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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한 따스함 [제주 서귀포 숙소 | 밤편지]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한 여름 밤의


글ㆍ사진  고서우


내가 좋아하는 동네, 남원읍. 이 동네는 올 때마다 눈에 담기는 모든 풍경들이 평화롭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고요하고, 따뜻하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혼자 걷기에도, 차를 타고 드라이브 오기에도 좋은 곳이다.



이윽고 차를 세운 곳은 ‘밤편지’라는 스테이 앞이었다. 모두 불을 끈 밤,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 조명 하나에 의지한 채 편지를 써 내려가는 모습이 상상되는 그런 이름이다.


‘밤편지’에는 안채, 별채, 사랑채 이렇게 총 세 곳의 객실이 독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머물렀던 곳은 ‘별채’. 잔디밭 작은 정원을 쓸 수 있는 객실이었다.



객실 문을 열자, 시원한 공기와 듣기 좋은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을 깔아놓는 것이 일반적인 스테이에서의 첫인상이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발라드 음악이 들려서 함께 흥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익숙한 음악 소리가 들리면 왠지 모를 반가움을 느끼곤 하는데, 덕분에 ‘밤편지’가 그런 인상을 주었다.



이곳의 거실에 서면, 귤나무밭이 가장 먼저 눈에 보인다. 구름이 껴서 볕이 없는 날씨였는데, 그렇게 칙칙한 날씨에도 생기 돋는 초록이 거실 안으로 들어오니, 따뜻한 분위기만이 가득했다. 거실에는 소파가 있었는데, 나는 도착하자마자 잠시 소파에 앉아 귤나무밭에 시선을 두고 천천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밤편지’를 꾸민 호스트님은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만의 아기자기함을 즐기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 같았다. 얼굴 한 번 뵌 적이 없는 분이지만, 놓인 책과 방명록, 형형색색의 색연필들이 그렇게 느껴지도록 했다. 그저 책 몇 권과 방명록이 있는 스테이를 방문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밤편지’만의 인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생각이 들었던 건, 그때쯤이었다. 불현듯 이럴 때 읽으려고 한두 권의 책을 차에 가지고 다니는데, 재빨리 차에 가서 하나를 골라 집어 왔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자기 전의 시간을 보낼 생각에 시간을 재촉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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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문 ‘별채’의 뒷마당에는 폭신한 잔디들이 한여름의 뙤약볕을 받아 빽빽이도 자라있었는데, 제주의 자연 속에 머물며 가만히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을 추천해 주면 좋겠다 싶은 모습이었다. 통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기타 소리를 그것에 얹어도 꽤 낭만적일 것이다.



해가 구름에 가리워졌던 만큼, 남원읍의 저녁은 일찍 찾아왔다. 나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근처 마트에 가서 간단히 요깃거리들을 샀다. 책과 함께할 과자와 탄산수를 고심하던 내 모습은 조금 웃기기도 했던 것 같다. 평소에 과자를 자주 사 먹지 않다 보니, 어떤 과자를 사야 하는지 한참을 과자 코너에 서서 고시 책이라도 고르듯이 사뭇 진지했기 때문이다. 감자깡을 들고 돌아와, 식탁에 올려두었다. 하루 동안에 땀으로 끈적해진 몸을 씻고, 나른히 누워볼 생각에 신이 났다.



'밤편지’에는 선풍기가 있다. 스테이에서 은근히 마주치기 힘든 것인데, 에어컨만 있는 스테이에 누워 자려고 하면 이게 참 그리운 존재다. 깨끗하게 씻어 체온이 한풀 내려간 몸, 시원한 잠옷 바람에는 에어컨보다 선풍기면 딱 좋기 때문이다. 기쁜 미소를 지으면서 선풍기의 각도를 보았다. 그리고 얼른 침대 위에 배를 깔고 누웠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펴고, 감자깡을 먹으며 8월의 끝자락을 보내는 지금 이 내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행복이 아닌가 싶을 만큼 좋았다. 행복이라는 게 별 것 아니라는 말은 이런 와중에 깨닫게 된다.


중간중간 몸을 뒤척이며 이런 저런 자세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눈꺼풀의 무게를 이길 수 없었다. 그대로 더는 저항 없이 눈을 감았다. 스르르, 나도 모르게 드는 잠이 가장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고, 그렇게 아침까지 한 번의 뒤척임도 없이 잤다. 아주 오랜만에.



일어나서 밖을 보니, 어제와는 달리 구름 걷힌 화창한 날씨였다.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가니,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나오는 아침 햇살이 무척 아름다웠다. 시원하게 밤잠을 자고 난 뒤에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아침! 일주일 치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욕실에서 나와, 다시 한 번 어제와 같이 소파에 앉아 귤밭을 바라보았다. 아직 조금은 잠이 덜 깬 눈으로 남원읍의 화창함을 감상했다. 여유롭게 나갈 채비를 하며 짐을 모두 현관 앞에 두었을 때, 뒤를 돌아봤다. 정말 한여름 밤의 꿀 같은 시간을 마련해 줘서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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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Traveler 고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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