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ㆍ사진 ㅣ 김문영
작년 12월. 욱희님과 함께 책을 만들기로 했다. 각자의 책을 만들되, 주기적으로 만나서 작업 현황을 공유했다. 우리는 글을 쓰고, 잘 읽히도록 퇴고하고, 보기 좋게 편집 디자인을 하고, 또다시 글을 다듬고, 잘 어울리는 종이를 고르고, 테스트 인쇄를 하고,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판매하고 배송할지 고민했다.
처음부터 꼭 지켜야 하는 마감일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우선시되는 일이 생기면 자연스레 미뤄졌다.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이걸 누가 사려고 할까? 하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늦어도 여름에는 완성하고 싶었는데,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며 가을이 오려 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워크숍을 가자고 했다.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향해서. 다시 한번 달려 나갈 용기를 얻기 위해.
스테이는 거리가 멀어서 이동이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했고, 우리가 사는 서울과는 창밖의 풍경이 달랐으면 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양양 어스미어.
차를 가지고 갈지 고민하다가 주변 관광을 많이 하지 않을 것 같아 뚜벅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터미널에서 만난 욱희.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헐레벌떡 뛰어오는 나를 웃으며 반갑게 인사해 줘서 고마웠다.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인구해변 쪽으로 이동했고, 2년 전엔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 물회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양도 푸짐하고 맛도 좋았던 식사! 체크인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근처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9월 초의 양양은 전반적으로 한산했다. 성수기가 막 지난 시기여서,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조용한 여행을 원했던 터라 한산한 양양이 마음에 들었다.
어스미어는 인구해변에서 도보 10분 이내에 위치해 있었다. 7~8월 시끌벅적한 성수기에 오더라도 밀집 구역과 한 발짝 떨어져 있어서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다.
해안가를 따라 걸어오다 보면 금방 어스미어에 도착하게 된다. 나중에 바닷마을에 세컨드 홈을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어야지! 하는 아이디어가 샘솟는 집이었다.
일출과 일몰을 잘 볼 수 있게 바다 쪽으로 큰 통창이 나 있었고 욕실과 자쿠지, 침실, 거실과 주방이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잘 분리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웰컴 디저트로 와인, 과자, 초콜릿이 있었고, 테라로사 드립백이 있었다.
어스미어는 삼성 가전과 IoT를 연결해 두었는데, 최근에 가본 곳 중 가장 매끄럽게 IoT가 세팅되어 있었다. 사용하며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어서 조금 놀랐다. 보통 사용하면서 불편한 점을 느끼고 토글스위치를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스미어에서는 거실 벽에 있는 패드로 에어컨, 조명, 세탁기 등 모든 것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 (요즘은 세탁기랑 건조기 있는 숙소가 제일 좋더라! 낮에 땀에 젖은 옷, 수영할 때 입은 옷들을 세탁하고 가져갈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세제는 빨래 중량에 따라 알아서 조절해서 넣는다고 하는데 정말 좋은 세상이구나…)
자쿠지만 하고 바다 물놀이는 할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 우리의 집 앞에는 넘어지면 닿을 거리에 프라이빗 비치가 있었다. 날이 많이 흐렸지만 안 가면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 해지기 전에 가보기로 했다. 빠르게 환복 후 핸드폰만 챙겨서 나갔다. 집이 바다 바로 앞에 있으니 다른 짐을 챙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바다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집이라니…!) 물놀이하는 사람도 우리뿐이라서 마음 편히 즐겁게 놀았다. 준비 없이 온 탓에 튜브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내년 여름에 꼭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내내 하늘이 짙게 흐리더니 곧 비가 내려 어스미어로 돌아왔다. 중정에 몸과 발을 씻을 수 있어서 모래를 모두 털고 들어왔다.
저녁을 인구해변에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비가와서 배달을 시키기로 했다. 아까 해변에서 치킨집 현수막을 발견했는데 맛집 느낌이 났기 때문에!
가볍게 샤워한 뒤, 치킨을 시키고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조적 욕조가 둘이 들어가도 충분히 남을 만큼 커서 물 받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 미리 틀어두었다. 요즘 푹 빠져있는 ‘최강야구’를 보며 치맥도 했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물이 꽤 많이 차서 욕조를 즐겼다. 따뜻한 물에 조금 쌓인 피로를 풀며, 욱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침실은 다른 것들은 없고 오롯이 침대만 있어 아늑하게 잠들기에 좋았다. 사진은 낮에 집 구석 구석을 살피다가 찍은 것인데, 침대 헤드에 콘센트가 있어서 핸드폰을 충전하기에 편리했다. 문득 이런 편리함을 마주할 때 스테이의 섬세함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매트리스와 침구가 포근하니 좋아 푹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새벽. 동해에 왔으니, 일출을 보자! 하고 어젯밤 잠들기 전에 일출 시각에 맞춰 알람을 맞췄는데, 늦잠 자지 않고 일어나서 후다닥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날이 많이 흐려 해가 동그랗게 뜨지는 않았지만, 불타오르는 태양과 어스름하게 밝아지는 아침이 아름다웠다. 양옆에 민박집 사장님들도 나와서 일출을 구경하셨는데, 매일 봐도 아름다운 것들이 있구나 싶었다.
루프탑으로 올라가는 실내 계단을 오르다 보면 작은 정원과 다락이 있는데,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모습이 귀여웠다. 머무르면서 비가 와서 루프탑을 이용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는데, 프라이빗 비치를 즐기러 내년에 다시 오기로 했으니 그때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욱희가 챙겨온 사과, 호스트님이 준비해 준 드립백으로 간단하게 오전 시간을 보냈다. 퇴실 시간이 임박해서야 하늘이 맑아졌는데, 아쉬운 마음도 들면서 동시에 커피를 마시며 맑아진 바다를 바라보니 지금이라도 맑아진 하늘이 고맙기도 했다.
뒷정리를 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어스미어를 나섰다. 간밤에 우리는 책 판매 공지를 어떻게 할지 정했고, 오후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구매할지 모르겠다. 책을 완성했지만, 판매하는 것은 이제 시작이다. 시작과 끝이 어디서부터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지난날들을 회상하기도 앞으로의 날들을 기대하기도 했다.
조금은 주저할 때, 용기가 필요할 때, 일상의 변화가 필요할 때 훌쩍 떠나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어스미어를 추천해 주고 싶다. 나에게 닿은 용기가 당신에게도 닿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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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김문영
필름 사진을 찍고 커피를 좋아합니다. 여행은 종종 계획 없이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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