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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글 Jul 17. 2022

2월 20일 정류장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직은 추운 2월이 잠시나마 포근해지던 날 아무도 예상치 못한 눈이 내렸고 그 덕에 밖을 나서는 길이 즐거웠다. 숨을 내쉴 때마다 마스크 사이로 입김이 퍼지며 흩날리는 게 눈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흐린 날씨에 버스정류장은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차가웠다. 원하는 버스는 아직 10분여 시간이 남았고 찬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 때보다 시간을 길고 느린 것 같았다.
 
 머리 위로 버스 정보창에는 매번 내 버스를 제외하고 다른 목적지의 버스만을 울리는 섭섭함을 내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정보 창은 색만 따뜻하고 어떤 버스든 삭막하게 남 갈 길에 흥미 없다는 식으로 냉랭하다.
 
 기다림은 계속되고 우중충한 날씨만큼이나 검은색 옷과 모자, 장갑과 신발을 착용한 중년의 아저씨가 정류장을 찾았다. 차디찬 정류장에 혼자 서있다 보니 다른 온기가 찾아왔다고 생각하니 괜한 따뜻한 반가움이 마음속에 일었다.


그의 행동은 세심하고 단순했다. 시선은 벽에 붙은 노선표로 향하고 있고 응시된 초점은 어느 곳에도 정박되지 못했다. 그의 눈은 표류 중인 한 척의 배 같았다. 방향 키를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돌려도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는 방향이 무의미한 것처럼.
 
 그의 양손에는 처연하게 내려갈 정도의 무게를 가진 쇼핑백이 배의 닻처럼 지면을 향해 들려있다. 조심스레 쇼핑백 안을 흘깃 바라보니 전단지가 보였다. 전봇대, 가로등, 문 앞에 붙이는 전단지 말이다.
 
 닻을 내린 배의 몸이 내 쪽으로 기우며 점잖고 정중한 뱃고동 소리가 흘러나왔다.
 
 “00으로 가려는 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소리는 잔잔하게 울리면서 그의 마스크로 따뜻한 입김이 가득 차다 못해 터져 나왔다. 살랑살랑 흩날리다 기어코 사라졌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남긴 것은 몽글고 부드러운 진동만이 내게로 다가와 귀를 자극했다.
 
 “여기 큰 길을 따라서 쭉 올라가시면 될 것 같아요!”
 
 “아 이 길로요? 네, 고맙습니다.”
 
 다시금 닻을 고쳐 들어 제 갈 길로 항해하는 아저씨를 바라봤다. 거리는 멀어지는데 그가 내뱉은 잔잔한 말소리는 잔물결로 작게 퍼지다 점차 커지면서 내 마음까지 맞닿았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그가 망망대해에서도 갈 길을 포기하지 않고 연료가 있으면 모터로, 바람이 불면 닻으로, 바람이 없다면 노라도 저어가는 가장의 뒷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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