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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도씨 Jun 08. 2020

그런데 다음이 있고, 그다음이 있기 때문에

Scenes of  Whom : Season 2 Ep 5.

나의 빛을 기록하는 시간.

타인의 빛이 아닌 나의 빛을 찾아나갑니다.

바래지 않는 빛과 색을 찾아서.





Scenes of Whom : 누군가의 장면들


Season 2 Ep 5.  그런데 다음이 있고, 그다음이 있기 때문에

: 김태륭, 프로 축구선수 편



경기든 요리든 즉흥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플랜을 가지고 가야 하죠.



Q.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요리를 좋아해요.

맛있는 걸 좋아하고요, 제가 직접 그걸 만드는 건 더 좋아해요. 어릴 때 외국생활을 하면서 현지 음식 먹는 것도 좋아했고 새로운 음식 먹는 것도 좋아하고. 식재료를 사서 내 손으로 만지면서 요리하는 그 과정이 너무 좋아요.


대학교 2학년 때 큰 부상을 입어서 반년을 병원만 다니고 쉬었어요. 부모님도 해외에 계셔서 혼자 병원만 왔다 갔다 했죠. 항상 병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서 장보고, 음식을 하나씩 해보면서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요리와 현재 삶과 공통점이 있을까요? 혹은 축구와)


음… 요리와 축구의 공통점.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축구와 요리 모두 과정이 있어야 하잖아요. 요리도 조리하는 과정이 있고, 축구도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 해설을 준비하는 과정이 있고. 과정이 없으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좋은 식재료를 장부터 봐야 하니까. 내가 오늘 뭘 먹기로 결정했으면 좋은 재료를 가서 봐야 하고 충동구매도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런 과정이 축구랑 비슷한 것 같아요. 어떤 경기를 잘하려면 감독 입장에서는 좋은 선수를 선발해야 하고, 훈련과정에서 좋은 선수를 가려내야 하고 팀원 조합도 잘해야 하고. 즉흥적으로 경기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플랜을 가지고 가야 하죠.



Q. 그럼 그동안 살아오면서 현실성 있는 계획을 주로 해오신 건지


적어도 축구 쪽에서는 그랬어요. 그런데 오히려 계획하고 나서는 이게 될까…?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꽤 있었죠. 꽤 있었는데 다 되게 했어요. 그리고 운도 따랐고. 고대 코치로 처음 들어간 것, 해설 시작한 것, 그리고 코치랑 해설 중에서 선택을 해야 했을 때 해설을 하기로 한 선택도 내가 이걸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어요. 더 재미있을 것 같고. 지금 보면 꽤 모험적인 선택이었죠.


지도자도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지금도 직간접적으로 단장을 하고 있으니까. 두 개다 잘할 자신은 있었는데 가장 큰 기준은 재미였어요. 재미. 내가 무얼 할 때 더 재미있을 것인가.



첫 번째는 재미였고, 두 번째는 ‘내가 뭘 더 잘할 수 있을까?’였어요.



Q. 어떻게 보면 자신에게 솔직하셨네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꽤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타인의 욕구 기준에 흔들릴 때도 많고요.


그때는 서른이어서 좀 젊을 때니까 패기도 좀 있었고… 저의 선택의 기준은 첫 번째는 재미였고, 두 번째는 ‘내가 뭘 더 잘할 수 있을까?’였어요. 그 두 가지였어요. 재미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거의 삶의 선택들을 그런 식으로 했어요. 그리고 기회를 누가 제공해주기보다 제가 찾아다녔어요. 어, 이런 게 있네 한번 해보면 어떨까? 이것도 해볼까. 뭔가 확정된 상태에서 그런 결정을 한 건 아니에요. 될 거라는 확률은 항상 낮았지만 ‘아, 이런 거 해볼 수 있겠네.’라는 생각으로 해본 거고 운도 따른 게 분명해요. 계속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런 생각은 안 드세요? 이거 해서 뭐해라 던 지... 사기가 좀 떨어질 때는 없으셨나요?)


이거 해서 뭐해 이런 건 처음부터 아예 안 하죠. 하하
뭔가 아, 이거다, 잘해보고 싶다 하는 것에 매진해서 했고, 그런 게 아니면 아예 흥미 자체를 못 느껴서 저는.

