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엄마로부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엄마공황왔다.’
남들이 보면 깜짝 놀랄 상황. 아침부터 공황장애 증상이라도 나타나신 걸까.
하지만 스마트폰,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문명에 크게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 엄마를 알기에 귀여운 오타임을 눈치채고 잔잔한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다.
엄마가 보낸 문자의 ‘공황’은 사실 ‘공항’을 의미했다. 즉, ‘공항’에 도착하셨다는 것.
오늘은 엄마의 생애 첫 해외여행 날.
산악회 회원분들과 함께 장가계로 여행을 가신다고 한다.
엄마의 첫 해외여행을 응원하는 한편,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엄마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스마트폰 사용도 제대로 못하시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시면 어쩌지?’
‘말도 안 통하는데 다툼이 생기진 않겠지?’
‘다치시면 안 되는데...’
지난 25년간 자라며 엄마에게 들었던 걱정 어린 말들이 이제는 오히려 엄마에게 향하고 있었다.
다시 휴대폰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명절을 맞아 부산에 있는 고향집에 내려가면 부모님은 항상 당신들의 휴대폰을 나에게 들이미신다.
그 이유는 다양한데, 대표적인 것이 '전화번호부 신규 등록'
내려갈 때마다 하나하나 천천히 알려드리는데 새로 배우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으신 듯하다.
매번 물어보시는 게 참 답답하실 법도 한데 항상 답답해하는 건 내 쪽이다.
뭐 덕분에 무뚝뚝하고 예민한 아들내미에게 말 한마디 더 건네려 하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술에 잔뜩 취하신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 댁에 가셨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외삼촌과 다투신 모양이었다.
10분, 20분 시간이 흘러가며 나에게 처음 전화를 거셨던 목적은 잊으시고 항상 술을 드시면 하시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미안하다’로 시작하여 그 미안함의 근거들이 차례대로 열거되었다.
'엄마가 아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
'다른 친구들처럼 하고 싶은 공부 못 시켜줘서 미안하다.'
괜찮다며 그런 말 좀 하지 말라며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나는 게 사실이다.
왜 이렇게 미안하신 게 많은 걸까? 난 정말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친절한 엄마를 닮아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고 다른 친구들처럼 과외에, 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오히려 큰 스트레스 없이 학생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는데 엄마는 모르시는 모양이다.
무뚝뚝한 아들이라 떠오르는 말들을 마음속으로만 새기고, 정작 수화기 너머론 ‘우리 엄마 또 술 취했네’라는 핀잔 섞인 말밖에 전하지 못했다.
여태껏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다녀오시지 못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사셨는데, 이번 여행만큼은 꼭 당신만을 위해 다녀오셨으면 좋겠다.
엄마, 내년에는 취직해서 꼭 같이 갑시다!
아 참, 엄마... 휴대폰 데이터는 꺼두세요!