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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ok Kim Nov 02. 2024

내가 전 직장을 떠난 이유

5년 만의 회고

 얼마 전 오래전 메모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됐습니다. 현 직장에 입사하고 며칠 안돼서 적은 메모였는데 다시 돌아가야 하는 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건강보험 상실신고도 취소가 아직 가능한데..? 등의)


 그 이전 몇 년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직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현 직장에 올 때는 5년은 다니자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계속 복잡했는데요, 이직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생각도 다 정리된 것이 아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낯선 곳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리고 안 가면 안 되냐, 다시 돌아오면 안 되냐는 전 직장 구성원들이 계속 눈에 밞혔거든요.

맨 처음의 사무실. 말 그대로 회의실에 임차했었습니다. 자리는 두 개^^

저는 제 전 직장의 창업 멤버이자 1호 직원이었습니다. 주식도 없었고 이니셔티브가 저에게 있지 않았기 때문에 창업자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 회사의 업무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대표이사와 둘이서 다른 회사의 회의실 하나를 사무실 삼아 일을 했고, 창립 행사 사회를 보기도 했으니 창업 멤버라고는 분명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제 뒤에 들어온 구성원들은 채용공고도 제가 썼고, 합격 메일도 제가 썼고 온보딩도 제가 했습니다. 회계 담당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4대 보험도 직접 계산해서 급여 이체도 제가 OTP로 직접 했고요. 그런 직장을 떠난다는 게 참 쉽지 않았고 당시 제 결정을 저도 100%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저는 현 직장에서 만 5년을 보냈습니다. 전쟁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다음 스탭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삼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전 직장을 떠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아래의 순서는 별 의미는 없습니다. 이 5가지가 복합적이었을 뿐입니다.


1. 경험:얻고 싶었던 경험을 얻었다.



저의 전전 직장이자 지금은 사라진 풀러스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카풀 회사로 한국 모빌리티 역사에 라이드 셰어링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회사 중 하나입니다. (풀러스에서 타다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진짜 긴 이야기. 소주 필수) 저는 창업을 했다가 망한 후 사업 기획을 배우고 싶어서 경력이 맞는 스타트업에 들어갔고 그게 풀러스였습니다. 저에게 풀러스는 노스탤지어 같은 회사입니다. 너무 재밌었고, 몰입했었거든요. 원래 저는 로스쿨에 가려고 했었습니다. 딱히 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창업했다 망하고 나니 마땅한 선택지가 안보였거든요. 풀러스는 로스쿨 입시를 마치고 입학 전 알바처럼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너무 재밌어서 로스쿨 입학도 포기했었습니다. 그러다 그 시절이 갑작스럽게 끝나버리는 비극도 겪으면서 1기 멤버 중 마지막으로 나오는 역할까지 하게 됐었습니다.


 그 회사를 다니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이 회사의 시작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풀러스 창업 후 약 1년 정도 지난 후에 합류했던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통상적인 회사의 역사에서 정말 빠른 시기에 합류한 건데도 당시에는 “시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떻게 이런 모습이 됐을까”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창업에 도전했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겁니다.


 그래서 풀러스가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1기가 끝난 뒤에 제가 다음 스탭을 정할 때 가장 끌렸던 건 풀러스의 공동 창업자의 새로운 사업에 처음부터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보금자리였던 패스트파이브 사무실, 이후 한 번 더 이사 후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약 1년이 지나면서 여러 우여 곡절 끝에 회사가 회사 다운 모습을 갖추고 구성원들이 늘어났을 때 제일 궁금했던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회사는 본격적으로 사업의 단계로 나아갈 텐데 나의 그다음 스탭은 뭐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던 때였던 것이죠.



2. 사람


제가 전 직장을 택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역시 “이안”입니다. 제 사회생활에서의 첫 사수이자 롤모델은 기아에서 만난 ㅇㅇ형님이지만, 사업기획자로서의 사수이자 롤모델은 이안이었습니다. 전 사업기획자로서 이안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2019년 여름쯤 (저에게는 갑작스럽게도) 그가 JV의 양 투자사 중 하나의 CSO를 겸직하게 됐고 저는 이에 대한 심적 반발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따라왔고, 그가 말한 꿈에 베팅했는데 그는 그 꿈에 올인이 아닌 다른 길에 더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그 나름대로는 그게 본인이 생각하는 회사의 지향점과 배치되지 않는 결정이라고 믿었을 거라는 걸 압니다.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겁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저는 그런 생각을 했고, 그와 이런 얘기를 나눌 시간조차 충분히 갖지 못했습니다. 또한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그가 이왕 그럴 것이라면 그의 겸직으로 회사에 일부 공백이 생기면 그 자리를 적극적으로 제가 채워 넣어주길 바란다고 말해주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그렇게 얘기하면 됐을 텐데요.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얘기조차 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해버렸던 것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어렸던 것 같습니다.


