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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Aug 04. 2023

주부는 재택근무자. 업종은 멀티플레이어.

  

나는 주부다. 주부가 ‘백수’가 아니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그럼 ‘백수’의 반대말은? ‘재택근무자’. 유레카! 결론은 나는 지금 재택근무 중이라는 사실. ‘뭐 해?’ 누군가의 톡에 ‘오전 근무 마치고 잠시 쉬는 중’이라고 답을 보내면 ‘ㅋㅋ나두요’하는 동종 종사자(주부)의 즉답을 받을 수도 있다.

    


주부로 재택근무를 한 지 40년 차, 출, 퇴근러였다면 에즈녁에 은퇴했을 나이지만 나는 은퇴는커녕 아직 평사원이다. 물론 남편은 ‘우리 집 기둥’이라는 이상한 직급으로 마치 승진이라도 시켜주는 듯 생색을 내지만,  이런 류의 당근더 잘하라는 채칙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당신은 갈수록 음식솜씨가 좋아져’ ‘파는 거랑 비교가 안되지’ 같은 당근도. 내가 너무 예민한걸까? ‘아직도 현역’, 이라고 호기롭게 외쳐도 보지만 이 또한 은퇴의 갈망을 잠재우기 위한 반어법. 이제나저제나 은퇴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엄마의 변신은 무죄. 이 말을 들으면 영화 ‘마더’의 김혜자가 떠오른다. 조금 과잉감이 있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되어 과몰입했던 (사실 영화, 소설, 음악, 그림.. 모든 창작물은 전달력 측면에서 얼마간의 오버가 필요하다.), 엄마의 변신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이 영화를 떠올린 것은 주부의 여러 가지 역할 중 ‘엄마’는 최고난도 업무이기 때문이다. 부인, 주부, 며느리, 그 어떤 명함도 ‘엄마’라는 타이틀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엄마’라는 말속에는 이미 그 모든 역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들의 성장 시기에 따라 하느님이 되었다가, 학교 선생님 앞에서는 죄인이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 하숙집 아줌마로 추락하기도 하며 다양한 변신을 한다. 내 경우를 들자면 아들이 처음 독립해서 나갈 때 이삿짐 직원은 물론, 도배사와 입주 청소 아줌마도 되어도 했다. 조그마한 옥탑방 청소에 도우미 아줌마를 부를 수 없어 몇 시간을 부엌, 화장실 곰팡이를 닦으면서 ‘우리 집 청소는 안 하면서 이 뭔 일?’ 혼자 구시렁거렸고, 군데군데 벗겨진 벽지는 도배사를 부르기도 애매해 지물포에서 재료를 사서 직접 했는데, 처음엔 서툴다 점점 능숙해지는 솜씨에 아들은 ‘엄마 도배사해도 되겠다’.  어느 날은 맛있게 구워진 빵을 먹으면서 ‘빵집 차려도 되겠다.’하더니 이제는 도배사까지 하라고?. 도대체 엄마의 직업은 몇 개가 되어야 하는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이 엄마에게는 쓴웃음을 줄수도.) 요즘 새로이 시작한 일은 운전연수선생님, 작년에 큰아들 연수를 몇 개월하고 나서 두 번 다시 이 짓은 하지 않으리라 했는데 올해는 작은아들이 운전을 시작했다. 전문가에게 멀쩡이 연수를 마치고 또다시 엄마를 찾는 이유는 영광스럽게도(?) 내가 무료 단기속성반 선생님으로 뽑혔기 때문, 시간과 안전을 전당포에 맡기고 매일 서너 시간 연수중이다.

      


40년 동안 내 취향에 상관없이 거쳐간 직업들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숨이 차다. 그중 가장 힘들고 두 번 다시 하기 싫었던 직업은 간병인, 그럼에도 아직 못해본 직업은 베이비 시스터, ‘아들들아~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체험하게 해 줘서 고맙다. 엄마가 해보고 싶은 마지막 직업도 부탁한다~’

마당 한복판, 의자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는 건?

     

쓰다 보니, 여전히 현역이고 재택근무자임을 확인하고 자초하는 듯한 내 모습에 ‘이게 아닌데..’ 맨날 하는 말이 또 나온다. 종합해 보면 지금은 은퇴 시점이 아니라는 것, 그럴 바엔 차라리 현역을 즐기자.

은퇴한 다음 이 글을 보며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할 수도 있으니까.

    

P.S 근데 은퇴가 있기는 한 걸까..


작가의 이전글 그렇게 개할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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