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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Dec 16. 2022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

K와 빌헬름 켐프

얼마 전 피아니스트 K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클래식에 관심은 있지만, 그 방면으로는 거의 막귀에 가까워 내가 좋아하는 연주자와 음악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도 모른 채 오로지 귀에 의존해서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선택한 연주자가 실제로도 좋은 평가를 받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의 이름도 앨범명도 제대로 모르고 있어 전문가인 K의 입을 통해 이 부분을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클래식 피아노 연주 중 가장 사랑하는 곡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이다. 흔히 비창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곡은  총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은 몰라도 2악장이나 3악장은 익숙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3악장은 162 bpm을 자랑하는 '베토벤 바이러스'로 편곡되어 많은 이들을 춤추게 했었다. 그중에 나도 있었다.

나는 그 곡을 연주한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하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놓고 작업을 하면서 듣곤 한다. 그래서 K를 만난 김에 그 많은 연주 중 가장 좋아하는 한 곡을 소개했다. 눈이 커지며 입이 오므라드는 K의 얼굴의 변화를 통해 이 음악가가 대단한 사람이란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곤 수많은 비슷한 것들 중 보석을 찾아낸 나의 귀를 칭찬해 주고 싶었다.

그의 이름은 빌헬름 켐프였다. 독일의 피아니스트였고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동양의 그림 그리는 어떤 사람의 작업시간을 여전히 피아노 선율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클래식이 뭔지 제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내가 오랜 기간 진지하게 하나를 연구하고 연습했던 사람의 소리를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아직은 내 그림이 미숙하고 불완전하지만, 끈질긴 노력으로 시간이 지나 완숙미를 더해가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그 세월을 알아봐 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를 희망이 생긴다.

K는 그 이후에 나에게 켐프의 슈베르트를 추천해 주었고, 그 음악을 들으며 나는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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