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민 Jun 26. 2022

이상한 초대

희곡 읽는 바

둥근 반원의 바 가운데, 천장에서 쏘아진 빛이 아래 투명한 큐빅을 비추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내 이름과 반들반들하고 검은 가면, 그리고 스프링으로 제본된 대본집이 놓여있다. 남자, 내게 주어진 배역이다. 와인 잔 하나와 물 잔 하나가 놓여 있고, 큐빅에 반사된 빛이 비스듬하게 와인잔에 닿아있다.


하나둘 자리에 모여 커피, 위스키, 와인을 받아서 쑥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핸드폰에 고개를 박고 있는 사람들. 오너가 들어오면, 큐빅 뒤에 잠깐 선다.


오늘 읽을 희곡은 ‘구멍’입니다.’ 하고 뒤쪽 주방으로 사라진다. 주방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상토록 하는 무대의 생김새를 읽는다. 읽다가, 상상할 시간을 주고는 다시 긴 호흡으로 무대를 설명한다.


잠깐의 정적과 누군가의 잔기침, 물 마시는 소리가 들리고 희곡이 시작된다. 읽는 동안 누군가는 눈물을 훔치고, 누군가는 바에 조그맣게 파인 홈을 손톱으로 긁기도 한다.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간판도 없는 이상한 이 바에 초대된 사람들이 희곡을 읽는다. 누가 초대되는지, 서로는 알 수 없다. 다만 익숙한 입매를 가진 사람들이 가끔 가면 안에서 눈인사를 건넨다.


첫 초대에 당혹함이 서렸다면, 필중 두 번째 초대에서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다. 희곡을 접한 적 없어 보이는 나이 든 여자의 입가에서 가슴 벅찬 기분이 느껴진다.


희곡이 끝나면 각자의 느낌을 말한다.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망설이다가 이야기하고, 마치 짜인 듯 대화가 오간다. 마실 술을 더 주문하거나, 조용히 가면을 벗어두고 나가는 이가 생기면 조명이 조금 밝아진다.


이상한 초대를 기다리게 되는, 이상한 바.

작가의 이전글 마음을 담는 그릇, 이름, 마음 그리고 삶의 상관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