돌아보면 저는 환경 영향이 컸어요. 아버지가 특파원이었고,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프랑스에 살았어요. 저는 그게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던 게 성격 형성에 정말 큰 영향을 주었고요.



 ‘집 옆에 있는 프랑스학교가~’ 하면서 보내신 거예요.
알파벳도 모르는데…



Q. 어릴 때는 왜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거예요?


저는 항상 축구를 생각할 때 운명이라고 생각을 해요. 한국에서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아놓고 6살에 처음 프랑스를 갔는데, 보통 특파원 자녀들은 국제학교를 보내거든요. 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집 옆에 있는 프랑스학교가~’ 하면서 보내신 거예요. 알파벳도 모르는데… 그게 1990년인데 프랑스 아이들이 한국을 몰라요. 꼬레아라는 존재에 대해. 그 친구들은 머리가 까마면 중국, 일본, 아니면 캄보디아야. 너 중국?  아니, 자퐁? 아니, 캄보디아? 아니.

그럼 너 뭐야? ‘한국이야.’하면 몰라요. 심지어 인종차별이 좀 있을 때인데 말도 못 하니까 지금도 기억나는 게 아이들이 저한테 돌 던지고 침 뱉고 가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두 달, 세 달 버티다가 우연히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재능이 있었는지 경기장을 제치고 다닌 거예요. 그걸로 아이들이랑 금방 친해졌어요. 반년만에 프랑스 말 다 배우고, 왕따에서 이제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존재가 됐어요.


저에게는 축구가 좀 운명이었죠. 그때부터 축구선수가 꿈이었고, 어머님은 제가 축구하는걸 항상 반대하셨어요. 우리 집에는 운동하는 사람이 없다. 고로 너를 서포트할 수 없다. 너는 언젠가 꿈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저의 꿈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죠.  



주말이 있고, 내 가족을 챙기고, 내 사람들을 챙기고
그런 시간들이 너무 좋아요!



Q. 현재 핏투게더에 합류하게 된 계기


작년 1월에 합류했어요.  


2018년 12월까지 전업으로 쭉 해설을 7-8년을 해왔는데, 어느 순간 좀 뭐랄까 변화가 좀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2018년 가을부터. 몇 가지 좀 계기가 있었죠. 1년을 쉬려고 했어요. 해설만 7년... 일에 매진을 하면서 힘들었어요. 해외축구 중계를 위주로 하다 보니 일단 밤낮이 바뀌고, 건강도 많이 상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정규직이 아니에요.


2015.16.17.18 이렇게 4년 정도는 우리나라에서 한 회 해설량도 가장 많고, 제일 메인으로 했죠. TV 틀면 김태륭 나온다고 할 정도로? 하지만 이 시장 자체가 되게 불안정했어요.    


저는 7년 방송을 하면서 한 번도 스스로 내가 방송인이라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저는 축구인이지. 나는 지금이라도 해설을 그만두면 팀에 들어가서 지도자를 할 수 있고, 축구 행정을 할 수 있는데 방송 쪽에 있으면 축구하는 사람, 축구 현장에 가면 김태륭은 방송하는 사람 이렇게 돼버리니까 그것에 대한 정체성 혼란도 좀 있었고. 그런 것들이 좀 있어서 고민이 있던 시기에 이 회사에 콜을 받고 합류하게 되었죠.


(요즘은 괜찮으세요?)


되게 좋아요. 첫 번째로 밤낮이 제대로 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알람이 없어도 8시에 딱 눈을 뜨고. 12시 되면 졸리고. 그게 일단 너무 좋고. 두 번째로는 내 삶 – 주말이 있고, 내 가족을 챙기고, 내 사람들을 챙기고 그런 시간들이 너무 좋아요!


Q. 나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원래 가지고 계셨나요?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생각하게 되신 건지.  


원래는 일만 했어요. 서른까지는 선수생활을 했고, 서른 넘어갈 때 고려대학교 코치로 처음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한 건데 그때는 그냥 뭐 명확한 게 없었죠. 앞만 보고 가다가 고대 코치를 하면서 해설을 하게 되었는데 해설이 재밌어서 코치를 내려놓고 여기에 전념을 하게 되었고, 잘 풀렸고, 7년 동안 그냥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때는 정말 치열하게 일하는 재미로 살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는 시기가 왔죠. 그때부터 좀 저를 돌아보게 된 거예요. 앞만 보고 가다 보니 적도 많이 생기고, 내 주위에 공격적으로 다가가고, 제가 잃는 것도 많았었고.