3. 산업: 소비자와 산업에 대한 애정


당시 집약적으로 엔터/아이돌 산업에 대해 과외를 받는 자리에 꾸준히 함께 하면서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소비자로서 음악은 좋아하지만 이 산업과 생태계를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100만 장을 100만 명이 사는 게 아니라 (과장 보태자면) 1만 명이 사는 시대였고 회사들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1만 명이 왜 그러는지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할 듯했지만 그걸 그냥 두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산업의 관행이 마음으로는 도저히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 짧은 식견으로는 누구도 행복해보이지 않았거든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행복을 주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고통을 매출로 변화시켜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산업에 대한 시야도 좁았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도 사업기획자로 미션이 될 수 있었는데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한 건 아닐까 싶습니다.


 전혀 모르겠던 산업의 용어들과 이름들이 하나둘씩 익숙해지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되면서 이 산업의 문제가 정말 내가 풀고 싶은 문제인가, 소비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가치관이 흔들리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4. 성장: ”내가 이 산업에서 이니셔티브를 가질 수 있겠는가?“에 대한 불안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이 산업에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제 주변에서 봤던 이 산업의 주인공들은 매니저 출신으로 현장에 대한 장악력이 있거나, 프로듀서로서 산출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동차/모빌리티에서만 경력을 쌓아온 내가 이 산업에서 과연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지원의 역할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되고 싶은 건 COO보다는 CBO 혹은 CEO 거든요.

2019년 여름 발표된 국토부의 혁신안 이 안은 지금까지도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산업이 내가 오래 머무르고 승부를 볼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면, 적정한 때에는 다시 모빌리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오래 지나면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모빌리티 씬은 한창 뜨거운 때였기 때문에 그런 조급함은 더 커지기도 했었고요.


  반면 이 산업에 스테이했을 때 기대되는 금전적인 보상이 커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주식이나 스톡옵션을 들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많이 챙겨줄 것 같지도 않았거든요.



5. 가정


 4번과는 모순되게도 당시에는 부담감도 컸습니다. 대표이사의 겸직으로 인한 (일부) 공백, 다가오는 런칭에 따라 점점 더 빡세질 상황, JV로서 양 회사 사이에서의 조율 등에 따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부담감을 기꺼이 견뎌야 할 이유도 희미하게 느껴졌구요


당시에 아이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담감이 아닌 그저 큰 회사의 한 명의 구성원으로 주어진 일을 적당히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엔터는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이 당연했고 점점 더 나에게 주어지는 부담감은 가중될 텐데 아이가 태어나면 여기의 라이프스타일을 맞출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고요.


 당시 지금의 직장에 가면 큰 회사인 만큼 그냥 한 명의 구성원으로 적당히 다니면서 복지를 누리고, 여유롭게 시간 활용하면서 아이도 잘 키우면서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이브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몸도 멘탈도 갈릴 줄 알았다면 좀 다시 생각해 봤을 텐데요





 당시에 현 직장에서 빠른 오퍼를 받고 몇 시간씩 뱅뱅 같은 코스를 하염없이 돌며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어어하다 보니 낯선 곳에 앉아 있었고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던가요? 돌아보면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는 5년입니다.


 이곳에서 조직을 떠나겠다는 구성원들을 면담하면서 알게 모르게 과거 제가 이직을 처음 말하던 때 이안과의 면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때 내가 이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어땠다면 나는 남았을까? ” 그리고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혹시 그때 내가 이안한테 한 말을 내가 돌려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ㅎㅎ



그렇게 제 커리어에 중요하고도 큰 영향을 미친 결정을 한 지 5년이 됐습니다. 이곳에 와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할 때 제가 내린 결론은 그저 “증명해야겠다”였습니다. 저는 “좋은 선택 그 자체는 없고, 결국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끝없이 되네이면서 제가 여기 온 이유를 증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년 간의 스스로의 성장에는 분명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저는 충분히 증명한 걸까요? 그럼 다시 떠날 때를 고민해야 할 때인 걸까요? 그게 최근의 제 화두입니다. “넥스트는 무엇이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더 시간이 오래되고 숙성되면 글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찌 됐건 제게 친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 중 남아있는 곳은 이제 딱 두 곳입니다. 최근 그 친정 중 하나가 여러 가지 논란에 휘말려 있지만, 떠나온 지 오래되어 제가 있을 때와는 이미 너무 많이 달라졌겠지만 여전히 애정을 가지고 산업과 회사를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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