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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야 Aug 11. 2020

4화. 대학생은 왜 아플까 1

치열했던 입시, 그 이후의 대학생의 삶에 관하여

다소 추상적이면서 넓은 주제다. 어떤 대학생은 안 아플수도 있고, 아픔의 종류도 내용도 다양할테니. 이 글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아픔은 입시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성인이 된 대학생들이 대학 입시 전까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입시가 성인이 된 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경쟁 위주의 입시 시스템이 얼마나 문젠지, 부모의 욕망이 왜 문제되는지에 대해 다룬 글들은 많지만, 결국 그 입시 이후에 성인이 된 대학생들이 어떤 후유증을 겪는지에 대해 다룬 글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아마 그러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당사자였던 사람의 언어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한 때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전국적으로 유행했었다. 부모의 욕망과 이로 인해 생긴 입시 시스템이 어떻게 한 가정을, 그리고 한 개인을 파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챙겨보지 않는 나조차도, 강남3구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기억 때문에 그 드라마만큼은 끝까지 다 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드라마에 나온 부모님들은 몇몇 인물을 제외하곤 자식들을 사랑해주었고, 입시를 치른 주인공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해피엔딩이 아니다. 입시는 결국 다수가 실패하는 시스템이며, 현실의 부모들은 그렇게 눈이 녹듯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입시경쟁의 민낯을 보여준 스카이캐슬은 종편채널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출처:국민일보)


많은 대학생들은 어린시절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는 미명 하에 물리적, 언어적 상처를 겪으며 사춘기 시절을 보내왔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성적이 좋을 때에만, 시험을 잘 봤을 때에만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점수가 낮으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홀대 당하며 자라왔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라도 흔들릴 나이에, 너무 가혹한 훈련을 받고 자란 셈이다. 그래도 착한 아들, 말 잘듣는 딸이였기 때문에, 또 어린 아이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며 입시 끝날때 까지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견뎌왔을 것이다. 학교는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조장한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며, 공부 못하는 학생을 못살게 군다. 그렇게 다양한 창의력과 아이디어, 꿈을 가진 학생들은 그저 ‘공부 못하는 학생’ 취급을 받으며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되고 대학을 다니면서 그러한 일들은 과거의 기억이 되어버리지만, 그래도 마음속엔 상흔이 남아있다. 그러한 마음의 상처는 어딘가에서 무의식적으로 발산되기도 한다. 또 입시로 인해 형성된 낮은 자존감은 성인이 되어서도 대학생들을 좀먹는 족쇄가 되곤 한다. ‘난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애써 생각해보지만, 이따금씩 인간관계, 연애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심리적인 문제로 쉽게 슬럼프에 빠지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하루 일과를 다양한 것들로 꽉꽉 채우면서 보람있게 보내지만, 이따금씩 밀려오는 내면적 공허함에 헤매기도 한다. 또한 입시의 후유증으로 얻은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스카이캐슬이 방영되던 당시 대학생들의 반응. 부모들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볼거리였지만, 일부 대학생들에게는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였다.


유년시절의 입시 경쟁이 성인이 된 후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주요 대학 에브리타임, 전국 대학 커뮤니티 앱 캠퍼스픽, 대학생 정보 카페 스펙업에서 간단한 설문을 진행하였다. 총 응답자 수는 34명이었으며, 표본이 적고 커뮤니티 이용자가 전체 대학생을 대표하지는 못하므로 이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입시로 인해 부모님과 갈등을 겪은 사람이 응답자의 약 67.7%였으며, 대학 입시 때문에 무려 응답자 전원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52%는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
공부 자극이라는 빌미로 언어 폭력 및 차별 혐오 발언을 들은 비율이 각각 40%, 57.2% 정도 된다
응답자들이 답해준, 어린시절 응답자들에게 큰 상처를 준 말들. 많은 대학생이 이런 말들을 들으며 자라왔다.
입시 경쟁의 결과로 인해 대학생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이처럼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앓으며 대학생활을 헤쳐나간다. 그리고 때론 이것이 악순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응답자들의 대부분이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로 어린 시절 상처를 받고, 이후 고생한다는 것을 설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부모들이 말하는 "대학만 가면 끝이야"라고 하는 말은 사실상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입시의 끝은, 입시로 인해 방치해두었던 다양한 육체적, 심리적 문제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입시에 모든 것을 불태운 뒤 성인이 되어 행복한 삶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들을 잘 케어하지 못한 여파로 병원을 전전하거나, 심리적으로 자주 슬럼프에 빠져 결정적인 상황에서 무너져버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수험생활의 여파로 골반이 자주 아픈데, 이게 시험기간이나 취업준비를 할 때 나를 힘들게 하더라"