어쨌든 축구였고, 저는 지금도 축구가 제일 좋고요.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걸 못 찾았고.
그 과정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았었고.



Q. 해설위원으로 일하실 때 좋았던 점은?


어쨌든 축구였고, 저는 지금도 축구가 제일 좋고요.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걸 못 찾았고. 선수로서 저는 주로 하부리그에서 뛰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았었고, 어느 순간부터 국가대표가 되고 해외리그에서 뛰고 그런 건 포기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한계를 느껴서 내가 당장 뛰고 있는 리그, 이게 2부 리그라도, 2군 리그라도 내가 재미있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자. 내가 만족할 때까지 뛰고 그 상태에서 스톱을 했던 거고요.


해설이 왜 재미있어졌냐면 2011년에 처음 시작을 했는데 뭔가 제가 노력한 만큼 반응이 빨리 나왔어요. 되게 좋은 반응이 팍팍오고 그 덕분에 빨리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해설위원 5년 차가 되었을 때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정점을 찍었으니까. 물론 운도 따랐죠. 제가 속한 방송국이 커지면서 콘텐츠를 다 바꾸게 되고 그러면서 월드컵도 중계하게 되고, 스포트라이트를 갑자기 받고 그 재미로 살았죠. 하하 선수할 때는 제가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었는데 해설을 했더니 반응이 바로 나오는구나. 반응이 빠르네! 그 재미가 있었어요. 거기에 빠졌었죠. 미쳤었죠.



사진 김태륭 제공



좀 더 노력을 했어야 했어요. 피나게 노력을 했어야 했어요.




일 최우선. 사람도 거의 안 보고, 내 일에 처박혀서 가족도 재껴두고, 그게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해설이라는 게 방송에 나와서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니까 준비하는 과정부터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목을 받고 김태륭 잘한다는 인정을 받고 그런 걸 처음 느낀 거예요 사실. 그런 걸 지키고 싶은 거죠. 그런데 스스로 부족한 걸 아니까. 제가 선수생활을 국가대표까지 했으면 어떻게 보면 네임벨류로 갈 수 있는 게 있는데 그건 아니잖아요. 좀 더 노력을 했어야 했어요. 피나게 노력을 했어야 했어요. 공부하고 자료를 모으고. 그래야지 뭔가 쟤가 뭔데 해설을 해? 하면 제가 대응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난 공부를 이만큼 했잖아.’

거기에 대해서 나 몰래 스트레스를 알게 모르게 받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새벽 4시 중계면 방송국에 2시까지 가야 하는데 준비 어느 정도 해놓고 11시 12시쯤에 잠깐 자야 해요. 그런데 누우면 잠이 안 오죠. 그 사이에 혹시 내가 잠을 아껴서 자료 하나라도 더 보면 내가 설명을 할 때 더 자신 있게 하지 않을까 그런 강박관념이 되게 컸어요. 그때는 아까 말씀드린 그 도취감에 이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이렇게 해야만 내가 이 정도 퀄리티를 유지하고, 이렇게 해야만 내 직업의식을 가지고 제대로 하는 것 같고. 그런 것들이 스스로를 병들게 했죠.



Q.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르게 하실 것 같은지. 다른 방식으로.


네.


네, 다르게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내려놓고 여유 있게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맞는 것 같은데. 막상 그때는 브레이크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워커홀릭의 기질이 있어요. 지금은 그나마 워라벨이 조금 맞춰진 거고.



Q.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세요 평소에?


축구했어요.

해설일을 할 때는 방송계 사람들과 술 모임이 많았어요. 해설을 서른에 시작했으니까 어리잖아요. 선수 경력이 특출 난 것도 아니고. 저는 술 담배를 안 하니까 그냥 축구로 풀었고, 그걸로 방송계에서 건방지다고 오해를 되게 많이 받았어요.

그런 자리는 안 가게 되고 저는 운동을 갔어요. 지금도 공차니까요, 운동하고.
스트레스는 운동으로 푸는 것 같아요.



