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열네번째 이야기
거기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며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전지훈련을 했던 남일대 해수욕장이 나온다. 주차를 마치고 딱 돌아서는 순간 "동네 사우나탕 정도의 규모를 지닌 국내 최소의 해수욕장"이라던 책의 표현을 떠올렸다.
남일대 해수욕장의 백사장은 어떤 코스를 만들어도 100미터가 나오지 않았다. 어럽쇼, 80미터도, 70미터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브론토의 처남은 50미터의 직선 코스를 정해 50미터 달리기를 실시했다. 실로 50미터도 빠듯한 백사장이었다. (p.296)
흔히 바닷가를 묘사할 때는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이라거나 "바다를 따라 오래오래 걸었다"는 것처럼 넓다고 얘기하지 않나. 그런데 오히려 얼마나 작은지를 강조한 표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궁금했다. 물론 동네 사우나탕보다는 넓다. 하지만 살면서 본 것 중에 가장 아담한 해수욕장인 건 맞다. 만처럼 안쪽으로 오목한 형태다보니, 좌우로 고개 돌릴 필요 없이 한눈에 해수욕장이 들어온다.
세상에는 숫자로 말해줘야만 믿는 사람들도 있다. 남일대 해수욕장이 얼마나 작은지 믿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 거 같아서 파도가 치는 바다를 왼쪽에 끼고 모래사장 이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걸어보았다. 딱 265걸음. 성큼성큼이 아니라 아장아장에 가까운 걸음걸이였음에도 그것밖에 안 된다. 일반적인 성인의 평균 보폭이 75cm라고 하니, 아무리 넉넉잡아도 200미터도 안되겠다. 달리기 연습을 할 직선거리로 겨우 50미터를 잡았다는 것이 아주 과장이 아닌가 보다.
그래도 작다고 너무 얕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모래사장 뒤편으로는 슈퍼, 식당, 민박이 줄지어 있다. 여느 관광지 해수욕장에는 워낙 가게가 많다 보니 모든 간판이 번쩍번쩍 거리며 "우리 가게로 오세요!!"라고 소리라도 치듯이 생존 경쟁을 펼치지 않던가. 그런데 여기 남일대 해수욕장에는 딱 필요한 개수의 가게들이 있다 보니, 간판들도 사이좋게 붙어있을 뿐이다. 이곳의 간판은 소리치듯 번쩍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이 겪은 바다의 시간만 드러내 보인다.
바다를 마주 보고 왼쪽으로 눈을 옮기면 두 가지 신기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언덕 위의 구조물이다. 그 구조물에는 아주 긴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어서 백사장 오른쪽 끝까지 이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케이블에 매달려 빠르게 이동하면서 바다 위 풍경을 볼 수 있는 짚라인이다.
거기에서 조금 더 시선을 옮기면 아주 독특한 형태의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북서쪽 노르망디 지역에 가면 에트르타라고 불리는 작은 바다마을이 있다. 지역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곳 해변의 사진을 보여주면 많은 사람이 "아, 여기 본 적 있어!"라고 말할 거다. 여기에는 작가 모파상이 "물에 담그고 앉아 있는 코끼리"라고 묘사한 독특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 쿠르베, 모네, 마티스, 르누아르 등 유명한 프랑스 화가들이 여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특히 모네가 코끼리 바위를 서로 다른 시간에 여러 번 그린 덕분에 이곳 풍경이 눈에 익은 것이다.
굳이 관심도 없을법한 프랑스 바닷가 마을 이야기를 이러게나 오래 하는 이유는, 이곳 남일대 해수욕장에도 똑같이 생긴 코끼리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코끼리가 코끝을 바다에 담그고,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 풍경을 보고 있으면 파도가 어떠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조각한 것일지 궁금해진다. 그 근처까지 산책로가 이어지니까 바다를 따라 꼬불꼬불 걸어가면 코끼리를 가까이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코끼리를 보기에 가장 좋은 위치를 찾는다면 바다를 마주 보고 해변의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여기에는 바다를 향해 쑥 튀어나온 파란색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아담하게 자리 잡은 해수욕장과 코끼리 바위가 한눈에 내다보인다. 그 아래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전망대가 제법 높은데도 물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날씨가 적당히 더울 때 방문한다면 당장 물속에 뛰어들고 싶은 욕구를 참기 어려울 거다.
날씨가 춥다 할지라도 걱정할 것 없다. 바로 뒤에 해수 찜질방이 있으니까. 남일대 해수욕장을 둘러싸는 건물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다. 건물 내부에서는 해수욕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찜질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의 후기처럼 남일대 해수욕장은 아담하지만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는 곳이다. 신기한 풍경을 보면서 산책을 하다가 바닷물에서 텀벙거릴 수 있다니 안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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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