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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야 Aug 11. 2020

5화. 대학생은 왜 아플까 2

치열했던 입시, 그 이후의 대학생의 삶에 관하여

(1편 내용: https://brunch.co.kr/@mysun0317/7)


문제는 대개 이렇게 억압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키운 부모님들, 특히 ‘대학만 가면 너 하고싶은 것 다해’ 라고 구슬리며 자녀를 괴롭히는 부모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또 다른 핑계로 자녀들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그 때 가서는 ‘군대는 언제 가니’ ‘요즘 취업이 힘들다는데 빨리 졸업해야지’와 같은 말들로 다시금 자녀를 억압한다. 거리가 멀어도 자취를 시켜주지 않는가 하면, 통금을 걸어 그들의 자유를 제한한다. 대학 전공에서부터 연애까지 간섭하며, 직업에 대한 가치관도 충돌한다. 그렇게 대학생들의 피로는 계속된다


대학생의 공부는 입시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시, 취업준비,자격증 등등 그 외피만을 바꾼채 다양한 형태로 둔갑해 학생들을 다시 책상 앞으로 내몬다

 

물론 부모님이 간섭하는 것은 자식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부모님이 자식을 대할 때. 그 기저에 존재하는 가치관이 대부분 구시대적이라는 데에 있다. 기성세대는 자녀를 자신의 삶의 연장이자, 자신의 명예를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이  이룬 것들을 자식이 대신 성취해줌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모의 욕심이 자녀의 욕심과 같다고 착각하며, 자녀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욕망은 자녀의 고통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며,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자식이 어떻게 망가져가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스카이캐슬에서 서울대 의대 합격후 잠적한 영재의 사례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엄마의 소원대로 의대에 진학한 아들이 인턴을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해 ‘당신의 아들로 산 세월은 지옥이었다. 더 이상 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고 선언한 뒤 잠적했다. 엄마는 미쳐 날뛰다 거의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엄마는 아들이 고3 때부터 삼수할 때까지 3년간 매일밤 아들방에 들어가 아들이 자는 옆에서 백팔배를 했다고 한다. 아들이 미치도록 숨막히지 않았겠나. 영재처럼 엄마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에 잔인한 복수를 한 거다.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적성에도 안맞는 의대에 진학한 수학천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마지못해 의대 공부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 수학학원을 열겠다고 벼르고 있다. 영재는 현실에도 많다. 이런 친구들이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출처: 중앙일보)     

 

또한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수단이든 동원하는 것이 '투혼' '의지'등의 단어들로 정당화 되며,  수단이 가혹하고 강할수록 목표 달성에 좋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스파르타' 좋아하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성공을 위해 폭력을 동원하고, 공부 자극을 빌미로 혐오발언을 하고,도서관이나 학원에 가둬놓고 집에 못오게 하는 식으로 공부를 시킨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데에는, 이렇게 하면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기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비인간적일지라도 대학입시만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옳은 행동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소위 말하는 '박정희식 사고' 내지는 '헝그리 정신'일 것이다.


정신력을 강조하는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훈련 방식. 옛날 유물같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많은 부모들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정신력과 의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성장의 시대가 끝난 것은 단순히 경제의 차원에서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더 이상 무언가가 ‘일차함수’ 모양을 그리며 급성장하는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젊은 시절 겪고 느낀 생리적 리듬, 그리고 문화적 환경은 전부 일차함수에 맞춰져있다. 그래서 수단이 가혹할 수록,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록, 휴식을 덜 취하고 시간낭비를 덜 할수록, 강하게 자극할 수록 성공한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 그들이 쓰던 방법은 결코 그 방법이 올바른 방식이어서가 아니라, 그 때는 무엇을 해도 성공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효과적이어 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즉 ‘맞았기 때문에’ ‘폭언을 들었기 때문에’ '밤새 야자해서' 성공한게 아니라, 그 때가 한국 사회의 황금기였고 성장기였을 뿐이다.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선수를 혹사시키며 성공한 스포츠 감독들은 무수한 비난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동기부여랍시고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는 회사 사장들은 이제 롤모델이기는 커녕 꼰대 소리를 들으며 십자포화를 맞는 세상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정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러한 학습 문화가 바뀌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강요된 노력은 영재의 사례처럼 입시 이후에라도 반드시 학생과 부모를 배신하게 되어있다.


프로야구에서 투혼을 가장한 무분별한 혹사로 한두해 활약 후 은퇴한 선수들. 마치 대학만 가면 된다며 입시에 올인한 후 폐허가 된 대학생활을 보내는 대학생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나는 구시대적 가치의 끝판을 달리는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 학교는 공부 못하면 아이들을 때렸고, 언어적인 폭력을 일삼았으며,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그러한 교육에 대해 만족하며 ‘우리 아이 공부 더 잘하게 더 괴롭혀주세요’라고 하며 오히려 교사들을 두둔했다. 그들은 ‘이렇게 해야 공부를 잘 할거야’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학생들을 입시 성과의 도구로만 보던 분위기에서 학교를 다닌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심리적으로 괴로워하며 수험생활을 보냈다.