성공은 남들이 몰라도 내가 느낄 수 있는 것.
그런데 출세는 모든 이들이 알아주는 것.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돼요. 내가 만족하면 돼요.   



Q. 내가 뭘 위해 살았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지


지금은 가족을 위해사는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해서 불만도 없고. 그전에는 뭐를 위해 살았다기보다는 축구랑 살았다. 하하

자신의 전성기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직 안 왔어요.


(전성기라는 게 뭘까요)


저는 그 생각이에요. 세상에는 출세가 있고 성공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스승,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스승이 지금 강원 FC라는 프로팀에 김병수 감독님이에요. 그 감독님이 저에게 해주셨던 이야기 중에 하나인데 성공은 나만 알 수 있는 거예요. 물론 남들이 알아줘도 좋겠지만 성공은 남들이 몰라도 내가 느낄 수 있는 것. 그런데 출세는 모든 이들이 알아주는 것. 그래서 출세로서는 저는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정점을 찍어봤다고 생각해요. 삼십 대 초중반에 해설위원으로 긴 시간이 아니어도 2-3년 동안 많은 활동을 했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으니까. 그래서 출세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대신에 성공에 대한 갈망은 되게 커요. 그런데 아까 이야기했듯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돼요. 내가 만족하면 돼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어차피 축구인이기 때문에 축구로 성공하고 싶은 생각이 있죠. 지금은 세상이 어찌 될지 모르니 축구가 사라진다면 요리로 직종을 바꿀 건데 하하.

그런데 경제력과 같은 몇 가지 성공의 기준이 있겠지만 거창한 것 없이 내가 하는 일이 인정을 받고 내가 재미있고 흥미를 느끼고 하면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을 해요.



먼저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 입장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화 줘서 고마워.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니까 좋네.



Q.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 했는데, 반대로 환경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도 느끼시는지?


선수생활을 그렇게 성공적으로 하지 못해도 은퇴한 이후에 준비를 하면 나만큼 할 수 있다. 그런 걸 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런 사명감도 있었고, 두 번째로 지금처럼 독립구단을 이끌면서 프로로 가지 못하거나 해서 기회를 잃은 선수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프로팀에 갈 때 좋은 영향력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래도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엄청 뿌듯하거나 자만심을 가지거나 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저 또한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선배나 선생님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고, 먼저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 입장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후배를 위한다는 말은 좀 거창하고,  먼저 해봤으니까 이렇게 가는 게 좀 더 좋은 것 같아 정도는 나도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에요.


가끔 후배들이 부탁할 게 있거나 해서 연락이 오면 그게 언젠가부터 싫지가 않았어요. 그래도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계속되는구나. 전에는 그게 되게 싫었거든요. 언젠가부터 그게 바뀌었어요. 전화 줘서 고마워.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니까 좋네. 원래 사람은 필요할 때 찾는 거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다음 생에 태어나도 여전히 축구가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다르게 한 번 살아보고 싶어요. 완전히 다른 일을 해보면서.
다른 행복의 기준을 찾아서.



Q.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질문의 요지가 또다시 태어나도 축구를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라면 아니에요.

다음 생에 태어나도 여전히 축구가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다르게 한 번 살아보고 싶어요. 완전히 다른 일을 해보면서.


분명한 건 지금 제 삶이 재미있긴 해요. 그런데 평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절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것에 대한 장단점이 있고, 대신 지금은 제가 행복하고 재밌지만 다음에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다른 직업으로, 다른 직종에서 다른 행복의 기준을 찾아서.



Q. 현재 행복의 기준은?


내가 생각하는 행복? 나의 행복, 내 가족의 행복, 내 주위 사람들의 행복입니다. 그거예요.



Q. 남은 날 동안 가지고 계신 꿈이 있으신지?


지금부터는 축구 산업 자체의 판도가 바뀌어서 제가 직종을 바꾸지 않는 한 축구계에서 제 삶을 마무리하게 될 텐데 지금부터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꿈의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묵묵히 하다 보면 그 흐름에서 선택을 할 상황이 주어질 것이고, 그것을 해내는 단계랄까요. 그 흐름대로 끌려갈 것 같아요. 전 그걸 거부하지 않아요. 내가 뭔가를 새롭게 하고 싶어 하면서 목표를 가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현재 몸담고 있는 축구 산업에서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이제는. 그래서 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어찌 되었건 지금이 만족스럽고, 이렇게 만족스럽게 내 일을 하고 살다 보면 또 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겠나…? 그럼 그 흐름에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내가 오케이를 하느냐, 노를 하느냐 그게 중요한 거지. 그냥 흐름대로 가고 싶어요. 뭐가 되고 싶다 이런 건 없어요. 그냥 계속 축구 안에서 살고, 내가 행복하고 싶고,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게 다예요.



