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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말록 Oct 19. 2024

믿음은 진실과 간극이 있을 때나 필요한 구차한 것

#이원성의이해 #비이원 #제행무상 #깨달음

깨달음은 존재의 실상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존재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에 인식되는 모든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나와 세상이다. 나와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 본질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깨달음이다. 그 본질을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하지만, 불교에서는 ‘공’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공은 뭔가가 비었다는 말이다. 없다는 것이 아니라 비었다는 말이다. 무엇이 비었다는 말인가? 그 실체가 비었다는 말이다. 아직 실체적인 관념과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한 관점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무엇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이란 말은 색이 공이라고 한다. 인식되는 나와 세상이 공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공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색 그대로, 세상 그대로 공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참 어렵고 심오하게 들린다. 분명 세상이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고 사과가 존재하는데, 그 모든 것이 비었다고 하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정말로, 여기서 받아들여야 할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단지 당신의 그 고정관념만 고집하지 않으면 된다. 백지상태로 세상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밑바닥부터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된다. 어려운 수행이 필요한 게 아니다. 수행이라고 하면 단지 당신의 그 고정관념을 떼어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편일 뿐이지 별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미 그냥 그대로, 색 그대로 공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체험하고 있다. 매 순간마다 그것을 체험하고 있지만 단지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체험하는 것은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당장 체험해 보자. (이 말을 끝내는 순간에도 이미 체험하고 있다!!) 


지금 내 앞에는 볼펜이 하나 있다. 내가 당신에게 묻는다.


‘그게 뭡니까?’


그러면 당신은 대답한다.


‘볼펜입니다.’


‘그래요? 그럼 볼펜을 이렇게 반으로 자르면, 둘 중 어느 쪽이 볼펜인가요?’


‘둘 다 합쳐야 볼펜인데, 지금은 쪼개졌습니다.’


둘 다 반쪽이네요. 그럼 볼펜은 어디 갔나요?


“어디 간 게 아니라 그 두 개를 합친 게 볼펜이라니까요. 원래 하나의 볼펜인데, 당신이 둘로 쪼갰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지금 당신의 경험은 두 개로 조각난, 한때 볼펜이었던 흔적을 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볼펜이라는 개념을 부여잡고, 그것이 두 개로 쪼개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볼펜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하나로 살아있는 것이다. 보이는 현상이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볼펜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볼펜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이렇게 쪼개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쪼개지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마찬가지다. 볼펜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려보라. 이렇게 만질 수도 있고 볼 수도 있는 볼펜에 따라서 ‘볼펜’이라는 개념이 존재 관념을 이끌고 쭉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 보라. 만일 그 개념이 사라진다면? 그렇다면 그러한 그림과 감각이 텅 빈 공간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로 쪼개진 볼펜이, 절반인 볼펜이라고 생각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볼펜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보자. 가루로 남은 그것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직도 ‘원래 볼펜인데 믹서기에 갈아져서 가루가 되었다’라고 생각하고 싶은가? 그것이 바로 뿌리 깊은 이원적 실체관념이다. 당신이 지금 보는 건 그냥 가루다. 볼펜이 아니다. 애초에 볼펜이란 것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시간관념을 가지고, 과거에는 볼펜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은가? 좋다. 만일 그런 식이라면 그 볼펜 또한 과거에 무엇이었는지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 볼펜은 플라스틱과 잉크와 쇠로 된 펜심과 스프링 등이었고, 그것들은 또 석유와 땅속 철분이었고, 또 그것은 공룡의 화석이었고 태양의 에너지였으며 지구의 마그마였다. 자, 이렇게 끝없이 여행하는 뿌리 찾기의 결과는 과연 어디쯤 가서 멈출 수 있을까? 아니 멈추어야 정당할까?


제행무상. 변한다는 것을 통해서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은 가장 오래되고 정직한 방법이지만, 평생을 눈앞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우리에게는 더 이상 신선한 감동을 주지 못하며, 탐구의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을 취하는 수밖에 없다.


볼펜을 있는 그대로 보면 볼펜이 존재하기 위해서 어디에 의지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이런 것을 ‘조건 지어져 있다’고 한다. 볼펜은 조건 지어져 있다. 조건 지어져 있다는 말은 그런 조건 없이는 볼펜도 없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볼펜의 심과 스프링, 그리고 잉크 같은 것들이 없으면 볼펜도 없다는 말이다. 심, 스프링, 잉크에 조건 지어진 것이 바로 볼펜이다. 그렇게 조건 지어진 것이 볼펜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만히 보면 좀 묘하다. 그러한 조건들이 없으면 애초에 볼펜이 없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러한 조건들을 볼펜이라고 이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볼펜은 원인과 조건에 의지하고 있지만, 반대로 원인과 조건 또한 볼펜이라는 개념에 의지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음과 양이 서로를 기대어 세상에 드러나는 것과 같으며, 부분과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짐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기본 이치라는 소식이다.


그래서 볼펜이랄 것도 이름일 뿐이고, 볼펜 심과 스프링, 즉 원인과 조건이란 것도 이름일 뿐이라고 말한다.


태양이 있어서 그림자가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태양과 그림자가 서로 의지하고 있어, 태양이랄 것도 사라지고 그림자라고 할 것도 사라진다. 그저 태양이라 이름하고 그림자라고 이름 하지만,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여 드러난 모양뿐이다. 그것에는 태양이라고 할 실체가 없고, 그림자라고 할 실체가 없다.


이제 볼펜의 실체가 보이는가? 정말 그렇게 여러분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조건 지어졌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감이 온다면 지금 당장 눈앞이 빙그르르 돌 것이다. 이원의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분리된 그대로를 실체로 착각해 온 인식의 기본 틀이 지각 변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존재의 흔적을 찾아 열심히 두리번거리는 이원적 의식의 초점이 갈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달팽이의 촉수처럼 존재를 찾아 더듬거리지만 그 어느 것도 존재를 찾을 수 없을 때, 그때 불현듯 그 모든 것을 일으키는 바탕의 빛이 환하게 밝혀진다. 바로 비이원의 실상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태양이 따로 있고 그림자가 따로 있고, 볼펜이 따로 있고 원인이 따로 있고 결과가 따로 있다고 믿었는데, 그 모든 것이 그림자와 같이 실체가 없는, 따로따로 분리되지 않은 하나라는 비이원의 실상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뻔히 목격하고 있는 그 밝아진 자각이 바로 당신이 잊고 있던 자신이다. 처량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고, 불쌍하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고 그저 자유로운 자신의 본모습이다. 태양과 함께 드러나는 그림자일 뿐인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마치 거대한 세상에 홀로 버려져 벌벌 떨고 두려워하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착각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한바탕 인생 이야기다.


이원이라는 환상의 구조를 이해하고 비이원의 실상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당신 자신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할 것이며, 그전까지는 언제나 삶의 의문과 죽음의 두려움에 떨며 심한 과몰입 상태로 꿈을 꾸는 것일 뿐이다.


만일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원의 범주 안의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숭고하고 신성한 것일지라도 단지 꿈속에 등장하는 한 알의 사과와 결코 다르지 않다. 그러니 괜히 애쓰지 마시라. 부디 괜히 괴로워하지 마시라.


이따위 말을 어떻게 믿냐고?


믿을 필요 없다.

당신이 바로 그 증거니까.

믿음은 진실과 간극이 있을 때나 필요한 구차한 것이다.

당신이 그 증거라서, 믿을 필요도 믿을 방법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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