학생이 학교에 오면 또 그것도 문젯거리가 되었다. 수업 분위기를 흐려서 교무실에 끌려오는 경우도 있었고 선생님이 수업을 중단한 경우도 발생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일로 여러 학생들이 골고루 나를 힘들게 했다. 여기다 쓸 수 없는 각자의 사정에서 발생한 가지가지 문제들이 나를 옥죄어 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은 겸손하고 볼 일이다.
점심시간마다 학교 근처 야산 공원을 찾게 되었다. 산책로 주변 벤치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면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그 공원의 벤치가 아니었으면 병원을 다녔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자연 속 벤치 말고도 나를 숨 쉬게 해 준 존재가 있었다.
3월에 처음 학생들을 만나 조회를 하러 들어갔다. 전달사항을 말하고 교실을 둘러보는데 맨 뒷줄에 한 녀석이 이 곤히 엎드려 자고 있었다. 윗옷이 말려올라가 허리가 드러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몇 번 흔들어 깨웠으나 깊이 잠들어 들은 척도 안 했다. 이후에도 그 학생은 가끔 지각을 했고 또 가끔씩은 새벽에 등교해 조회시간은 물론 오전 수업까지 내리 잠을 자곤 했다. 궁금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학생처럼 조용한(?) 학생 말고도 활발하게 사고를 치는 학생들이 많아 제대로 상담해 본 것은 개학하고도 한참 지나서였다. 오랜만에 깨어 있을 때 교무실로 불렀다.
"너 밤에 뭐 하길래 맨날 자냐?"
"저 알바하는데요."
"무슨 알바?"
"고깃집에서 서빙해요."
그러고 보니 새벽부터 엎드려 자고 있을 때 몸에서 숯불 냄새가 났던 것도 같았다.
"몇 시에 끝나는데?"
"10시요."
"야, 그때 집에 들어가서 자고 오면 학교 올 수 있잖아?(좀 피곤하긴 해도)"
"네 그렇긴 한데... 가끔 일 끝나고 형들이랑 한잔 하다 보면 새벽이 돼요. 너무 늦으면(또는 너무 이르면) 아예 학교로 오지만 집에 들어가 잠들면 제시간에 학교 오기가 어려워요."
예상치 못한 솔직한 말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내 마음이 열리기도 했다. 비록 유흥비(?)로 쓰고 있지만 자신이 용돈을 벌어 넉넉지 않은 집안을 돕고 있었고 묻는 말에 꾸밈없이 대답하는 것이 맘에 들었다.
그 뒤로도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던 반이었기에 차근히 상담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2학기가 되자 반 학생들과 유대는 형성되었으나 결석하는 학생들은 더 많아지고 수시 지원시기가 다가오자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늘어나 학급의 분위기는 침울해졌다.
그러다 그 학생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엎드려 자고 있는 그를 불러 교무실에서 정신을 차리게 한 후 물었다.
"그렇게 자면 허리 안 아프냐?"
"(눈을 비비며) 괜찮아요. 습관 돼서요."
"하루 종일 자다가 가면 허무하지 않냐?"
"뭐... 그런 면도 있죠."
"너... 나랑 영어 공부해 볼래?"(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망설이다 물었던 것 같다.)
"(잠시 침묵하다가) 어떻게요?"
"선생님이 책 제목 적어줄 테니 내일까지 준비해올래?"
"네."
선뜻 같이 공부하겠다고 말해 의외였지만 다음 날이 되면 알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