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바뀌지 않은 단위의 역사
길이를 재거나 무게를 측정할 때, 우리는 당연히 미터와 킬로그램을 떠올립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미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독 미국만은 여전히 인치, 피트, 마일, 파운드 같은 전통적인 단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차이로만 볼 수 없는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사실 미국도 한때 미터법을 도입하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겹치면서 끝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미국식 단위는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습니다. 우선, 서로 다른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어 단위 간 변환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길이를 잴 때 1피트는 12인치, 1야드는 3피트, 1마일은 5280피트입니다. 반면, 미터법에서는 1킬로미터가 1000미터이므로 훨씬 직관적입니다. 무게도 마찬가지입니다. 1파운드는 16온스인데, 미터법에서는 1킬로그램이 1000그램입니다. 부피 단위는 더 복잡합니다. 액체를 잴 때 액량 온스(fl oz), 컵(cup), 파인트(pint), 쿼트(quart), 갤런(gallon) 등이 혼용되는데, 미터법에서는 밀리리터와 리터만 사용하면 됩니다. 이처럼 미국 단위는 직관적이지 않고, 계산이 복잡하며, 국제 표준과 맞지 않아 불편함을 초래합니다.
18세기 후반,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미터법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 이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단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그 결과 미터법이 탄생했습니다. 제퍼슨은 이를 미국에도 적용하고 싶어 프랑스 과학자 조제프 도메니크 카시니를 초청했습니다. 그는 미터와 킬로그램의 표준이 될 도구를 직접 들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카시니가 탄 배가 카리브해에서 영국 해적의 습격을 받았고, 그는 인질로 잡혀 끝내 미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미터법 도입 계획은 흐지부지되었습니다. 만약 이 사건이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도 미터법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후에도 미국은 몇 차례 미터법 도입을 고려했습니다. 1866년에는 미터법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기존 단위를 강제적으로 폐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산업계와 국민들이 기존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중반, 세계적으로 표준화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미국도 다시 미터법 전환을 논의했습니다. 1975년에는 정부 차원에서 미터법 사용을 장려하는 법까지 제정했지만,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에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생긴 문제도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99년 NASA의 화성 탐사선 ‘마스 클라이밋 오비터(Mars Climate Orbiter)’가 단위 변환 실수로 폭발한 사건입니다. 탐사선을 제작한 하청 업체가 미국식 단위를 사용한 반면, NASA 본사는 미터법을 적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궤도 계산에 오류가 발생했고, 결국 탐사선은 화성 대기에서 불타 사라졌습니다. 미터법을 썼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앞으로 미터법을 도입할까요?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이미 산업 구조가 기존 단위에 맞춰 굳어졌고, 국민들도 익숙한 방식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미국 내에서조차 미터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지만, 변화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다만 과학, 의학, 군사 분야에서는 미터법이 널리 쓰이고 있으며, 국제 협력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점점 미터법 사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미터법을 거부한 것은 단순한 고집 때문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건이 쌓이고, 사회적 구조가 굳어지면서 변화의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러나 글로벌 표준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에, 미국도 완전히 기존 방식만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미국에서 미터법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