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ㆍ사진 ㅣ 박선영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비를 자주 만났다. 가을비가 장마비처럼 며칠 동안 내렸다. 이럴 때면 스테이 안에서 머무는 시간은 더욱 밀도있게 즐거워진다. 밖에 나갈 수 없다는 강제성이 나를 머무는 공간과 심리적으로 더욱 밀착시키기 때문이다.
제주 조천의 신촌리라는 조용한 해안마을에 위치한 시사오하우스는 휴식을 감도높은 차원의 경험으로 격상시킨 곳이다. 제주의 돌집과 50년이 넘은 벽돌집, 소박한 돌창고가 공존하고, 공간 어디에서든 펼쳐지는 정원의 풍광, 여덟 명까지 여유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스케일까지.
게다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시사오의 어매니티와 취향이 묻어나는 그릇과 기물들, 음질 좋은 스피커, 베딩과 로브의 퀄리티까지 어느 것하나 소홀함이 없다. 시사오하우스의 독보적인 면모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곳이 품고 있는 대욕장은 경험의 감도를 가장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당 중앙의 대욕장 문을 힘껏 당기면, 열을 머금은 습기가 순식간에 나를 덮친다. 욕장은 놀라우리만치 압도적인 규모다. 높다란 나무 서까래 아래로 거대한 온탕이 물을 찰랑이고 이따금 물거품을 만들어낸다.
히노키 패널로 둘러싸인 벽, 위에서 떨어지는 붉그스름한 조명 빛, 수목이 내다보이는 전면 창에 서린 습기. 거기에 나직이 울리는 명상적 사운드까지. 일순간 바깥 세계와 단절된 내밀한 곳에 당도한 것만 같다.
샤워를 하고 욕탕 속으로 몸을 푹 담궜다. 코너에 놓인 모래시계를 뒤집어 세우고서 잠시 눈을 감았다. 내 눈 아래까지 차오른 물은 조명에 반사되어 발그스레함을 머금고 있다. 기분좋은 따듯함이 몸 속 세포들을 재생시키 듯 소리와 온도, 감촉이 나와 일체가 되어감을 느낀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일천구백칠십이년’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다. 이 건물이 지어진 해를 적은 상량문이다. 오십여년전 이 벽돌집은 어떻게 쓰이기 위해 지어졌을까?
필시 목욕탕의 용도는 아니었을텐데 지금을 누리는 내 모습을 떠올리니 그 간극이 더욱 커진다. 공중목욕탕만한 사이즈의 욕장을 홀로 누리고 있자니 일본의 어느 산골 여관으로 잠입한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 감각이 어쩐지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까닭이다.
물 표면과 높이가 나란한 길다란 통창은 시사오 하우스의 가장 깊숙한 풍경을 끌어들인다. 마치 야생의 숲 같은 빌레정원에는 느릅나무와 돌이 넓게 깔린 빌레, 현무암, 이끼, 둥그스름한 연못이 어우러진다.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야생성이다. 쉼없이 비를 맞고 있는 식물들이 더 진하게 푸른 생명의 색을 발한다.
20분 정도의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갈증이 올라온다. 대욕장 안에는 식수대와 새하얀 타월이 담긴 바구니가 섬세하게 준비되어 있다.
부드러운 로브를 걸치고 마당으로 나오니 마치 해야할 일을 마친 것 같은 상쾌하고 편안한 기분이다. 목욕이라는 친밀한 행위 때문인지 친밀하게 시사오하우스의 일부가 된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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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입구에는 돌창고를 개조한 커다란 라운지가 있다. 실내 같기도 하지만, 슬라이딩 도어를 활짝 열면 어느새 외부 공간으로 변모한다.
몇 장의 LP, 몇 권의 책, 눕거나 기댈 수 있는 커다란 흰 소파가 있으니 긴 오후와 벗할 채비는 끝난 셈이다.
초록의 숲이 커버에 그려진 하타 모토히로HATA MOTOHIRO의 LP를 걸었다. 작사와 작곡, 기타연주까지하는 싱어송라이터라고 한다. 투명하면서도 단단한 음색, 가사의 어감과 리듬이 어딘가 제주의 와일드함과 어울리는 노래다.
라운지는 시사오하우스에서 유일하게 떠들석함이 제법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함께 여행하는 이들과 흥분된 어조로 ‘지금 이 순간’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거나 오디오 볼륨을 높이고 제주의 공기와 맞닿아 울려퍼지는 음악의 삼매경에 빠질 수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라운지 밖 넓은 여백의 공간에는 서까래에 걸린 아름다운 조각보가 너울거린다. 벽장에 비치된 요가매트를 꺼내 돌바닥에 펼치고, 몇 년전에 배운 요가 동작을 떠올리며 이곳저곳의 뭉친 근육을 천천히 자극한다. 호흡을 깊게 들이키고, 이내 다시 시원스레 내뱉다 보면 바로 그곳이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비를 피해 짐을 풀어 둔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시사오하우스에는 두 채의 건물에 세 개의 침실이 있는데 모두 프라이빗 정원을 향해 열려 있다. 길다란 수평창은 벽의 낮은 곳에 누워 있어 아늑한 침실에 분위기를 더한다.
나는 뭉개구름 같은 두 개의 포근한 매트리스가 깔린 가장 넓은 방을 택했다. 대욕장에서 내게 감동을 주었던 빌레 정원이 다시 침실에서도 펼쳐진다. 물 속에서 본 정원 풍경이 플랫하게 회화적이었다면,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흘깃 보게되는 푸르른 풍경은 경쾌하고 입체적이다.
그리고 창을 슬며시 가릴 수 있는 장지문을 닫으면 마치 수묵화처럼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을 그림자를 드리운다. 밤이 찾아오니 고요 속에서 풀벌레 소리만이 가늘게 퍼진다.
정확히 일출 시간에 눈이 떠졌다. 볼에 닿은 베갯잇의 보드라운 촉감이 좋아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었다. 조심스레 장지문을 열었다. 새벽 안개를 머금은 정원을 몽롱하게 바라보며 무엇으로 하루를 시작할까 잠시 고민했다. 따듯한 걸 마시고 싶었다.
거실로 나가 벽선반에 놓인 차 기물들의 빛깔과 만듦새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도예가가 빚은 유려한 다완, 숙우, 잔들 중은 그 종류가 꽤 다양해서 취향에 맞는 걸 고를 수 있다.
우윳빛 기물들을 골라 차를 우렸다. 향이 깊고 부드러운 보이차 한잔을 따라 천천히 한모금을 마셨다.
문을 활짝 여니 어젯밤의 풀벌레 소리 대신 새들이 지저귀며 이른 시간을 깨운다. 황순원의 소설 <카인의 후예>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그는 조용히 차를 마셨다. 말없이 차를 들이키는 사이, 지나간 날들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희미했던 문장이 떠오른 건, 아마 그 순간의 내 생각이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지금의 이 몰입된 아침이 조용히 되살아날 것이라는 확실한 예감 말이다.
이곳에서 보낸 이틀의 시간은 ‘빌레, 욕장, 무화과, 목련, 땅을 덮은 이끼’ 같은 정겨운 단어들을 꿰어낸 짧은 수필과도 같았다. 보고 듣고 냄새맡은 모든 것이 내 안에 진하게 남겨진 까닭이다. 시사오하우스에서의 아름다운 휴식은 한편의 완결된 이야기가 된다.
시사오하우스가 준비한
연말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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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Traveler 박선영
<독일미감> <유럽호텔여행> <SEOUL SEOUL SEOUL>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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