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 Jul 22. 2021

나에겐 죽은 스승들이 있다.

나에겐 죽은 스승들이 있다. 한두 명이 아니라 내가 존경하고 따르는 모든 존재는 사실은 거의 다 한 줌의 재가 되었거나 흙으로 돌아간 상태이다. 생이 가진 가장 커다란 장점은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인데, 그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몸도 마음도 생각도 늘 변하고 그것이 지극히 정상인데 그래서 나는 인간을 백 프로 신뢰하진 않는다. 정확히는 살아 숨 쉬는 인간을 말이다. 그러나 생이 끝나면 예측 불가능한 모든 작용이 멈추게 된다. 더 이상 나는 나의 믿음과 신뢰가 깨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에겐 죽은 스승들이 있다. 아주 많이.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타이틀을 달기 전,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였고 그 기간 동안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종종 화실에 다니기도 했지만 내가 따르던 스승에게 허점이 있거나 빈틈이 보이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했다. 나의 스승은 늘 완전함과 무결함 그 자체여야 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서양미술사와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대순으로 훑으며 스승이 될만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에게는 많은 스승이 생겼다. 그중 나의 삶과 그림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단연 빈센트(빈센트 반 고흐)였다. 그는 나에게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그를 광기의 화가 나 미쳐서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누구보다 제대로 살고 싶어 한 사람이었고 그림을 그리는 중에는 어느 때보다 제대로 된 정신으로 집중했을 것이다. 그가 그림 그리기에 그토록 열중한 것도 모두 살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기복이 심한 나는 그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Vincent van Gogh, 1889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나의 감정은 외로움이 아니라 선택한 고독이라는 것을 늘 되뇌는 것, 그림을 그릴 때도 잘 먹고 잘 자야 한다는 것 등 대게 그가 조절하지 못해 힘들어했던 부분에서 얻은 교훈들이었다. 그러나 늘 마음속에 사랑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도 그에게서 얻은 커다란 조언 중 하나이다.

The Starry Night,   Vincent van Gogh , 1889          


나의 또 다른 스승은 장 프랑수아 밀레이다. 나는 양손에 경제적 부유함과 마음의 충만함을 놓고 저울질할 때면 늘 밀레를 떠올린다. 그러면 스승은 늘 마르고 평온한 얼굴로 지금의 신념을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격려한다. 세상의 인정과 부유함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인생을 평가하는 척도가 아니란 것을 늘 조용하고 고요하게 알려준다. 그러면 나는 안심하고 마음의 충만을 선택한다. 하지만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불평할 때도 많다. 그러나 나는 나와 같은 시기를 살고 있었던 30대의 밀레처럼 부인과 자식을 건사하며 며칠씩 끼니를 굶으며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 상황이 훨씬 좋다. 더군다나 '만종'이나 '이삭 줍기' 같은 걸작을 아직은 그리지도 않았으니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엔 너무 이르다.


Self-portrait, Jean Francois Millet, 1841, Oil on canvas


밀레는 그의 실력에 비해서 늦은 시기에 비로소 명성을 얻고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거장에게 주어지는 정부의 프로젝트를 맡겼지만, 이미 쇠약해진 그는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못한 채 결국 세상을 떠났다. 밀레는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그림과 능력을 알아봐 주지 못한 세상에 대해 그 탓을 돌리거나 불평이나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리며 마주하는 다양한 불평, 불만이 튀어나오는 상황에서 자주 밀레를 떠올리며 그를 닮고자 한다. 그러나 그와 같아질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정한 목표는 밀레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The Gleaners, Jean Francois Millet, 1857


피카소(파블로 피카소)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사실 나의 스승이 될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찾았을 때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의 것으로 흡수하고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티스(앙리 마티스)는 지금까지 네가 무엇을 했던 그것이 좋은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란 믿음을 가지게 해 준다. 뭉크(에드바르 뭉크)는 생각하는 것보다 나의 삶이 길 수 있고 또 나의 슬픔과 불안이 오히려 그림을 그리는데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고 이제 신은 네 안에만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며, 김진영 선생님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정신이란 사실을 알려주셨다.

피카소와 마티스


이토록 많은 그리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되는 것이다. 나의 목표는 철저히 내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바로 '내'가 되는 길의 중요한 중심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며 차곡차곡 나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지금, 이 스승들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죽은 스승들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작가의 이전글 도비니의 정원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