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가능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것일 테다. 당시에는 그 목표가 인생의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흘러 더 어른이 되고 'ㅇㅇ대학에 갈 수 있었다', 'ㅇㅇ시험에 붙을 수 있었다'는 말들은 자신의 가치를 대변하지 못한다. 때로는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더 초라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렇듯 말에는 힘이 없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힘은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힘은 행동에 있다. 이제까지 이루어낸 '현재의 나'만이 자신을 증명해줄 뿐이다.
최근 학원에 재작년 합격생 S가 와서 학생들에게 합격수기를 들려주고 갔다. 그 학생이 수험생이던 시절,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당시 학원에서는 합격생들을 초대해 합격 수기를 들려주는 이벤트를 했다. 자고로 수험 생활은 앞이 보이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라 누군가 먼저 걸었던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작은 희망이라도 찾기 위해 그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갈 수밖에 없다.
합격수기 이벤트가 진행되는 때는 평소라면 오전 수업이 끝나고 오후 자습이 있는 시간이었다. 오후 자습 시간에는 개인적인 질문을 가지고 오는 학생들이 교무실 밖 복도까지 줄을 서기 때문에 강사들은 오히려 더 바쁜 시간이었지만, 그날만큼은 학생들이 합격수기를 들으러 갔을 테니 한가한 오후 시간이 되리라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 S가 질문을 가지고 왔고, 나는 허탈함을 삼키며 물었다.
"너는 합격수기 들으러 안 갔어?"
그러자 S는 "남의 합격수기 들어서 뭐해요. 제가 붙은 것도 아닌데. 그 시간에 제 공부하는 게 나아요."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합격의 이치를 깨달은 현인 같은 소리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랬던 S가 합격생으로 당당히 학원에 합격수기를 말하러 온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마 또 다른 예비합격생은 합격수기 들을 시간에 개인 공부를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얼마 전 읽은 영어 지문에서 마시멜로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읽게 되었다. 마시멜로 실험이란 만 4세 어린이들에게 마시멜로를 주고 15분 동안 먹지 않고 기다리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는 실험으로, 각 실험 참가자들의 20년 후를 추적해보았더니 인내심을 가지고 두 번째 마시멜로를 얻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더 많은 것을 성취하더라는 유명한 연구이다. 해당 연구는 이후에 수많은 후속 연구를 이끌어냈는데 이 지문이 그 후속 연구 중 하나였다.
이 연구의 결론은 주양육자가 평소에 약속을 잘 지키지 않은 경우, 양육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15분 뒤에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을 가뿐히 무시하고 그 자리에서 마시멜로를 먹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성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내심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뱉은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느냐가 주된 요인이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던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했던 말뿐인 약속과 다짐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