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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민 May 31. 2022

별 볼 일 없는 세상

상상의 힘

지난 주말 대학시절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속초로 여행을 떠났다.

음식과 여행지에 박학한 선배의 리드로 설악산 등반과 고성에 위치한 왕곡 마을, 송지호 해수욕장의 서핑 샵, 그리고 오징어 난전에서 노상에서 술 한잔 걸치며…


12년 선배부터 바로 윗 선배까지, 좀처럼 막내일 기회가 없던 삶을 살고 있던 터라 마치 대학 신입생이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우리의 대화는 주로 과거로 거슬러 오르기 바빴고, 공유한 추억을 찾기 위해 머릿속이 분주했다.

일정이 빡빡한 여행이 아니라, 어슬렁 걸으며 이야기 나누고, 차 한 잔, 술 한 잔 기울이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우리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공통된 사람의 이야기로 흘러가기 일쑤였다. 내 삶에서 처음으로 닮고 싶던 사람, 그리고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버렸던 선배.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그가 떠난 것을 차라리 잘되었다고 말할 경험이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우스개 소리로 정말 즐겁게 살다 간 그를 나무라고, 웃고, 그리워했다.


우리가 하루를 보냈던 왕곡 마을은 한옥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속초 고성의 송지호 호수의 뒤편에 위치한 이곳은 국가 차원으로 지원받아 운영되는 민박집들이 있다.

지어진 생김새를 봐서는 완전 전통 한옥이라기보다 실제로 사람이 살며, 닳고, 수리되고, 부분적으로는 현대식으로 바뀐 것이 더 정감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작은 시내는 송지호 호수를 향해서 흐르고 있는 듯한데, 다슬기가 많아서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해 내기도 했다.

술 한잔 기울이는 동안 해가 지고, 산책을 하고, 밤이 더욱 깊어지자 한 둘 마루를 떠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밤은 깊었다. 도시에서 깊으래야 깊을 수 없는 밤이 이곳에는 자리하고 있었다. 그림자는 이윽고, 한옥, 길, 꽃, 내천을 감싸더니 이제 세상은 까만 그림자와 쪽빛 하늘만이 남았다. 둘로 나뉜 세상에서 분명히 보이는 것은 별이었다.


그렇다.

별이었다. 존재한다고 믿고 있지만, 도시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종종 이름을 알 수 없는 익숙한 울음을 가진 새가 울었고, 그 소리는 마치 별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는데, 점점 하늘은 더 검게, 별은 더 밝게, 검게, 밝게, …

별과 하늘의 구분이 뚜렷해지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정말 수많은 별들이 또렷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별은 몇 만 광년이 떨어진 곳에서 그 세월 동안 여기를 비추고 있었을 텐데, 만 삼천 년 전 사피엔스의 어느 부족, 사내도 하늘을 보았을 것이라고.

전기도 전등도 없던, 도저히 밤에는 무엇을 할지 즐길 거리가 없던 그 밤에.


그들에게 별은 얼마나 즐거운 오락거리였을까. 할 일이 없어서, 따분해서 별을 보는 것은 아니었을 테다.

2022년의 현대 과학이며, 게임이며, 스마트폰으로 즐길거리가 많은 나조차도 별을 보는 것이 도저히 지겨워지지가 않았다.


나조차는 가늠할 수 없는 긴 시간을 여행한 별이 마침내 사피엔스의 어느 사내에게, 2500년 전 어느 시인에게, 일찍 세상을 떠난 상현 선배에게 닿았다고 생각을 하니,

나에게 닿는 저 빛이 참 따뜻하고, 신비로워졌다.


상상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그런 상상이 별 하나에 하나만큼이라고 친다면 얼마나 많은 상상이 밤하늘에 떠있는가.

그중 어느 상상은 토기가 되고, 어느 상상은 시가 되며, 누군가에겐 꿈이 되었을 것이다.


별 볼일 없는 세상을 살던 나는, 그 많은 상상과 꿈과 따뜻함을 잊고 산 것이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이 아는 것이 만나 별을 바라보는 동안 ‘어떤’ 동력을 만들어 내는 듯했다.


낮 동안, 밤의 별을 떠올릴 겨를이 없다 해도, 별은 밤에 다시 뜬다.

여전히 마음과 상상은 같은 자리에 있지만 우리는 도대체가 올려다보질 않는다.


별을 바라보는 것을 싫어할 이 있을까.

그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도 별을 사랑했을 테고, 우리는 별을 사랑한 이의 후예  .


어서 이불로 들어가 잠을 청하라고, 새벽바람이 나를 밀어내도 조금만, 조금만 더 보게 되는 별을 왜 평소엔 떠올리질 못하는가.

나는 별을 사랑하고, 별을 자주 헤아려야겠다.

동주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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