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s of Whom : Season 2 Ep 4.
나의 빛을 기록하는 시간.
타인의 빛이 아닌 나의 빛을 찾아나갑니다.
바래지 않는 빛과 색을 찾아서.
Season 2 Ep 4. 인간 김형일은 곧 축구선수 김형일
: 김형일, 프로 축구선수 편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걸 더 잘하자는 생각이 있습니다.
Q.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는 무작정 성인이 되고 싶었던 게 가장 컸죠. 내가 빨리 성인이 돼서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할 수 있는 걸 결정해서 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 컸어요. 그러다 서른이 넘어가고, 그런데 서른이 넘어가면서도 나이에 대해 잘 몰랐어요.
제가 서른일곱인데 저도 아직까지는 나이에 대해서 아직 몰라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어리다 보니 제가 나이가 많다는 걸 못 느끼겠고, 그들도 나를 편하게 대해주는 것도 있고.
거의 마흔이 돼가는 거잖아요. 요즘은 나이를 훌쩍 먹었다는 느낌? 너무 빨리 먹었다는 느낌. 나는 서른일곱이 아닌 것 같은데 나이가 무슨 서른일곱이야.
어릴 때는 ‘이거 해보고 저거 해보고 다 해보지 뭐.’ 그니까 뭔가 정답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답을 정해놓고 그 길로 가는 게 장점이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고,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는 ‘그냥 이것저것 다 해볼까.’라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이제 이걸 하자.’라는 태도인 거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걸 더 잘하자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그냥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돌아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돌아간다면’이 아니라 가지 않겠다. 현실적인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나이가 먹었다고 해서 무언가에 얽매여서 못하는 게 없어요. 그런데 나이가 좀 더 먹으면 지금 하는 게 재미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있네요.
Q. 무엇을 위해 살아오셨나요. 내가 무얼 위해 살아왔을까.
무얼 위해 살았다기보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이걸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축구를 했던 거고.
Q. 또 다른 전성기가 찾아올 거라고 기대는 안 하시는지.
저는 다 썼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또 다른 전성기를 원한다면 객관적으로 그건 좀 욕심 같아요. 저는 제가 이룰 수 있는 건 말도 안 될 만큼 이뤄봤다고 생각해요.
Q. 나의 기념비 문구.
진짜 노력하는 인간이었다. 살기 위한 노력.
Q.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나요?
좋아요. 그냥 김형일이라는 이름이 좋아요.
‘너는 진짜 잘 살았는가.’, ‘자신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네,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합니다.
Q. 선수로서 김형일과 인간 김형일은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
제가 인간 김형일이지만 선수 김형일로서 이룰 수 있는 걸 이뤄보고, 대우를 받아왔는데 축구선수 김형일 말고는 인생에 또 뭐가 욕심 나는게 있겠어요. 저는 내일 죽어도 무얼 못해봐서 아쉽거나 무서운 건 없는 것 같아요 하하.
그러니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돌아간 김형일이라면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마실 수 있는 사람,
그런 위치가 아니었을까.
Q.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가 없이 김형일이란 사람은 어떤 대우를 받게 될까요?
사람들이 당신을 저녁식사에 몇 번이나 초대할까요?
아마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함께 마실 수 있는 위치일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 축구를 못했어요. 중고등학생까지 축구를 못했는데 그때부터 저를 보고 함께하던 친구들은 성인이 되어서 제가 잘하는 모습까지 봐왔죠. 그 친구들이랑 포장마차에 가서 우동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시켜놓고 옛날이야기하면서 너는 용됐다고 하는데, 그 친구들만 저에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진짜 나를 얕볼 수 있는 친구들, 하하. 저는 그래서 그 친구들이랑 항상 만나거든요. 그게 마음이 편해요. 어딜 가든 제가 한 일과 행동에 대해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그런 게 불편할 때가 있어요. 그럼 이 친구들을 찾아가서 술 한 잔 마시면서 편하게 이야기하고 저는 그런 게 참 즐거운 거죠. 그런 친구들이 있으니까 제가 계속 겸손할 수 있지 않나 싶은 거죠.
저는 현재 커리어가 아니어도, 제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보는 인식 때문에 지금 커리어를 지키거나 더 잘하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돌아간 김형일이라면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마실 수 있는 사람, 그런 위치가 아니었을까.
오늘 잘 지내자.
Q.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악수를 하며 살아왔을까. 그중 진심 어린 악수는 얼마나 되었을까.
저는 실제로 악수가 인사에요. 회사를 가도 열다섯 명의 직원이 있으면 ‘안녕하세요.’하고 말로 하는 인사보다 한 명씩 안녕! 하면서 악수를 해요. 이게 제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을 해서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나면 친구들과 포옹하듯이 저의 애정 어린 표현이 악수에요. 그렇기 때문에 진심 어린 악수이고 오늘 잘해보자는 의미이고 그래요. 오늘 잘 지내자.