견뎌내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때 한번 얻어맞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Q. 자유와 삶에 대한 태도


예전에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놀고 싶으면 놀아야 하고, 팀 내에서 규정 때문에 안 되는 게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으면 해야 하는. 그걸 자유하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철이 든 건지 나이가 든 건지 힘이 좀 빠진 건지, 이렇게 말하면 좀 별론가… 충동적으로 뭘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어요. 지금 상황에서 자유라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 하하


단 하루의 완벽한 휴식!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자유가 아닐까? 이번 생에 없을 거예요, 앞으로. 하하 내려놓으면 편해요.

저는 결혼하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긍정적으로.


그리고 2018년 가을에 우리 아이가 큰 수술을 했어요. 돌도 안되었을 때… 생사를 건 수술을 한 번 했는데 사실 그게 해설을 내려놓게 한 가장 큰 이유가 되었죠.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내가 돌보지 않았구나 하는 죄책감과 아이가 이렇게 생사를 헤매는데 내가 일을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많은 생각을 했죠.

그 해 봄에는 제가 어떤 구설수에 휘말렸어요. 해설을 7년 하면서 한 번도 구설수에 오르거나 한 적이 없는데 그때 한번 겪으면서 많이 느꼈죠. 그때 되게 삶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기준이 많이 바뀌었어요. 2018년은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해였는데 견뎌내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때 한번 얻어맞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 두 사건 이후로 저는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이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그때 얻은 게 그거예요. 그때.



Q. 성공에서 우연이나 운의 비율


저는 살면서 힘든 순간이 있으면 뭔가 항상 튀어나왔어요. 운이라는 게. 저는 종교는 없는데 어머니가 토정비결을 보면 이 아이는 천운이 타고났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어릴 때부터 운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저도 그걸 부정하지는 않는 게 항상 어려운 순간 생뚱맞게 쑥, 쑥 뭔가 튀어나왔어요. 이 운이 부디 계속 같이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하하.

제가 구설수로 힘들었을 때 고마웠던 건 그 당시 하고 있던 방송 해설, 칼럼,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이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그때 얻은 게 그거예요. 그때.


제가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고 운도 따르며 성장을 해온 건데, 저는 제가 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컸어요. ‘내가 잘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을 한번 겪고 나니까 ‘아, 그런 게 아니구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는구나.’ 그런 걸 정말 많이 느꼈죠.



관용. 이해하는 것.
이럴 수 있겠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Q. 인간의 매력이 있다면


사람이 실수를 하고, 사람이 잘못을 해도 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겠네 해보는 것. 물론 범죄자의 경우여도 행위는 정말 나쁘지만 ‘뭔가 이유는 있겠지.’라고 생각해봐요 이제.


저는 원래 누군가 잘못을 하면 되게 엄격하거든요. 사실 저랑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일을 할 때 기준이 높았고 완벽주의자의 성향이 있었어요. 나는 열정을 이 정도 레벨로 끌어올리는데 다른 사람이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하면 마구 쏴 댔거든요. 지금은 뭔가 너그러워졌어요.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을 싫어해요. 사람이니까 고쳐 써야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관용이 필요하다는 건 우리가 실수를 하는 존재라는 것이고, 그 사실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게 아닐까.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프랑스 문화에서 제가 좋아하는 말이 똘레랑스거든요. 거기에서 파생된 저의 생각은 사람은 고쳐 써야 한다. 그리고 세간의 평가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없어졌어요. 방송을 하다 보니 직접 만나지 않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선입견을 가지곤 했는데 그건 정말 제가 손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뭐든지 만나보고 겪어보고 제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에요. 나 또한 누구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나쁜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꼬장꼬장하고 고집 있고, 지금은 그냥 유해졌죠.



Q. 이미지


김태륭 하면 꼬장꼬장하고 고집 있고, 지금은 그냥 유해졌죠.

