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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Mar 28. 2024

또 다시 봄

어느 새 해는 바뀌고, 곧 봄이 오려는 듯 하늘이 푸르르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더니, 정말 사람의 일은 하늘만이 아는 것 같다. 작년 한 해를 곧 돌아가실 것 처럼 보내신 할머니께서 작년 12월께쯤 부터 식사를 시작하시고 조금씩 기력을 차리시더니 지금은 다시 괜찮아지셨다. 가족들은 한숨을 돌렸다.

요즘엔 밥도 잘 드시고 잠도 그전보다는 잘 주무신다. 물론 본인은 인정하지 않으시지만 말이다. ^^; 드시는 게 없으실 땐 당 수치도 높지 않아 오히려 당뇨약을 드시는 게 더 위험하다하여 당뇨약을 드시지 않았었다. 기력이 없으시니 종일 잠을 주무셨기에 수면제도 꽤 오랫동안 드시지 않으셨다. 혈압도 뚝 떨어져 있었기에 혈압약 마저도 드시지 않으신지 오래다. 그런데, 식사를 시작하시고, 기력을 차리시니 다시 약을 드셔야 했고, 다시 약을 드시기 시작하니 또 배가 아프기 시작하셨다. 이 무슨 악순환이란 말인가……ㅠㅠ


작년 7월부터 지금까지, 근 9달째 나는 할머니와 24시간을 붙어지내고 있다. 처음엔 늘 그렇듯 며칠 앓으시다가 본인 성에 차는 만큼 뭔가가 충족되면 다시 센터에 다니실거라 생각했고, 이후엔 이러다 정말 금방 돌아가시는 거 아냐? 싶어 결국 센터를 끊었다. 그렇게 집에서 내내 누워계시기를 9달 째. 할머니는 다시 괜찮아지셨지만 센터에 나가시는 걸 거부하셨다. 본인이 느끼기에는 매일매일이 곧 죽을 것 같으시단다. 누워만 계시지만 식사량은 늘었다. 이전보다 커진 밥그릇으로 한 그릇 반씩을 드신다. 하지만 늘 배는 아프시단다. 그런데 죽은 싫으시단다. 간이 좀 덜 된 것도 싫으시단다. 콜라를 달라시고, 커피를 드시고 싶다신다. 못드시게 하면 성을 내신다. 가족들은 어차피 관리가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니 드시고 싶으신 거 그냥 드리라 한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드시고 싶다신 것이 있으면 “그거 드시면 안돼요~”하고는 결국 드리게 된다. 할머니는 원하시는 것 드시니 좋아하시지만, 드린 나는 죄책감이 인다.


작년에는 정말 할머니 곁에서 꼼짝을 못했다. 드시질 않으시니 기력이 확 떨어지시고, 그러다보니 화장실도 부축해서 왔다갔다 해야 했다. 새벽에도 혹여 화장실을 가시고 싶어 하실 수 있으니 할머니 기척이 잘 들리는 거실에서 나는 잠을 잤다. 이런 것은 좀 드실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을 찾아 만들어보기도 하고, 좋았던 일들을 물으며 말을 붙이기도 했다. 그 좋아하시는 TV도 안켜시는 게 영 걱정이 돼 좋아하시는 노래나 불경을 유튜브로 틀어드리기도 하고, <사랑 손님과 어머니>와 같은 옛 소설들을 읽어드리기도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불쑥 돌아가시지 않기를 바랐었다.


작년 말부터 할머니는 식사를 시작하셨다. 환자용 유동식만 드시다 바로 밥으로 넘어가면 속이 못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 죽부터 드시는 게 어떠시냐 했더니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시며 “죽 시려. 밥 다오.”하셨다. 그러곤 정말 아무 탈 없이 식사를 하시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역시, 할머니는 건강체질이심이 분명했다. (물론 이 역시 본인은 극구 부정하시지만. ^^;;;)

할머니의 기력이 돌아오면 24시간 케어는 사라질 줄 알았다. 다시 센터를 나가시게 되고, 다시 그만그만한 일상생활이 시작될거라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기력만 돌아오셨을 뿐 본인이 나아졌단 생각은 전혀 없으셨다. 내내 누워계셨고, 내내 TV를 틀어놓으셨다. 집 안 가득 트로트가 울려퍼졌다.

“할머니, 소리 조금 줄일게요.” 하면 “잘 안들려!” 하며 다시 소리를 키우셨다.

“그럼 문 조금만 닫을게요.” 하면 “답답해! 열어 놔!” 하고 소리치셨다.

아침부터 밤까지 트로트를 들어야 했다.

숨을 곳이 없었다. 시선이야 부엌 모서리든 베란다든 어디 한 구석 피할 곳이 있었는데, 소리에서는 영 벗어날 곳이 없었다. 어디서든 할머니 방의 TV소리가 따라붙었다. 소리가 그토록 고문이 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이번에 톡톡히 알았다.


시할머니와 함께 산 지 어느새 9년. 코로나 시국과 이런저런 입원기간들을 제외해도 7년여의 시간을 나는 할머니와 보냈다. 그 시간동안 나는 때론 할머니를 좋아했고, 또 때론 미워했고, 또 가끔 측은했고,, 또 가끔 원망스러웠다. 그 모든 감정들을 섞은 것이 정(情)이라 한다면, 그래, 할머니와의 정(情)이 꽤나 쌓였을 터이다.


오늘도 할머니 방에선 트로트가 울려퍼지고, 알싸한 콜라를 찾으시는 할머니께 “그거 드시면 안된다니까~!” 하면서 또 한 잔을 따라드릴테지. 속으로 ‘아유~ 지겨워.’ 하면서도 “할머니, 슈퍼 갈건데 뭐 드시고 싶으신 건 없어요?“ 하고 물을테지. 궁시렁궁시렁 하면서 또 할머니 방을 스윽~ 기웃거릴테지.


나란 사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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