"가끔 자다가 고딩시절로 돌아가는 악몽을 꾸곤 해. 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누가 툭 하고 건드리면 눈물이 쏟아질 정도였거든. 근데 가금씩 '이럴려고 그렇게까지 공부했나?'라는 생각을 해. 그렇게까지 노력해야 했나?라고 스스로한테 물어보면 그건 아닌거같아. 지금 내가 관심 있는 진로가 딱히 학벌을 따지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학교 블라인드다 뭐다 해서 좋은학교 나온 사람들 나쁜 사람 취급하는거 보면 힘빠지거든"


"삼수를 해서 그런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게 어려워. 처음 보는 사람한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더라. 결국 그런식으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친구 몇 없이 졸업할 시기가 되어버렸어"


"어렸을땐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는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이 정말 싫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니 나도 모르게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고 있더라"


"분명 대학만 가면 너 하고싶은대로 하라던 사람이, 대학을 가니까 더 심하게 간섭하더라. 남자친구 학교가 내가 다니는 학교보다 안 좋다고 자꾸 헤어지라고 하고, 통금이 11시인데 조금만 늦어도 신경질내고, 전공도 나는 인문학쪽 관심이 많았는데 자꾸 경영이나 취업 잘되는 쪽으로 하라 그러고, 그런식으로 사사건건 간섭하다보니 나도 신경이 쉽게 곤두서게 되더라"


"입시 치르는 동안 부모님하고 정말 너무 많이 싸워서, 대학에 가고난 뒤에도 그 앙금이 사라지지 않더라.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집안 분위기 썰렁하고..난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그때 힘들게 했던 거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라도 있길 바랬는데, 오히려 자기가 잘못한게 뭐가 있냐고, 성공했으니까 감사하라는 마인드더라. 원래 말이 잘 안 통한다는걸 입시 치를 때부터 알았지만 성인이 되어서 보니 정말 사람 대 사람으로 실망하게 되더라. 그래서 점점 마음의 벽을 쌓게 됐어"


"자존감이 낮아져서 매사에 머뭇거리게 되더라. 뭔가 새로운 걸 하려고 해도 '내가 이걸 잘 할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결국 고민만 하다가 포기하게 되더라. 졸업할때쯤 되어서 내 대학생활을 돌아보니 이렇게 고민만 하고 안 한게 너무 많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후회가 많이 돼"


"재수를 혼자 한 뒤로 외로움을 많이 타서 연애를 쉬지 않고 하게 됐어. 문제는 정말 오는 사람 안 막다 보니까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꼬이더라..그치만 자존감이 낮고 외로움을 타다 보니 쉽게 거절을 잘 못하고"


(수험생활이 낳은 부작용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


이런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이 없다고 하더라도, 입시만을 바라보며 자기자신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던 대학생들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한다. 그래서 껍데기만 남은 자기 자신에 대해 괴로워 하거나, 대학이 전부인 줄 알고 왔더니 대학이 전부가 아닌 세계 구조를 느끼며 허탈해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거기에 완전히 동일화되어 다른사람을 학벌의 잣대로 차별하는 노력의 괴물이 된다. 대학생들이 흔히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 지 잘 모르겠어"라고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이러한 내면적 공허함을 인간관계, 성관계, 연애, 술, 스마트폰 시청, 스펙쌓기 등으로 소비하며 채우는 대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거기엔 진정한 내가 없고, 밑빠진 독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2편에서 계속)



https://3000won.com/baekya

지속가능한 문화예술을 지향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삼천원에서 아티스트이자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월 삼천원의 커피 한잔 값을 후원해 주시면 양질의 컨텐츠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많은 후원 부탁드려요 :)



출처

설문조사: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maIR14qMGSrwVZqf53L9ob-MC1562q-CJrxegDMr7HhQdqw/viewform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901081896712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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