저는 하늘색 되게 좋아해요. 하늘색, 남색.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저한테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하고. 이십 대와 삼십 대 초반에는 하늘색을 좋아했는데 중년에 들어오니 남색이 좀 더 좋고.


하늘빛에서 깊이 있는 물빛으로 가는 느낌이에요.
전 사람을 만나면 이미지가 많이 떠오르는데 마치 한 사람이 하늘을 보고 살다가
스스로 깊이가 생기면서 물빛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름이   자에 하늘  자에요.



꿈이 있고 스스로 선택을 한 것 자체가
벌써 훌륭한 스타트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Q. 현재 고군분투하고 있는 젊은 축구선수 혹은 꿈을 가졌지만 헤매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


꿈이 있고 스스로 선택을 한 것 자체가 벌써 훌륭한 스타트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독립구단을 하면서 배우고 느끼는 게 많아요. 여기서 정해진 시간 동안 죽도록 해보라고 해요. 어차피 축구 평생 못하니까. 해보고 결과가 좋으면 너무 좋은 건데 그렇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분명 얻는 것이 있잖아요. 최선이 얼마나 힘든 말인지 아시잖아요. 자기가 뭔가 어떤 일의 기간을 정하고 최선을 다해보고 모든 걸 걸어본 사람은 그 경험을 해본 사람은 나중에 뭘 해도 해요.   


해설할 때는 절박하게 최선을 다한 거예요.

죽도록 노력 한 번 해볼까? 그랬더니 성과가 빠바바 방 나오니까. 저는 그때 느낀 거죠. 아, 노력과 최선의 대가가 이런 거구나.


(나가서 놀아, 사고도 쳐보고 깨져보고 해야 해요.)



Q. 그 외의 질문들.


(협상)

오늘은 손해를 보더라도 내일은 이익을 보는 것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협상에서 한 번에 서로 만족할만한 계약을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다음이 있고, 그다음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내가 4를 가져오면 다음에 6을 가져올 수도 있는 거고. 그걸 서로 공감하면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늘 손해를 보더라도 내일은 우리가 이익을 볼 수 있는?


(가능성)

꼭 승산 있는 싸움만을 하지는 않아요. 일을 해보면서 이번에 떨어지더라도 나중에 꼭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심지어 당장의 실패 가능성이 더 높더라도 일을 진행한다는 말이 인상 깊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인터뷰 소감

김태륭 단장은 매순간 마주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와 사고방식이 유연하고, 나의 행복을 규정하는 데에 있어 기준이 확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핵심 내용을 빠르게 정리하여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한 것, 그리고 질문과 함께 제시한 보기를 있는 그대로 고르지 않고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적절한 예시가 없네요.”라며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답을 제시한 것이 인상 깊었다. 문제를 스스로 제시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가며 생각을 항상 정리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 게 의미가 있는 거지.”와 같은 말에서도 나의 기준을 꾸준히 찾아나가는 사람인 것이 드러난다. 타인의 기준에 자신의 평가나 기분을 맡기기 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유연한 시각으로 현재를 사는 사람.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떤 삶의 이벤트를 맞이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겪어내지 어떤 일이 생겨도 나쁜 일, 망해버린 일, 혹은 나쁜 사람, 좋은 사람과 같이 극단적으로 한 면만을 보고 판단하거나 좌절하는 일이 적은 것 같다. (삶에서 마주하는 좌절과 고통을 이겨낸다기보다는 그저 경험하고, 그것을 곱씹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나아가는) 결국 사람이든 인생의 사건이든 그것이 나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나중에 알 수 있을 것이고 절대적인 좋음과 나쁨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것이 꽤 중요하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물 받아 감사하다.     



사진 김태륭 제공







Seoson 2 Ep 5. 그런데 다음이 있고, 그다음이 있기 때문에

: 김태륭, 프로 축구선수 편



내 안의 빛을 찾아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나의 색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의 여정을 걷든 그것은 변색이 아닌 또 다른 색의 챕터로 넘어간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 기록을 모아 이번 겨울은 그림과 함께 책으로 편집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이야기와 말이 이 곳에 잠시 머무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 무더운 초여름

삼도씨

*위 프로젝트는 스포잇과 함께 진행하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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