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윤하 Jan 11. 2021

미래연구센터에 출근하다

뭐부터 해야 하지?

연구원 생활이 시작됐다.


자리를 배정받고, 같은 센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는데, 뭐부터 해야 하지?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로 이것저것 클릭해보면서도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연구원 생활은커녕 직장생활 자체가 처음인 나에게는 9시부터 6시까지 고정된 시간 동안 책상 앞에서 일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정확히 말하면 '사무'가 낯설었다.


스무 살 때부터 다양한 알바를 해봤기 때문에 일이라는 것 자체에는 익숙한 편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홍대 레스토랑 아지오. 빵모자와 에이프론형 유니폼을 갖추고 마당으로, 2층으로 파스타를 나르던 기억. 마스코트였던 크고 하얀 개 마레마노 순심이. 손님으로 온 김혜수를 보고 압도당했던 순간. 식전 빵을 함께 일하던 지원이와 몰래(자주) 먹었던 기억.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에는 일본어를 쓸 수 있는 가게를 찾아 아르바이트를 했다. 남영동 쯔쿠시. 아침에 출근하면 갓 만든 우동 국물에 하얀 밥을 말아먹었던 기억. 런치 때면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휴식 시간이 오면 모두가 천천히 고로케를 빚던 평화로운 시간. 그만두는 날 주방팀에서 해주었던 나가사키 짬뽕과 모둠 정식.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외국인 노동자 생활의 시작으로 새로운 일을 익히는 것에 더해 언어라는 또 하나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신주쿠 미츠이 빌딩의 도토루. 긴자의 토라지. 시부야에서 했던 한국어 과외.


그 모든 '일의 기억'은 나의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연구 준비를 한다는 것은, 특히나 '미래연구'를 한다는 것은 그간의 경험을 아무리 길어 올려도 방향에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청년들을 만나려고 해요."


박사님이 말했다. 나는 그대로 수첩에 받아 적었다. '청년'.


"2034세대를 대상으로 미래 워크숍을 할 거예요."


다시 적었다. '미래 워크숍'.


"미래 시나리오를 활용할 거고, 워크숍 참가자의 전 후 변화도 볼 거고요."


'미래 시나리오', '참가자 변화'.


그러니까 박사님이 나를 고용한 것은 앞으로 20번 진행될 미래 워크숍 운영에 도움을 받고자 한 것이었고, (미래 워크숍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에 활용될 4가지 미래 시나리오를 써야 하며, 이를 통해 한국인의 미래인식을 보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연구 방법은 총 두 가지로 첫째는 400명을 대상으로 한 미래 워크숍 운영, 둘째는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다.


"20년 후 한국의 미래를 전망해 보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적었다. '미래 전망'.


이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미래연구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미래연구를 한다고 하면 주식 전망처럼 실용적인 것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고 경험한 미래연구는 정답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연구는 사람들이 상상하고 생각하는 '미래 이미지'를 연구하는 것이며 왜 그러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를 분석해 의미를 도출한다.


미래 이미지는 현재에 대한 인식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따라서 미래 인식은
송곳처럼 예리한 현실 인식이기도 하다.



한국 청년들의 미래 이미지는 어떠한가? 어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가? 어떤 미래를 기대하는가? 이를 분석하여 20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전망해보고자 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었다.


나 역시 2034 세대에 속했기에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어떠한 미래 이미지를 갖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내 개인의 바람을 넘어 구체적인 미래 사회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어떤 미래 사회를 상상하는가? 해 본 적 있는가?


수첩에 키워드를 써 내려가던 나는 움직이던 펜을 멈추었다. '미래'. 너무도 익숙한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간 내가 알던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그럼에도 나는 이미 '미래' 쓰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미래 워크숍을 통해 청년들이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고, 그걸 분석해서 20년 후 한국의 미래를 전망해 보신다는 거죠?"


나는 내가 이해한 것을 쭉 나열하여 말했다.  


"앞으로는 미래 적응력이 중요해질 거예요. 저는 미래 워크숍 경험이 이 능력을 향상시켜 줄거라 생각해요."


이후 8년간 미래 연구화두가 된 '미래 적응력'. 이제는 이 말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적응'의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을 안다. 미래는 적응할 수 없다. 영원히. 그럼에도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알 수 없다는 막막함을 이겨내고, 움직여 보는 것이다. 이 정답 없는 힘겨루기에서 버텨내는 것, 이것이 '미래 적응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안다.  


한번 더 적었다. '미래 적응력'. 그리고 붙였다. 작은 물음표 하나를.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현실 미래 워크숍'이 펼쳐졌다. 여기서 현실이란 무수히 준비했던 기획이 뜻대로 되지 않고 번번이 벽에 부딪치는 경험을 말한다. 물론 여기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양 손 가득 1.5리터짜리 음료수 병을 들고 워크숍 장소로 걸어가는 것도 포함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렇게 나는 미래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도 이력서가 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