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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17. 2020

[Ep2-17]안녕. 나는 지금 인천공항이야

<한국이 싫어서> 문학기행, 첫번째 이야기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지만,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한국에서는 더는 잘 나갈 것 같지 않아서 아예 호주로 빠지기로 했다. <한국이 싫어서>의 줄거리는 다소 단순하다. 스스로 한국에서의 삶이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서 여러 사건을 겪으며, 자신이 한국을 떠난 이유와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이야기는 공항에서 계나가 남자친구 지명이와 헤어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별이라 하면 마냥 슬플 것 같지만 어떤 이별에는 홀가분함도 존재한다. 계나의 이별에는 애잔한 슬픔보다 지긋지긋했던 한국을 떠나면서 느끼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더 컸다.


괜히 기분 좋아지는 인천공항의 전경


공항에 가끔 이유 없이 놀러 간다던 친구가 있었다. 공항 벤치에 멍하니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저 사람은 무슨 일로 떠나는 걸까?”, “지금 어떤 감정일까?” 라는 상상을 하면 재밌다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공항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뒤엉켜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고 가는 공항의 한가운데 서 있노라면 복합적인 감정들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이제는 해외 여행도 많이들 다니니까 공항이 예전만큼 어렵고 낯선 곳은 아니라지만, 공항만이 줄 수 있는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은 여전하다.


아마 많은 사람에게 공항은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희망을 주는 자유로움과 설렘의 장소일 것이다. 동시에 누군가를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과 상실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 어떤 이에게는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이 한껏 고조된 곳일 수도 있을 것이며, 머나먼 곳에서 돌아온 이에게는 안도감을 선사하는 곳일 수도 있겠다. 심지어 보안대 앞에서 외투, 벨트, 신발을 벗고 가방까지 투시 당하다 보면 약간의 수치심마저 느껴진다. 한 나라에서 다른 한 나라로 넘어가는 모호한 경계의 공간. 공항이 지닌 독특한 속성 때문이다. 공항은 개인에 대한 사적인 정보뿐 아니라 신체의 스캔까지도 보안이라는 이유로 용납되는, 어찌 보면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가 통제받는 곳이기도 하다. 당신이 자유를 찾아 떠나려면 일단 자유를 내려놓아야 한다니, 공항에는 이런 역설이 공존한다.


더 주목해야 할 공항의 특성이 또 있다. 바로 계급성이 명료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떠날 수 있고, 인종, 국적, 빈부에 상관없이 똑같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무슨 차별이 있느냐고? 우리는 지불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티켓을 사게 된다는 걸 잊지 말자.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이 나뉘고, 그에 따라 받는 서비스도 현저하게 달라진다. 더 비싼 티켓을 샀다면 비행기 탑승을 위하여 줄을 설 필요도 없고, 기내식도 일회용 식기에 담긴 도시락이 아니라 훨씬 더 고급진 식기에 코스요리를 제공 받는다. 비행기 안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완전히 다르다. 심지어 칸막이로 물리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프레스티지 클래스,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 등 항공권 등급에 따라 그 사람이 계급화된다. 지급하는 비용에 따라 철저하게 계급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고오급진 초럭셔리 비즈니스석도 있다고 한다!


호주행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구겨 앉은 계나는 한국에 남았다고 해도 남자친구인 지명이와 신분차이로 맺어지긴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귀는 동안에도 지명이와 다투면 “난 어차피 한국에서는 2등 시민”이라며 자신의 상황을 비꼬았다. 한국에서는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으니까 접시를 닦아도 사람 취급해주는 호주를 좋아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한국에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계나는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모양의 차별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자유를 찾아 호주로 떠나는 첫 번째 관문인 공항이 모두가 평등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계급성이 두드러지는 공간이라는 점이 정말 아이러니다. 호주에서도 또 다른 차별을 보고 경험하게 될 계나의 앞날을 엿보는 것만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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