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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나'를 지키려는 소심한 접근에 대하여
나는 내 삶을 폭파하고 싶었던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폭파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사치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갚아야 할 것들, 지켜야 할 것들, 무너뜨리면 안 되는 것들이 삶의 사방에 조용히 박혀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숨을 쉬어왔다. 그게 어른이라는 거라고, 그게 책임이라는 거라고, 나는 꽤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젖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젖고 싶다는 사실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우산을 챙겼고, 완벽하게 건조한 채로 하루를 마쳤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문에 맺힌 빗방울을 보며 이상한 상실감을 느꼈다. 뭔가를 잃은 것 같은 기분. 딱히 잃은 게 없는데도.
그날 밤 나는 오래된 일기를 꺼냈다. 이십대의 어느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오늘은 비를 맞았다. 이유 없이. 그냥 맞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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