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트로살롱 Sep 08. 2022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신혼집

3개국 8번의 이사가 남긴, 나의 집에 관한 단상





그냥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야. 이웃의 죽음을 목격하다


이 집에서 겪었던 가장 충격적인 일 중에 하나는, 이웃의 죽음이었다. 어떤 도시의 아파트든, 누가 어디에 사는지 사실 잘 모르는 게 당연한 듯 살아왔다. 우리도 옆집 아랫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인사조차 거의 나눠보지 않을 만큼 그렇게 낯선 이방인인 채로 근 2년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누군가 집에 찾아왔다. 그는 낯선 얼굴의 중년 남자였는데, 바로 아랫집에 살던 사람이 자기의 딸이라고 했다. 그 전날 그 집에 무슨 일이 생겼었다. 전날 밤에 구급차 한대가 집 앞에 도착했고 아랫집에 살던 여자가 실려갔다. 우린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는데, 그렇게 실려간 그 중년 남성의 딸은 심장 마비로 그대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우린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다. 그 집에 거구의 젊은 여자가 혼자 사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있는 창의 블라인드 한번 올린 적 없이 늘 어둠 속에서 살던 여자였다. 밤이 되면 늘 노란 불빛이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나와서 잘 지내고 있나 보다, 고 안부를 알 정도였으니 당연히 말 한번 섞을 일조차 없었다.

그 남성은 자기 딸이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 남자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서 자기 딸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혹시라도 우리가 그 남자 친구를 집에서 본 적이 있는지 언제 왔었는지 알려주면 고맙겠노라고 했다. 우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딸의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데다가 그동안 아랫집 여자에 대해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웃에게 이렇게 무심했으니 우리도 만약 이 집에서 위험한 일을 당하더라도 아무도 관심조차 갖지 않겠구나. 우리도 그냥 그런 존재로 사라지겠구나 생각하니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오클라호마에 토네이도가 덮치다, 우리 집의 행방은?


오클라호마의 토네이도는 전 세계에서 강력하기로 유명하다. 오클라호마 대학교 기상학과는 미국 대학 안에서도 높은 랭킹을 유지할 만큼 기상학이 유명한 곳으로, 오클라호마의 하늘에서는 온갖 일이 다 벌어진다. 차에 흠집을 낼만큼 크기가 5백원 짜리 동전보다 큰 우박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거나, 온 세상을 겨울왕국으로 만들어버리는 얼음 비가 내리기도 한다. 이 얼음 비는 볼수록 신기했는데, 비가 내리면서 눈으로 바뀌지 않고 바로 얼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온 나무들이 온통 얼음을 맞아 얼어붙은 것처럼 겨울왕국의 세상이 되어 버린 적이 있다. 이외에도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아무것도 없이 너른 지평선에 쉴 새 없이 내리꽂는 번개와 벼락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순간을 경험한 이후로 자연 재앙에 대해서는 함구하게 되었다.

오클라호마에 살면 일 년에 한두 번은 누구나 토네이도를 경험하게 된다. 멀리서 회오리 폭풍이 오는 걸 딱 한번 눈으로 본 적이 있는데 자연의 힘이란, 가히 위력적이다. 어느 날, 남편과 같이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대피방송이 나왔다. 토네이도가 지나갈 예정이니 쉘터에 들어가라는 안내 방송이었다. 오클라호마는 곳곳에 방공호 같은 쉘터가 있는데 그 서점에도 철문으로 만들어진 쉘터가 있었다. 남녀 따로 구분해서 철문 안으로 대피한 후 그 안에서 약 30-40분 정도 기다렸는데 그 시간은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내내 떨었던 기억이 있다. 남편과 떨어져 있으니 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오클라호마를 떠난 이후 그 날씨에 대해서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우린, 몇년 후 뉴스를 통해 오클라호마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클라호마에 El Reno라는 강력한 토네이도가 지나갔다는 소식이었다. 늘 지나갈 때 마다 조마조마했었는데 결국 강력한 토네이도로 그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고 뉴스마다 큰 사건으로 보도가 되었다. 그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지역이 바로 우리가 살던 그 집 앞의 도로였다. 그 일대는 나무고 집이고 모두 무너져 버렸고 그 지역에 있던 초등학교를 덮쳐 아이들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접했다. 내가 살던 그 집은 여전히 거기에 남아 있을까. 나중에 그 집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 그 자리에서 우리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낯선 곳에서 늘 낯선 냄새를 맡으면서 살던 그 때, 매일 색깔을 바꿔가며 다른 빛을 보여주던 하늘을 바라보던 그 기분 만큼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변화무쌍한 하늘을 보여주는 오클라호마, 아파트 내










작가의 이전글 남부 백인 동네에서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