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경주를 멈출까 고민하고 있었다. 더 죽자살자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에, 조용히 기권표를 만지작거렸다. 빨간등이 켜졌다. 경고등이 번쩍거렸다. 내 마음 안에선 쉴새없이 경고등이 울렸었지만, 애써외면했다. 그건 나는 내가 시들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에만 온 힘을 쏟았고, 몸의 한계가 달했다는 어떤 직감이 왔다.
동네 가정의학과에서 받은 피검사 결과는 심각했다. 헤모글로빈과 면역 수치가 기준치보다 한참 아래. “10년 경력 동안 이런 수치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의사의 말에, 어렴풋이 알고 있던 진실이 확실해졌다. 몸과 정신이 동시에 무너지는 데엔,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과격한 운동, 스트레스, 카페인, 술, 기름진 음식—모두 금지, 일주일에 한번씩 링거투여. 그 조언들은 지금 내 현실에선 절대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병원을 나서는 길에 다시 우울감이 덮쳤다. 검사 결과지를 손에 든 채 마트를 들르고, 계단을 반쯤 오르자 숨이 넘어갈 것같은 과호흡이 왔다. “이러다 길에서 쓰러지겠구나.” 그 순간, 모든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결국, 내 커리어를 내려놓았다.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이 없는, 모든 것이 ‘위기’ 상태였다. 나는 몸과 정신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을 다닐수록, 아픈 곳은 더 많이 발견되었다. 나의 결핍과 나약함, 어디서부터 무너졌는지 모를 삶의 잔해를 매일 마주해야 했다. 시련은 멈추지 않았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감정은 바닥을 쳤다. 밤이면 혼자 조용한 거실에서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오열했다. 그렇게 펑펑 울고 나면, 그나마 속이 후련했다.
지금은 나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에 조금 익숙해졌다. 나는 얼마나 나를 외면하며 살아왔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몸의 작은 신호, 마음의 미세한 떨림에 귀 기울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성으로 나를 돌보는 일이, 더 나은 삶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요즘의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집밥을 나누고, 가볍게 운동하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친구와 차 한잔과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 모든 소소한 순간들이, 우리를 시들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조금씩 귀기울이며 살아간다. 시련 속에서도 시들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