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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아 Aug 05. 2021

화를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화를 내고 나서 죄책감을 느끼는 당신에게.

최근에 마음이 아픈 일이 있었다. 평소 나는 A에게 불만이 많았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나와 우리 가족에게 보여준 그녀의 태도 때문에 불편한 일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녀와 엮인 내 측근들이 많았고, 내가 그것을 입에서 누설하는 순간 갈등의 실마리가 될 것 같아 '나 하나만 참으면 되지' 하는 마음에 꾹꾹 눌러왔다. 불만은 계속해서 쌓여갔고, 이 문제는 가족들의 문제로까지 번져나갔다. 


그러다가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왔다. 평소와는 다르게 왜 나는 다르게 생각했을까? 불만에 대해 말을 하지 않으니, 골은 더 깊어지고 점점 더 불편해지며 그녀 또한 자신의 어떤 부분이 상대로 하여금 불편함을 주는지 모르는 것 같아 그녀에게 이제는 내 감정을 말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서 일단 감정부터 가라앉히기로 했다. 화가 날때에는 잠시 시간차를 두고 행동을 하는 것이 충동성을 억제하는 나만의 방법인지라 남편이 나를 데리고 산책을 시켜주었고, 걸어서 20분 거리의 맥도날드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감정을 객관화해보기 시작했다. 


남편도 잠든 새벽 2시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그간의 일들을 떠올려 보면서 글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때 나는 최대한 핸드폰으로 타이핑을 치기 보다는 노트북을 이용하는데, 전체적인 글의 맥락이나 느낌을 한눈에 보기 좋고 큰 관점에서 바라보기에는 큰 화면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게 2시간을 썼을까? 

나는 내 감정을 전달할 때 몇가지 기준이 있었다. 


1. 최대한 상대의 탓을 하기 보다 내 감정 위주로 말할 것. 

2.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더하고 빼지 말 것. 

3. 상대방의 입장도 어떠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도 고려할 것.


글을 다듬고 고치고 새벽 4시쯤 그녀에게 전송하고 난 다음 날, 그녀는 꽤 오랜시간 내 카톡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 10시 반쯤 울린 카톡. 그 카톡에는 너무나도 정돈되지 않은 그녀의 거친 감정과 분노가 쏟아져 있었다. 그 곳에는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인신 공격성 발언도 있었고, 마치 눈 앞에서 내 뺨을 때리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다.  한참을 멍하니 톡을 바라보다가 나는 더 이상 답장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 지금 이 상황에서 답장을 하게 되면 나 또한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화나게 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그녀는 오랜시간 자신의 행동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해 왔을 것 같다. 처음부터 그때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나갔더라면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관계가 되었을까? 어쩌면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오랜시간 참아 온 나의 방법이 결론적으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끝까지 참았으면 어땠을까?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그녀에게 왜 화가 그렇게 났는지를 묻지 않았으니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해서 몇일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많이 편해져 있다. 이유는 내 감정과 마음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이나 말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했다고 하면 우선 ‘사과부터 하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어도 일단 상대가 불편함을 느꼈으면 사과부터하고 입장은 나중에 말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느낀 그 불편했던 감정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온통 자기 자신에 대한 합리화와 남탓 뿐이었다. 상대가 느낀 그 불편함에 대해 ‘넌 그걸 불편해 하면 안돼! 그건 불편함을 느낄일은 아닌거야. 니가 예민한거야’는 굉장한 오만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도 답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내 느낌과 감정을 충분히 담백하게 전달했다면 그 반응이 상대에게 어떻게 오든 그것 또한 그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상대가 화를 냈다면 그 또한 그의 감정으로 인정해주어야 할 일이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지, 너가 그렇게 반응하면 안되지!' 하는 것도 오만이 된다. 


서로에 대한 감정 알아주기가 선행되면 그때 부터는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하지만 무턱대고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 의 관점으로 접근되는 순간 커뮤니케이션은 어느새 이기고 지는 레이스가 되어버린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말하는 것 자체를 꺼려해서 참거나, 그 말을 하는 것이 갈등을 키운다고 생각해서 끝끝내 참는다. 하지만 그 참는 마음이 사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차곡차곡 더 저장되면서 나중에는 그것이 억울함으로 터진다. '내가 어디까지 참았는데!! 니가 어떻게 나한테...'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여튼, 나는 이번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방식의 문제일 뿐. 내가 생각했을 때 화를 내는 방법이 충분히 적절했다면, 내 불쾌했던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인신공격하거나 심한 표현들을 한 것이 아니라면 말하는 사람이 죄책감을 가져야 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화를 내고 나서 '괜히 냈나?' 하는 생각을 가진 이가 있다면 그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내가 화를 표현했던 방식'에 대해 돌아보자. 다만 화를 낸 행위 자체에 죄책감을 가지지는 말길. 


아프다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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