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제법 많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11시 30분, 나는 예약시간에 맞춰 이중섭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이곳에 오기 위해 이전에 두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미술관 개보수를 위한 휴관 일정에 입구에서 돌아섰고, 두 번째는 코로나19로 인한 임시휴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었다. 미술관 입장 전 잠시 이중섭 거주지에 들렀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소의 말 중, 이중섭
누군가 새로 옮겨 쓴 중섭의 글과 그의 사진이 작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1층과 2층 전시실을 둘러본다. 느린 걸음이 잠시 더 느려지는 한 지점에 서서 그림을 바라본다. 그림 속에는 중섭과 헤어진 가족들이 있다. 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는 가족이 있었겠지. 그리움과 외로움에 젖은 채로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고 막노동을 했을 젊은 화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애처롭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에도 여전히 눈이 내린다. 눈은 바람에 흩날리고 내 빰을 스치지만 그 어디에도 쌓이지 않는다. 날카롭고 차갑지만 따뜻한 심상을 가져다주는 이 쌓이지 않는 눈을 만난 것은 후에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나를 스쳐간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숙소까지 돌아오는 길에 눈발은 더 강해졌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눈이 반가워 버스를 타고 중산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오랜만이라고 했지만 쌓인 눈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코나가 살아있을 시절이니 7년도 더 넘었다. 참, 오래도 지났구나. 눈이 온 것도, 코나가 사라진 것도. 함께하는 세월 동안 부산에는 2번의 큰 눈이 내렸다. 우리는 눈이 오면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갔다. 소리도 내가 지르고 뛰어나간 것도 나였지만, 나는 늘 우리라고 이야기한다.
원래 계획은 성판악에 내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눈을 구경하며 천천히 기다리는 것이었지만, 밖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조금 과장하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눈보라가 치고 인적은 드물고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다시 계획을 수정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구간을 지나 버스에서 내려 다시 눈보라 치는 그곳을 향해 걸었다. 악천후에 차도 인적도 드물었다. 중간중간 사고 난 렌터카와 제설차와 경찰차와 마주친다.
버스 정류장 5코스 정도를 걸었을 때, 낮은 지대가 내려다 보이고 눈밭이 펼쳐진 전망대에서 새하얀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불어오는 눈바람을 정통으로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른 다음에 오는 버스를 타고 내려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중산간에서 내려오는 길에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탄 버스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준다. 좀 전에 걸었던 그 길도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함께 더 멀리 걸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