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첫 취업을 준비하다
달리는 버스 안이었을 것이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수화기 넘어 목소리도 덜컹덜컹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아마도 맨 뒷자리였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버스 맨 뒷좌석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유난히 덜컹거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왼 손으로 앞좌석 손잡이를 꼭 감아쥐었다.
"연구원이 필요해서요."
전화를 건 사람은 얼마 전 알게 된 미래학 박사님이었다. 서울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제1회 청소년 미래 전망 워크숍 행사를 기획하신 분. 당시 서울 크리에이티브 랩에서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1기로 활동하던 나는 행사를 도와줄 인원이 필요하다고 하여 우리 팀원들과 자원했었다. 고등학생 80여 명과 함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발표 준비를 하다 보니 8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지금 돌아봐도 학생들에게 너무 고맙다. 당시 내가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행사가 잘 끝난 건 전적으로 학생들 덕분이다.
"저는 매일 일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조금은 긴장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일자리를 권하는 전화 통화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기쁨이 아닌 부담이었다. 당시 나는 홍대에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경제적인 부분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해결이 안 되고 있었지만 디지털 싱글을 낸 직후라 빨리 정식 앨범을 내고 싶었다. 곡은 쌓여 갔고, 조바심도 있었다.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안이 얼떨떨했던 것이다.
"얼마나 일하실 수 있으신데요?"
"주 3일이요."
왜 3일이었는지 합리적인 이유는 없었다. 특별히 다른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출퇴근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 그게 3일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일본 워킹홀리데이에서도 나는 결코 한 가지 일을 3일 이상 하지 못했다. 오히려 3개의 일을 1주일간 분배하는 쪽이었다.
"이력서를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나의 이력. 짧은 순간이었지만 쓸 게 별로 없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제안받은 것은 연구원 자리인데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것은 별 이력이 안 될 것이었고,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는 오래도록 소설을 썼다. 그러니까 당시 내 이력은 소설 쓰기, 노래 만들고 부르기 두 줄로 요약될 수 있었다. 더 적어 낼 것도 없이 전화 상으로 불러 드려도 될 이력이었다. 연구직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지만 내 이력이 업무와 상관없을 것 같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써서 보낼 게 없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조금 망설이다 물었다.
혹시, 소설도 이력서가 될까요?
나의 20대를 이력으로 축약한다면 보잘것없었지만, 모두가 그러하듯 돌아보면 나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곤 했다. 스무 살부터 20대 중반까지, 내가 쓴 소설들은 나만의 폴더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세상에 인정받지 못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러니까 등단이나 출판같이 공식적인 루트로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꽤 열심히 썼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잊고 있던 비밀 폴더가 문득 떠올랐다.
"아, 문창과를 나오셨다고 했죠. 그럼 보내주세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폴더를 열었다. 학부와 석사과정까지 합쳐 꾸준히 써온 소설은 11편쯤 되었다. 그중 '오래된 미래'와 '코나' 두 편을 이메일로 전송했다. 제안받은 자리는 미래연구센터의 연구직이었으니까, 점점 가라앉는 섬을 배경으로 한 '오래된 미래'와 3세대 행성 이주자를 주인공으로 한 '코나'는 조금이나마 미래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실은 미래연구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나름대로 연결고리를 찾고자 했다. 일단 오래된 미래에는 제목에 미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전송.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잤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덜컹거리던 버스 뒷좌석과 핸드폰을 꼭 쥐고 통화하던 나의 긴장된 모습이다. 긴장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면서도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예감할 수 없었던 스물아홉의 나. 오래된 폴더를 열어보고 고민 없이 두 편을 소설을 골랐던 밤. 그때 내가 느꼈던 설렘은 일자리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예감보다는 누군가 나의 소설을 진지하게 읽어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글이 처음으로 의미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예감.
어쩌면 나의 삶도.
출근을 하라는 전화는 언제쯤 걸려 왔을까?
왜 어떤 기억들은 남고 어떤 기억들은 완전히 사라질까?
그 후로 기억나는 건 까만색 정장을 샀던 날과 까만 구두까지 갖춰 신은 채 출근 한 날이다.
(그 후 이 옷을 입을 일은 거의 없었지만)
첫 출근 날,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벨을 눌렀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꼭 붙잡고서.
새해였고, 나는 막 서른이 된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