그런데 좀 쟤는 사람들은 악수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왜 나에게 다가왔는지 보이는 사람들. 선수시절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저를 만나는 이유가 명확히 보이는 사람들은 만나기 어려운 거예요. 술을 먹자고 해도 뭔가 꿍꿍이가 있어. 그러면 만나기 꺼려져요.
이야기를 진심으로 나누는 순간과
그때의 진심이
사람들의 매력이고 좋은 것 같아요.
Q. 인간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인간이 가지는 매력…
저는 사람들과 술 한잔하는 걸 좋아해요. 술을 함께 한 두 잔 마시면서 꺼내는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의 또 다른 매력도 알게 되고, 내 이야기도 같이 할 때 그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술을 마시면서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지면 그 관계가 진짜 좋더라고요. 그런데 술 주정을 하거나 술 버릇이 심하면 좀 가까워지는 게 어렵고…
이야기를 진심으로 나누는 순간과 그때의 진심이 사람들의 매력이고 좋은 것 같아요. 예쁘고 잘생긴 것처럼 한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해보고 이 사람과 맞는지 안 맞는지,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느껴봐야 하잖아요.
내가 굳이 강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Q. 당신을 처음 본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을 것 같나요?
쉽게 다가오지 못해요. 좀 무섭게 보는 것도 있어요. 지금은 많이 풀어졌는데 전에는 제가 벽을 많이 쌓아 뒀던 것 같아요. 경계심이었죠. 다 의심했어요. 나만 살아야 해. 내가 이겨야 돼. 축구를 하면서 플레이 스타일도 있으니까 사람들이 더 못 다가왔던 것 같아요. 분명히 내 팬인데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멀리서 바라보고, 멀리서 인사하고 하하.
벽을 쌓는 태도가 일종의 살아남기 위한 도구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많이 허물어졌어요. 선수를 그만두면서 더. 선수 때는 한정된 사람들만 만나왔는데, 은퇴 후에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더 그렇게 되었고…
이제는 ‘내가 이기고자 하는 욕심이 없어졌구나.’, ‘내가 굳이 강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내려놓았다는 것이 스스로 느껴지고, 사람들을 대하는 제 표정과 행동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이 제가 어렵다고는 하는데, 제가 굳이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경계심을 서로 쉽게 풀 수 있게 된 게 좋은 점 같네요.
Q. 살면서 감정조절을 못해서 실수를 한 적이 있는지. 너무 억누르거나 표출했거나.
모든 에너지는 보통 운동장에서 쏟았고, 운동장을 나와서는 쏟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단체 생활을 너무 오래해서 내가 단체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컸거든요. 내 욕심, 내 강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단체 생활에는 문제니까요. 그게 생활이고 삶의 환경으로 정해지면 그렇게 살게 되더라구요. 운동장을 나와서 내 감정을 크게 쏟아본 적이 없어요.
제가 마음이 편안하고 좋아야 또
다른 사람에게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날개
어릴 때부터 했던 생각인데 날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여기 갇혀 있는데,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 저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날아서 아무도 가지 못하는 뻥 뚫린 곳에 가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하고... 제가 산을 좋아하거든요. 뒷산을 가도 사람이 없는 시간에 가고. 날개가 있다면 내가 힘들 때, 아무도 없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곤 해요. 꽉 막힌 곳 말고.
제가 마음이 편안하고 좋아야 또 다른 사람에게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저만의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할 곳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 오전에 운동장에 나가서 혼자 연습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뻥 뚫린 운동장에서 모든 걸 풀어내기도 하면서 볼 차는 것 정말 좋아했어요. 스트레스를 받고 운동이 하기 싫어도 거기에 누워있자. 혼자 그렇게 힘든 걸 풀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 시간이 자동차가 되었네요.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시간이 빠듯하게 움직이며 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자동차밖에 없더라고요.
모두와 다 섞일 수 있는 색일 것 같아요.
그건 무슨 색이에요?
Q. 나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모두와 다 섞일 수 있는 색일 것 같아요. 이 무리에 이 색이 필요하면 이 색이 될 수 있고, 저 무리에 저 색이 필요하면 저 색이 될 수 있고. 딱 하나로 정해진 색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저만 보면 검은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나밖에 모르니까. 나밖에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나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맞출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건 무슨 색이에요?"
삼도씨: 남을 포용하면서도 내가 유지되는 사람의 검은색이네요. 저는 그게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과 어우러져서 산다고 해서 나를 잃어버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도 인간 김형일은 곧 축구선수 김형일일 것 같아요.
Seoson 2 Ep 4. 인간 김형일은 곧 축구선수 김형일
: 김형일, 프로 축구선수 편
내 안의 빛을 찾아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나의 색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의 여정을 걷든 그것은 변색이 아닌 또다른 색의 챕터로 넘어간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 기록을 모아 이번 겨울은 그림과 함께 책으로 편집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이야기와 말이 이 곳에 잠시 머무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 늦은 봄
삼도씨
*위 프로젝트는 스포잇과 함께 진행하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