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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제가 세금을 맞은 이유

이름은 소화제, 정체는 사치품이 된 기묘한 비스킷의 역사

by 김형범

세상에는 본래의 목적을 완전히 잊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묘하고 아이러니한 운명을 지닌 하나의 비스킷 이야기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 얼마나 강력한 변수인지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바로 수많은 사람이 커피나 차와 함께 즐겨 먹는 그 통밀 비스킷, '다이제스티브(Digestive)'의 이야기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화를 돕는'다는 뜻을 지닌 이 비스킷은, 사실 1800년대 영국의 의사들이 변비 환자들을 위해 개발한 엄연한 의료용 비스킷이었습니다. 굵은 통밀 가루와 소화를 돕는 중탄산나트륨 등의 성분을 듬뿍 넣어 장운동을 촉진시키려는 순수한 의학적 목적으로 탄생했지요. 이 초기 비스킷은 결코 달콤한 간식이나 여가를 위한 식품이 아닌,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기능성 약품에 가까웠으며, 그 맛 또한 건강식 특유의 퍽퍽함과 심심함을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도가 고결하고 순수해도, 대중의 입맛은 냉정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건강에 좋은 것은 맛이 없다"는 대중의 불만과 함께 더 즐거운 식품을 원하는 욕구가 커지기 시작했고, 결국 제조사들은 이 딱딱하고 퍽퍽한 비스킷의 한쪽 면에 초콜릿을 코팅하는 혁신적인, 동시에 본래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 순간, 다이제스티브는 소화제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달콤한 간식, 즉 '인간 사료'로 변모하게 된 것입니다. 본래 의사들의 순고한 뜻은 사라지고, 이젠 소화제보다는 칼로리를 걱정하게 만드는 식품이 된 것입니다.


이 초콜릿 한 겹의 추가는 단순한 맛의 변화를 넘어, 국가의 세금 정책과도 충돌하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영국에서는 케이크처럼 필수적인 식품에는 부가가치세(VAT)가 면제되지만, 초콜릿으로 덮인 비스킷은 사탕이나 기타 유사한 과자류, 즉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세금이 부과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조사는 자신들의 제품이 생필품임을 주장하며 초콜릿 코팅에도 불구하고 비스킷이 본질적으로 필수 식량임을 강조하며 소송까지 걸었습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판사는 이 기묘한 비스킷을 직접 맛보고는 "이 맛은 사치다"라고 단호하게 판결하며 제조사의 주장을 기각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비스킷의 운명이 법정에서 그것의 '맛'에 의해 결정되는, 실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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