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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로살롱 Oct 03. 2022

이삿짐 트럭 타고 시카고까지 가다

3개국 8번의 이사가 남긴, 나의 집에 관한 단상



우리는 이삿짐 트럭을 타고 고속도로로 약 10시간을 달려 인디애나까지 가야 한다. 트럭 앞 좌석은 세명이 쪼르륵 앉을 수 있는 구조였다. 남편이 운전석에 앉았고 보조석에 아이의 카시트를 올렸다. 그리고 가운데에 내가 앉았다. 가장 신경 쓴 건 어린아이의 머리가 운행 중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머리 받침대도 준비했지만 혹시 몰라 달리는 내내 아이의 머리를 꼭 붙잡고 있었다. 휴게소에서는 분유를 타기 힘들 것 같아 미리 액상 분유를 챙겼다. 시간마다 휴게소에 멈춰 서서 분유를 먹였고, 트림까지 다 시킨 후에야 다시 차를 태웠다. 아이는 생각보다 잘 견뎠다. 한 번도 울거나 보채는 법 없이 가는 내내 잠을 자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두 달 된 작은 손으로 안전벨트까지 꼭 잡고 있었다.

트럭의 승차감은 말할 필요도 없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 탈 정도는 아니었다. 아주 높은 꼭대기층에 앉아 고속도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나름 즐길만했다.





트럭 주유 초보라 서성이고 있는데 옆 라인의 트럭커 아저씨가 선뜻 도와주었다.


우리는 중간에 주유를 위해 주유소에 들렀다. 큰 트럭들만 주차를 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 평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역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소하지만 큰 문제와 맞닥뜨렸다. 바로 트럭에 하는 셀프 주유 법.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한참을 그 앞에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옆 라인에서 주유를 하던 트럭커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도와줄까?" 그 한 마디에 우리는 은인을 만난 냥 고개를 주억거리며 땡큐를 연발했다. 겉모습은 영화 속에 나오는 문신 가득한 키가 190cm쯤 되는, 얼굴에 수염을 잔뜩 기른 거구의 아저씨였으나 마음만은 천사 같았다. 호기심이 많아서인지 우리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하긴, 누가 봐도 우리가 궁금할 터였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중간 기착지인 인디애나 폴리스에 도착했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렵지 않았는데 시내로 들어서니 뒤쪽에 매단 자동차가 문제였다. 코너를 돌 때나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때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야 했다. 내가 운전을 한 것도 아닌데 남편의 운전과 아이의 안전이 신경 쓰여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의 모든 신경은 이미 솟을 때로 솟아나 뾰족해져 있었다. 겨우 집에 도착하고 나니 그동안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렸다. 아이 역시 안전한 장소에 도착한 걸 알았는지 씻기고 분유를 먹였더니 바로 쌔근쌔근 곯아떨어졌다. 그곳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시카고로 갈 채비를 했다.




이사의 고통이 잊혀갈 즈음, 우리는 다시 시카고로 출발했다.






인디애나 폴리스에서 지내는 이틀 동안, 우리는 이사를 잊은 듯 지냈다. 그 집에서 열심히 먹고 마시고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가져갈 가구도 그 집에서 리폼해서 가져왔다. 서랍장 하나와 테이블 하나, 흔들의자 하나. 그렇게 세 가지의 가구를 각기 검정과 흰색 페인트로 칠하고 덧바르고 말렸다. 낮에는 인디애나 폴리스 시내도 구경하고 카페도 갔다. 마치 여행을 나온 여행객처럼 말이다. 그렇게 쉬고 나니 다시 이사할 에너지가 솟았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차가 막힐까 봐 우리는 새벽녘에 집을 나섰다. 시카고로 들어가는 출근길 러시아워를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남편을 초긴장하게 만들었던 트럭과 자동차를 이어주는 기계를 제거했다. 자동차를 집주인이자 남편의 지인이 운전해서 시카고까지 동행해주기로 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가는 길도 3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어스름할 때 출발했는데 가는 도중에 해가 조금씩 떠올랐다. 졸고 있다가 고속도로 표지판에 시카고 다운타운 방향 표지가 보이고 저 멀리부터 시카고 다운타운의 스카이 라인이 그 위용을 드러냈을 때, 그제야 시카고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일출과 함께 보이는 시카고 다운타운의 스카이 라인이라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가 살 곳이다. 나는 보면서도 이곳에 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자고 있는 아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부터 우리는 시카고에 산다."



며칠에 걸쳐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시카고 다운타운을 마주한 순간의 감동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생전 처음 큰 트럭을 몰아본 남편도, 함께 타고 이사한 나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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