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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13. 2020

[Ep2-13]꿀 떨어지는 삼천포 수산시장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열세번째 이야기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진 것을 나쁘거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에 기차를 타고 가다가 실수로 삼천포에 내리게 된 여행객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어쩌다 삼천포에 가게 된 것이 축복일지도 모른다. 삼천포가 뭐가 그리 좋길래 거창하게 축복이라고까지 하냐고 다그치면 사실 할 말은 없다. 삼천포에 엄청나게 큰 건물이나 대단한 유적지나 숨 막히는 절경은 없으니까. 대신 조금만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면 애정이 퐁퐁 샘솟는 평화로운 풍경이 있고, 프로의 세상을 벗어난 적정 수준의 삶이 있다.


사천시를 지도를 보면 참 신기하게 생겼다.


일단 삼천포로 들어가기 전에, 사천시의 전체 지도를 한번 구경해보면 이거 참 희한하게 생겼다 싶을 거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을 만큼 섬도 많고 바닷가 해안선도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져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천시가 바다와 맞닿아 있는 방식은 유독 특이하다. 마치 바다가 사천시를 딱 두 개로 쪼개버리려는 듯 육지를 깊이 파고 들어갔다. 이쯤이 되면 바다를 중심으로 두 개 지역으로 쪼갤 법한데, 인간의 행정구역은 바다를 초월했나 보다. 바다가 갈라놓은 두 개 지역을 연결해주는 것은 거대한 사천대교다. 사천시 이곳저곳을 오고 가다 보면 하루에도 두 세 번씩 이 다리를 건너게 된다.


1995년에 착공해서 2003년에 개통했다고 하니 무려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건설한 것이다. 직접 자동차를 타고 그 위를 건너다보면 공사 기간이 그리 길었던 이유가 이해된다. 한참을 달려도 아직도 더 가야 되나 싶게 다리가 이어진다. 다리가 없을 때에는 바닷가를 따라서 40분 이상 굽이굽이 달려야만 했는데, 지금은 이 다리 덕분에 10분 정도면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단다.


노을지는 삼천포항의 모습


삼천포는 바다를 중심으로 갈라진 사천시의 양쪽 날개 중에서 오른쪽 끝에 있다. 삼천포의 이름이 포구에서 왔으니까, 삼천포에 왔다면 진짜 포구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울산이나 거제, 여수와 같이 거대한 항구를 몇 번 봤던 사람이 삼천포항을 보면 "애걔"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작다.


하지만 여기를 얕봐서는 안 된다. 한때 어업으로 유명했던 지역답게 수상시장이 정말 잘 정돈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천포 수산시장은 삼천포항과 바로 이어져 있다. 바닷가를 따라서 길쭉한 건물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매장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정말 정돈이 잘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느 관광지의 수산시장을 방문해보면, 원산지를 알 수 없는 건어물까지 죄다 늘어놓고 가게 앞까지 나와서 소리 높여 홍보하곤 한다. 그 모습에 질려 몇 걸음 들어가지도 않고 뒤돌아선 적도 있다. 하지만 삼천포 용궁수산시장에는 그런 일이 없다. 칼로 잰 듯 정돈된 매장마다 진짜 싱싱한 수산물이 줄지어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가격도 저렴해서 한 바퀴 돌아보다 보면, 어디서 뭘 얼마만큼 사야 하느냐는 결정장애가 생길 정도다. 그런 때면 시장 한가운데에서 호떡부터 하나 베어 물고서 천천히 고민하면 된다. 여기가 수산시장인가 호떡 맛집인가 싶게 꿀이 뚝뚝 흘러나오는 호떡이 단돈 500원이니까.


정갈하게 정돈된 삼천포 용궁수산시장



삼천포의 풍경은 500원짜리 호떡처럼 소박하고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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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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