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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ar Dec 14. 2022

꾸준함은 없고 용기는 있습니다

꾸준함이 과연 장점일까

연말이 되면 그 해를 돌아보면서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다시 떠올려본다. 몇 번 시도했다가 그만둔 계획,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실천했던 계획, 하기 싫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까지 습관으로 만든 계획. 계획의 내용은 전부 다른데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한 가지 ‘꾸준함’이 있다. 
우리나라는 꾸준함, 성실함을 중요한 미덕으로 여긴다. 어떤 상황에서도 끈기 있게 해내는 마음가짐은 나이에 상관없이 항상 평가받는다. 학교를 다닐 때는 개근상으로 꾸준함과 성실함을 평가받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아파 쓰러지더라도 일단 회사는 출근해야 한다. 엄청난 비와 눈이 내려도 어떻게든 출근을 해내고야 마는 K 직장인 사진을 SNS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꾸준함을 미덕으로 여기게 되었는가? 그 끝에 보상받을 만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꾸준함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그 끝에는 무지개가 있겠거니 상상하며 그저 묵묵히 해낼 뿐이다. 


꾸준함을 생각하면 연예인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언제 데뷔할지 모른 채 꾸준히 연습하는 연습생이나,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아질 날을 기다리며 성실하게 연기를 하는 배우를 보며 그들에게 꾸준함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난여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배우 박은빈의 꾸준함이 돋보이는 드라마였다. 박은빈 배우는 아역배우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성인 연기자가 되기까지 많은 작품에 출연하여 꾸준한 배우 활동을 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박은빈 배우를 우영우로 기억하겠지만 내겐 우영우 이전에 청춘시대의 송지원이 있었다. 두 작품의 캐릭터는 결이 완전히 다른데 매 작품마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 했기에 성실함은 또 다른 기회를 끌어당겼고, 배우 커리어에 다양한 작품 활동을 가져다주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 꾸준히 해내는 것은 커리어 측면이나 퍼스널 브랜딩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꾸준함은 시간이 겹겹이 쌓일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나는 꾸준한 사람인가,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네 보다 아니오에 가깝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각 회사마다 짧은 근속연수, 경력 중간중간 비어있는 기간들을 보면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꾸준함을 다른 사람은 쉽게 해내는 것을 보면 나는 정말 이상한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을 만나면 더욱 자기 검열에 엄격해진다.
 


나는 꾸준함의 중요성은 깊이 공감하지만 그걸 해내는 건 어려운 사람이다. 


이런 기질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모두가 개근상의 중요성을 말할 때 조금이라도 아프면 집에 가서 쉬고 싶었고 선생님이 조퇴를 허락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서든 집에 가기 위해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이쯤 되면 힘든 상황을 견뎌내는 인내심이 부족한 건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게도 꿈을 위해 10시간이 넘게 꾸준히 몇 년간 시험 준비를 몇 년간 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던데 이젠 왜 꾸준함이 어려워졌을까. 정답은 나이를 먹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를 갉아먹지 않는 것에서 찾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니 우리는 서로의 꾸준함을 시간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쉽게 평가하게 된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살아온 환경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각자 고통을 참으며 꾸준히 할 수 있는 영역과 시간이 다르다. 정량화할 수 없는 것들을 무시한 채 시간이라는 객관적인 요소로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자 스스로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꾸준함은 미련하게 버텨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 답지 않다고 느낄 때,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소중한 것이 흔들린다고 생각될 때는 과감히 꾸준함을 버려야 한다. 꾸준함의 반대는 포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용기가 될 수 있다. 해오던 것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의 결핍에 대해 늘 고민한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내가 갖지 못한 꾸준함에 대해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슬퍼하며 나는 왜 이럴까 생각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그때마다 관점의 변화를 바로 떠올리자. 


나는 꾸준함은 부족하지만 새로운 변화에 용기 있게 뛰어드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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