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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로살롱 Sep 06. 2022

낯선 미국 땅, 오클라호마의 첫 신혼집

3개국 8번의 이사가 남긴, 나의 집에 관한 단상



결혼 후 도미, 라는 말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직장생활 10년 차에 만난 지금의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

어릴 적부터 나의 꿈은 한 가지만 하고 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지루한 일상은 싫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삶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꿈이 실현되었다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어느덧 해외 살이 15년 차에 접어들었다.

미국 유학생이던 남편은 '미국 살이'의 어려움에 대해서 미국 가기 전부터 귀에서 피가 나도록 이야기했다. 물론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과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는 건, 몸소 체험해보고 나서야 그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도착한 도시는 미국 중부에 위치한 백인 중심의 주, 오클라호마였다. 지도에서 찾아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이 주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거니와 미국에서 동부, 서부, 중부, 남부, 그리고 대도시와 아닌 곳이 마치 세기를 달리 사는 것처럼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 또한 알턱이 없었다. 그저 그렇게 겁 없이, 철없이 떠난 '오클라호마'라는 곳은 나에게 적잖이 많은 문화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내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남편은 미리 신혼집을 구해둔 터였다. 오클라호마를 가면서 내가 살게 된 도시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상상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차피 사람 사는 곳 다 마찬가지겠지, 라는 도전적이고 안일한 생각과 함께,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진 한국을 떠난다는 벅찬 감정 정도였다.








골프장과 건초 밭을 지나면 있던 우리의 첫 신혼집


도착한 그곳은 아주 넓은 평원이었다. 지금껏 서울에서만 살던 나는 이렇게 넓은 평원을 본 적이 없다. 어디를 둘러봐도 너른 초원이 있으며 저 끝의 지평선이 가로로 쭉 이어져 마치 그림처럼 한눈에 보였다. 눈에 걸리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낮은 지붕의 건물들 몇 개뿐. 가끔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유전을 파고 있는 작은 시추 기계가 보이는 정도.

뭔가 새롭다 못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이런 풍경을 지나고 나면, 집을 떠난 나에게 생긴 첫 집, 바로 우리의 신혼집이 거기에 있었다. 그 집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건물 구조인데 미국 중부에서는 이런 곳을 아파트라고 불렀다. 아주 넓은 단지에 2층짜리 한동이 여럿 있으면서, 한 층에는 두 집씩 네 집이 산다. 집은 낮은 목조 건물이며 옆으로 넓게 퍼져 있다. 건물 앞쪽은 모두 너른 주차장이다. 이렇게 스무 동 쯤 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서 가운데에 테니스 코트가 있고, 오피스와 헬스장이 갖추어져 있다. 이 집의 가장 특징은 바로 옆이 골프장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던 집은 2층 집의 왼쪽에 있는 집이었는데, 집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앞집과 함께 쓰는 공동 베란다가 있다. 이곳에서 밖을 보면 역시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한쪽은 골프장, 한쪽은 마른풀을 동그랗게 말아놓은, 마치 두루마리 휴지 같이 생긴 건초들이 쭈욱 서있는 건초 농장이다. 이렇게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생전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이렇게 조용한 곳 또한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 안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2층 베란다에서 골프장과 건초 밭을 바라보거나 혹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정도다. 마치 성에 갇힌 공주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스테이트 페어(State Fair)에 가면 재밌는 구경을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운전이 꼭 필요하다고? 차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모든 문제는 차에 있었다. 운전을 못하면 밖을 나갈 수가 없는 오클라호마의 삶은 이제껏 내가 생각했던 생활과는 많이 달랐다. 남편이 차를 가지고 학교로 가면 나는 멀뚱이 집에 앉아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게 싫어서 어느 날부터는 학교에 함께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결혼 전까지 운전면허가 없던 나는 급하게 학원에 등록해 면허를 땄다. 남편은 운전면허가 없이는 미국에서 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 기를 쓰고 학원을 다녀 결국 1종 운전면허증을 내손에 넣었고 의기양양하게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그저 '면허증'만 있던 나는 실제로 운전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운전 미숙도 이런 초보자가 없을 만큼 초초보였고, 심지어 미국 운전 면허증이 없어서 운전은 못한다고 했다. 결국 마트 갈 때도 카페 갈 때도 심지어 친구 만나러 갈 때도 남편에게 데려다 달라고 해야 할 만큼, 귀찮은 껌딱지가 되어 한동안 남편에게 매미처럼 매달려 살았다. 남편에게 온갖 구박을 받아 가면서 운전을 1부터 새로 배워 나갔고 나도 조금씩 운전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오클라호마는 길도 넓고 주차도 어렵지 않게 그냥 쓱 하고 넓은 주차공간에 차를 밀어 넣으면 되었다. 다만 핸드폰에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라 길을 잘못 들면 다시 U턴, 또다시 U턴을 밥먹듯이 하고 다녔다. 그렇게라도 혼자 운전을 하게 되었고 혼자서 다니고 싶은 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걸음마를 배운 후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아마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너른 운동장 같은 아파트 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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