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이수와 내 인생
나는 사범대 출신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20대를 쓸쓸한 임용고사 고시생으로 보냈고 지금도 파트타임이지만 가르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까닭은 어쩌다 성적 순위에 들어 보험처럼 갖게 된 ‘교직 이수’를 했기 때문이다.
교사 임용이란 여느 공무원 직장과 다를바 없이 무척이나 달콤한 매력이 가득하여, 가뜩이나 요새 뭐가 좋다더라 하면 잘도 따라하는, 남의 말에 잘 흔들리는 나로서는 뿌리칠 수가 없는 선택지였다. (사실 제 1전공인 중문과도 그렇게 선택했다. 중국어가 뜬다더라, 하는 뜬 소문에) 신분보장에, 내가 전공한 분야를 일로 삼아 마음껏 탐구도 할 수 있고, 자라나는 새싹들을 만나며 젊은 에너지도 얻고, 육아 휴직도 가능하며......좋은 점만 생각하면 정말 환상적이다. (실제로는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있는, 과한 행정업무와 인성 및 생활지도의 어려움이라는 단점이 생각보다 엄청나다.)
하지만 난 임용고사의 문을 매해 통과하지 못했고, 현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기간제교사였으며 따라서 수업연구보다는 내년 계약 연장을 위해 던져주는 일은 모두 도맡아 해야해 때로는 급한 공문을 처리하느라 수업시간에 자습을 하게 하는 일마저 발생했다. 그리고 또래의 ‘임고를 통과한’ 선생님들에 대해 늘 주눅이 들어있었다. 늘 나를 한없이 낮추는 버릇으로, 정신과 몸은 함께라더니 실제로 대학 졸업 후 몇년 사이에 어깨와 등 마저 굽어버렸다. 정작 나는 내 몸이 그렇게 변한지도 몰랐는데, 졸업 후 만난 대학 때 친구들, 선배들이 한결같이 말했다. 너 몸이 왜그렇게 굽었냐고. 그 몸만큼 당시 내 자존감도 바닥을 기었다. 우리반 예리한 한 녀석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생님, 좀 환하게 웃으세요. 왜 늘 웃다 마세요? 무슨 걱정이 그렇게 있어요?" (내가 그 당시 만났던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할 뿐이다. 문학 수업을 하면서도 늘 비관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인생이 그런거지, 다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와 같은.)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는 책을 최근에 읽었다. 교사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분에 대해 정확히 짚고 있었다.
그리스에서 정치란 “자유로운 인간들이 서로에 대한 강요나 강제력 혹은 지배 없이, 서로 평등한 관계 속에서” “모든 공무를 대화하고 서로를 설득하면서, 서로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 (아렌트, 2007 :159) 그러나 비정규직 교사는 교사이되 정규직 중심 교직사회에서 ‘평등한 파트너’가 아니다.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정규직 교사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임시로 있다가 가는 사람들이므로 정규직과는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에게는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평등하게 말할 권리"가 없다.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형식적으로는 같은 교사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정치적 결속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직장이었지만, 늘 소외되었고 떳떳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새 일을 찾는 지금 또 다시 '정규직 교사'가 되고싶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정말 내 꿈이 교사였는가? 그건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교사를 하고 싶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취업할 수 있는데, 꼭 정규직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물론 그것도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난 ‘계급’ 이 있는 교사 사회에서 상위단계의 계급으로 올라가고 싶은 것 뿐이었다.
한편, 오늘 아침 마침 친구에게 연락이 왔는데, 자기 부부가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신용대출가능 액수가 아주 적고 이율이 7프로가 넘을 정도로 높다고 한다. 이러니 고시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면 임용고시에 대한 미련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일종의 공포로, 우울감으로 그 미련이 찾아온다. 내가 유학을 가고 싶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습게도 외국에는 임용고시가 없기 때문이다.
임용고시를 그만 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