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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의 전설적 사진, 그 앵글 뒤에 숨겨진 기막힌 반전

쫓겨난 자리에서 역사를 쓴 신입 작가와 로열석의 비극

by 김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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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링 위에 대자로 뻗은 선수와 그를 내려다보며 맹수처럼 포효하는 챔피언,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오직 두 사람만을 비추는 조명까지. 완벽한 대칭과 강렬한 색감 덕분에 마치 잘 연출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스포츠 사진입니다. 바로 복싱 황제 무하마드 알리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한 컷이지요. 그런데 이토록 완벽해 보이는 걸작이 사실은 치열한 계산이 아닌, 기막힌 운명의 장난과 억울한 상황 속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오늘은 이 위대한 사진 한 장이 탄생하기까지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시계바늘을 1965년 5월 25일로 돌려보겠습니다. 미국 메인주 루이스턴에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헤비급 타이틀 매치, 무하마드 알리와 소니 리스턴의 2차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링 밖의 취재 열기 또한 뜨거웠는데, 그곳에는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소속의 두 사진작가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선임 작가 허브 샤프먼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제 막 경력을 쌓아가던 22살의 패기 넘치는 신예, 닐 라이퍼였습니다. 링 사이드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었고, 사진작가들에게 자리 선정은 곧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당연하게도 베테랑인 샤프먼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심판석 근처의 가장 전망 좋은, 소위 ‘로열석’을 차지했습니다. 반면 신참이었던 라이퍼는 선배의 강요에 밀려 링 반대편,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로 쫓겨나듯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1라운드 1분 44초,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알리의 짧고 날카로운 주먹, 훗날 ‘유령 펀치’라 불리게 될 일격이 리스턴의 턱에 꽂혔고 거구의 리스턴은 그대로 링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보통의 선수라면 중립 코너로 물러났겠지만, 알리는 달랐습니다. 그는 쓰러진 리스턴 위에서 “일어나서 싸워, 이 멍청아!(Get up and fight, sucker!)”라고 소리치며 격정적인 포효를 쏟아냈습니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 링 반대편으로 밀려났던 닐 라이퍼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놀랍게도 리스턴이 쓰러진 방향은 정확히 닐 라이퍼의 정면이었습니다. 덕분에 라이퍼는 알리의 터질 듯한 근육과 승리감에 도취된 표정, 그리고 바닥에 납작하게 깔린 리스턴의 모습을 완벽한 대칭 구도로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더 대단한 점은 기술적인 부분에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기자가 흑백 필름을 썼던 것과 달리, 라이퍼는 생생한 현장감을 위해 컬러 필름과 특별한 조명을 준비했습니다. 이 조명은 충전 시간이 오래 걸려 연속 촬영이 불가능했기에 그에게 허락된 기회는 단 한 번의 셔터뿐이었습니다. 다른 기자들이 연사로 사진을 찍어댈 때, 그는 숨을 죽이고 가장 완벽한 0.1초를 기다려 역사에 남을 명작을 건져 올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던 선배, 허브 샤프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바로 이 이야기의 백미입니다. 리스턴이 라이퍼 쪽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반대편에 있던 샤프먼의 자리에서는 알리의 등짝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닐 라이퍼가 찍은 그 전설적인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리의 다리 사이로 멍하니 앉아 있는 대머리 남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바로 샤프먼입니다. 좋은 자리를 고집했던 그는 결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포츠 사진의 ‘배경’으로, 그것도 경쟁자인 후배의 사진 속에 박제되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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