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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민 May 26. 2020

흉터

3. 꼴등 없는 달리기

 내 오른쪽 골반과 왼쪽 골반 아래에는 비슷한 시기에 생긴 흉터가 있다. 신기하게도 조금 위치가 다른 이 흉터는 자라면서 하나는 좀 더 위로, 다른 하나는 좀 더 아래로 내려갔다. 아마 크면서 피부가 자라는 방향이 달랐던 모양이다. 매일 바라보는 나의 몸이 움직인다는 생각에 닿자, 조금은 내 몸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나서 더 이상 내 몸은 자라지 않고, 흉터도 같은 자리를 고수했다. 아마도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내 기억이 그렇듯.

 
 내 몸이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나는 정말 많이도 뛰어다녔다. 남들보다 빠르다는 것은 한층 나를 고양시키고 자신감을 더했다. 몇 번이고 넘어져서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다치면서도 달리기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땅이 내 발 끝을 밀어 올려주는 느낌, 튕겨져 오르는 몸, 그리고  앞으로 쏟아지기 전에 다시 반대쪽 발 끝이 땅에서 튕기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고민과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웠다.



하지만 날아갈 것 같던 그 기분을 마냥 즐길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라이벌의 존재 때문이었다. 나보다 키가 작은 그 라이벌은 초등학교 6년을 내내 붙어 지낸 불알친구였지만, 애석하게도 항상 나보다 한 걸음 정도 더 빨랐다. 작은 시골 학교에서 그 친구만 함께 달리지 않는다면 늘 1등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출발선에 그 친구가 함께 설 때면 내 심장은 평소보다 더 힘차게 발 끝에 피를 보냈다. 목마른 승부욕이 빛을 바란 곳은 바로 ‘장애물 달리기’. 유일하게 그 친구를 이길 수 있었던 시합이었다. 덕분에 우린 제법 동등했고, 나는 주눅 들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와 그 친구는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20년이 지난 최근에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이고 긁힌 상처가 자라는 살 결을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거기엔 더 이상 1등은 없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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