집안도 공부를 강요했다. 10대 시절 내내 게임도 못 하게 하고 일정 시간 이상 쉬지 못하게 했고, 성적이 낮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괴성을 들어야만 했다. 나를 자유롭게 놔달라고 외쳤을 때 돌아오는 답변은, 그래도 일단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뻔한 말뿐이었다. 부끄러운 과거지만 너무 답답한 나머지 시험이 끝나면 공부했던 책 종이에 불을 붙이며 스트레스를 풀었었다. 그래서 스카이캐슬에서 예빈이가 과자를 훔치는 일탈 장면에 너무 깊게 공감했다. (물론 난 도둑질은 안했다) 그리고 이미 고3때 심각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의사와 상관 없이 강제로 재수를 하게 되었다. 결국 그 재수의 여파로 30대를 앞둔 지금까지 심각한 근육 통증 질환을 앓게 되었다. 대학만 가면 끝은 커녕 대학을 가고 나니 질병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내 20대 삶 전체를 갉아 먹었다. 군대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고, 공부할 때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으며, 직업을 정할 때에도 건강 상태가 지장을 주었다. 연애를 할 때도 상대방에게 과하게 의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뜻 다가가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해의식에 찌들어 절망의 나락으로 빠졌을 때, 여기서 벗어나려고 정말 안간힘을 썼고, 결국 뼈를 깎는 여러 치열한 노력 끝에 어둠의 터널을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의 부모님을 마음속으로 용서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대학만 가면~' 이라는 판타지를 주입시키는 부모들을 볼 때면 마음속 깊은곳에서부터 화가 올라온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억지로 재수를 하는 동안 외로워하며 혼자 먹었던 김밥 한 줄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다. 그것은 영광을 위한 숭고한 희생도 아니었고, 성공적인 결과물을 가져온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평생 한 사람을 괴롭게 만들 부작용만을 낳았으니 말이다. 다수가 목표달성에 실패하는 입시의 특성상 아마도 많은 대학생들이 이런 무의미한 낭비의 경험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에브리타임 같은 대학생 커뮤니티에는 새벽만 되면 그 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그 감정을 긴 글로 터놓는 학생들이 많다. 그들은 아파하며 입시를 치루었고, 여전히 대학생이 되어서도 아파하며 방황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무디어졌을 뿐, 해결 된 것이 아니다.


최근의 청년들 설명하는 다양한 현상 뒤에는 이러한 병리성이 자리잡고 있다. 결혼을 안하는 이유는 경제 문제도 있지만, 입시때 겪었던 고통스러운 유년시절 자녀에게 물려주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연애를 못하는 이유도 바빠서 그럴  있지만, 조건 없는 감정적 소통이 어려운 것도 크다. 공부는 완벽하지만 좋아하는 우주 앞에서 바보가 되는 스카이캐슬의 예서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최근 조국 사태, 인천공항 정규직 논란과 함께 언론에서 연일 말하는 ‘20대에겐 공정성이 중요하다’라는 말 또한 허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이해관계에 따른 판단이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가 있는 것이다. “당신들이 열심히 안하면 사람 취급 안하니까 열심히 했잖아. 근데 당신들이 규칙을 정해놓고선, 왜 당신들이 그 룰을 어겨?” 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 수밖에 없다. 20대를 노력의 괴물로 만든 사람들이, 마치 20대가 잘못한 것처럼 말하면서 규칙을 바꾸려고 드니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대의 마음 속에 켜켜이 쌓인 트라우마를 정치인들이 너무 무책임하게 건드려 버렸다고 생각한다.


인국공 사태에 반대하는 '부러진 펜 운동'에서의 부러진 펜은, 점수 내기 규칙에 익숙했던 청년들의 룰이 깨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펜을 부러뜨린 건 기성세대다


“엄마는 제가 왜 도둑질했는지 관심도 없어요. 물어보지도 않는다고요”

대학 입시는 리더십 있고 밝은 성격의 예빈이를 자존감 낮고 도둑질하는 괴물로 만들었다. 그 괴물들이 대학생이 되고, 졸업을 한 뒤 사회 곳곳에서 내면적 문제를 덮어둔 채 살아가고 있다. 제2의 우병우는 학원에서, 도서관에서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대학생들이 원했던 것은, 공부를 잘 하든 잘하지 않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써 사랑받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을 속세의 괴물로 만드는 이 무의미한 레이스는 대체 언제쯤 끝날까


드라마에 종종 나오던 이 조각상은, 아이에겐 부모의 조건없는 사랑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을까?

 



https://3000won.com/baek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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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74660

https://news.joins.com/article/23284847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945

https://www.youtube.com/watch?v=udopP3bgShk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00703046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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