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처럼 나는 스케치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스케치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선생님은 전체적인 모양을 살피며 가벼운 터치로 모자란 부분을 채우며 한마디를 던졌다.
"이건 제도가 아니잖아요"
시선은 그대로 그림과 연필의 움직임에 둔 채, 그저 머릿속 생각을 지나가듯 툭. 그러면서 나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선들에게 자유로움을 부여하고 이것이 불완전한 인간이 그은 직선임을 증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미지 출처; freepik
아주 오랜 기간 이성의 영역에서 살아온 나는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 대상을 보이는 대로 정확히 모방하는 것만이 목표였다. 그러니 곧게 뻗은 건물의 모습은 정확히 직선이어야 했고 도면을 그리듯 반듯한 직선을 긋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는 사이 내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림보다 제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화실선생님이 직접적으로 '제도'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면 아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그 말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지만, 그 후 본능적으로 강박적인 선긋기를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건 제도가 아니야"
나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어떤 형상을 완벽히 모방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수치가 잘 못되거나 각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벌어지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목격한 아름다움의 순간을 표현하여 그것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또 다른 아름다움의 현상을 소환해 내는 역할을 맡은 사람인 것이다. 감상자가 하나의 그림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꼈다는 것은 단순히 그 작품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란, 자신 안에 내재된 아름다움의 경험과 느낌이 강렬한 빛과 온도를 가지고서 타오르는 순간이다.우리가 작품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는 것은 그 작품에 대한 사랑과 경의라기보다는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기쁨과 환희, 그리고 동시에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나의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또 스스로의 내면에 사랑과 아름다움이 없다면 그 어떤 외부의 사랑과 아름다움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미적 감각은 그것이 작가로 하여금 아주 자연스러운 형태로 표현되었을 때 더욱 극대화되고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빈센트의 빠르고 에너지 넘치는 붓터치, 밀레의 고요하고 소박하며 섬세한 붓터치는 모두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행위 안에서 만들어졌기에 감동을 더하는 것이다. 따라잡을 수 없는 거장의 그림을 바라보며 내면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담을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제도가 아닌 그림을 그린다. 과연 나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