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사하라 사막 앞 작은 마을의 낡은 호텔에서 일기를 씁니다. 어제는 사막 한가운데 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둘째 날 늦은 오후에 우리는 사막으로 출발했고, 해가 오른쪽으로 떨어지고 하늘색은 푸른색과 분홍색을 지나 진회색으로 바뀌어갈 무렵 캠프에 도착했습니다. 서둘러 짐을 푼 뒤 저녁 식사를 하고, 언덕에 올라서 달이 뜨기 전 별을 보러 나왔습니다. 보름날이라 별을 보기에 하늘은 너무 밝았지만,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나 봤던 여행자의 별자리 북두칠성만큼은 새삼 선명했던 기억납니다.
포르투에서 산 포트와인을 호텔에서 출발할 때부터 낙타 등에 실어왔습니다. 나는 언니들이 있는 캠프 앞 모래 언덕으로 올라가 와인을 나눠 마셨습니다. 포트와인은 달고 사막의 열기에 달궈져 꼭 미지근한 뱅쇼를 마시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나름 운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 같이 둥글게 앉아 와인을 끝내고, 그대로 모래 바닥에 누워 잠깐 눈을 감았습니다. 모래바람 소리를 타고 인도 여행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여행자들의 목소리가 잠결에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이따금 이런저런 여행담이 오가거나 정적이 흐르기가 반복되었고, 나는 가만히 있다가 '여기서 책 읽으면 너무 좋겠다'며 캠프에 돌아가 가방에서 소설책 <데미안>과 손전등을 챙겨 나왔습니다. 다시 일행이 있는 모래 언덕으로 올라와, 모래 바닥에 스카프를 깔고 그 위에 누워 책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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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ost나 재즈 힙합 같은 가사 없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 순간이 영화나 뮤직 비디오처럼 느껴져 내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럼 나는 머릿속으로 작품의 장르와 작품의 색감, 그리고 구도를 잡는 거죠.
마찬가지로 소설책을 읽을 때, 상황을 묘사하는 소설의 문장을 꼭꼭 씹어 읽다 보면 소설의 내용과 별개로 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상황 자체가 나만의 소설로 그려지고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럼 활자로 읽히는 작품의 내용과는 별개로 내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상황 묘사가 펼쳐집니다. 마치 나 스스로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요.
때는 새벽 3시였고, 달은 오른쪽 지평선에서 고개를 들어 점점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달이 높이 뜰 수록 모래 바람은 더 세게 내 팔을 쳤습니다.
아까 같이 누워있던 일행 중 한 명은 한 달 동안 스페인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모로코로 여행 온 사람이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읽은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꿨겠죠. 저도 그랬었고요. 책은 읽은 지 오래돼 순서나 모든 사건들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만, 산티아고가 군대에 붙잡혀 주어진 3일 동안 기적을 만들어야 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산티아고가 바람과 대화를 하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결국 그것이 산티아고가 만든 초자연적인 기적이 되었다는 내용이요.
사막으로의 여정이 시작되기 전에도 나는 모로코에서 산티아고를 몇 번 떠올렸었던 것 같은데, 모래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순간에도 산티아고 생각이 났습니다. 모두 잠든 시간, 멀리 마을에서 들려오는 들개 짖는 소리, 내 손목 위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내 바지 주머니 속에서 소리를 내는 시계의 초침 소리와 살갗을 때리는 모래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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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낮에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모래 바람이 많이 불어 눈을 뜨고 있기 힘들었습니다. 뜬 눈으로 보이는 풍경은 광활한 붉은색과 푸른색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모로칸 가이드가 사막의 한가운데 포토존에서 우리를 능숙하게 찍어주면 '사하라 사막에 다녀온 사람이 누구나 남겨오는' 익숙한 사진이 남았습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눈을 감고, 낙타의 발걸음에 따라 흔들리는 몸이 만드는 리듬과 귀에 스치는 바람소리, 안장 손잡이를 잡은 손과 맨발을 때리는 뜨거운 바람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